덴마크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다
제과제빵이 아닌 요리를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저울이었다. 무엇이냐 하면, 요리에서도 재료의 무게가 어느 정도 요구되긴 하지만, 1%의 오차로 빵이 제대로 부풀어 오르냐, 가라앉느냐를 요하는 제과제빵과는 다른 섬세함이다. 재료를 만지는 것이 손에 익는다면, 아 이 정도면 대충 몇 그램 이겠구나.라는 감이 잡히지만, 중력분 1kg는 어떻게 손으로 가늠한단 말인가? 그래서 제과제빵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가 저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과정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참 단순한 이유이지 않은가? 디저트가 아닌 요리를 택한 이유가 귀찮음 때문이라니...
남편은 '제빵왕 김탁구'도 유명하다고 했지만, 내가 캐나다에 있었던 시기여서 제 피부로 와 닿는 기간은 아니었고, 내 기억에 있어서 제과제빵에 제일 인기를 끌었을 때가 언젠가 생각해 보면 '내 이름은 김삼순'이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 방송 이후 제과제빵에 뛰어드는 사람도 많았고, 파티시에라는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도 많았으며(나 또한 화려하고 드라마에 나온 장면만으로 환상에 젖어 꿈꾼 적이 있다), 르 꼬르동 블루에 대한 관심이 배 이상으로 뛰어오르지 않았나 싶다.
요리라는 것도 매번 트렌드가 변화하기 때문에 디저트 또한 그러리라 생각한다. 어떤 시기에는 폭신폭신한 디저트가 선호되는가 하면, 어떤 시기에는 건강을 추구하는 곡물빵이, 또 어떤 시기에는 입에서 사르르 녹는 디저트가 인기를 끄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에서 디저트 가게들이 생겨난다. 실제로 내 주위에서도 유명한 디저트 가게에서 몇 년 일한 후 나와서 본인 가게를 차리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다. 맛을 얘기해보라고 한다면, 고민한 흔적이 없어 보이는 맛이랄까? 따라 하고 베끼기는 쉽지만 본인 껄 만들어 내는 건 또 다른 숙제니까.
Konditori La Glace
덴마크에 Konditori La Glace는 이런 트렌드를 따라가는 가게가 아니라,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었다. 인터뷰를 한국에서부터 요청해 놓고 갔는데도 가게에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케이크를 먹고 있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하나같이 'wow'라는 단어로 통일되었다. 현지인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디저트라는 단어 아래에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게 만든다는 건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후기들을 보며 후손들이 계속 이어오고 있는 가게라고 잘못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대표님이 들려주신 얘기는 중간에 한 번의 교체가 있었다고 한다. 처음 가업에서 물려줄 자식이 없어서, 지금의 대표님 가업이 이어받아 계속해서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기간만 해도 100년이 훨씬 넘는다. 특히나, 왕실에 케이크를 납품하는 유일한 제과점이라고 하니 그 자부심과 변치 않는 맛을 이어오고 있는 정신에 대단한 존경심이 느껴졌다.
밖에서는 디스플레이가 된 케이크를 구경할 수 있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 빵 종류들도 꽤 다양하다. 맛을 이어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 대표님은 주위에 있는 직원들을 소개해 주셨는데, 20년 이상 함께 가게를 지키고 있는 직원분들이 대부분이셨다. 그리고 그분들 또한 가게에 대한 사랑이 어느 누구 못지않게 보였다. 내가 인터뷰를 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쉴세 없이 손님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도 다른 손님을 대하는데 웃음을 잃는 법이 없다.
La Glace에서 단연 꼽히는 대표 메뉴는 Sportskage이다. 우리가 흔히 아닌 마카롱의 모습은 아니지만, Sportskage의 바닥 또한 마카롱 쿠키로 되어있다. 흔히 알고 있는 마카롱의 쫀득함 보다는 바삭함을 더 지니고 있다. 스펀지케이크와 쿠키의 중간단계의 바삭함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위에 크림은 누가 크림이다. 누가 크림 안에는 누가 크런치가 콕콕 박혀있어서 씹는 크런치함과 부드러운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 위에는 100%의 크림이 폭식하게 올라가 있고, 바삭한 슈가 콕콕 박혀있다. 휘핑크림이 아닌 생크림으로 만들어져 크림으로 무장되어 있는 케이크임에도 불구하고 느끼함이 아닌 고소함이 배가 되는 메뉴였다.
"단 걸로 널 망치고 싶다면"이라고 적혀 있는 문구와 제일 걸맞은 메뉴를 뽑으라면, 난 핫초코를 주저 없이 추천하겠다. 대표님도 꼭 맛보라고 했던 이 핫초코는 준초콜릿이 아닌 제대로 된 초콜릿을 사용해 장시간 동안 졸인 소스같이 걸쭉하고 찐득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최고였다. 나는 초콜릿 그 자체가 아니면 초콜릿이 들어간 케이크,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를 전혀 먹지 않는다. 그런데, 남편이 '지금 안 먹으면 평생 후회할걸?'이라는 말에 한입 먹어본 나는 내 앞으로 핫초코를 끌어당길 정도였다. 핫초코에 넣어 먹으라고 함께 내 준 생크림을 넣으면 또 다른 부드러운 맛이 난다. 이런 핫초코라면 내 몸에 축적될 수 있도록 지분을 주겠어!
덴마크가 낙농국가라는 사실도 여기서 제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크림을 자랑함에도 그 묵직하고 깊은 크림 맛은 절대 잊지 못할 듯하다.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된 음식점에 가보면 줄을 서서 사람들이 자리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많은 곳들을 가봤고 대부분 실망을 안고 오기 마련인데, 이런 곳이라면 몇 시간이고 줄을 서는 수고를 감수할 것 같다. 그 기다림 끝에 머리 끝이 짜릿해지는 달콤함이라니, 기다린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기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