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이야기에서 시작된 삶
대놓고 성희롱을 당했다. 대기업 면접장이었다.
남자친구 있냐, 남자친구한테 애교 많은 스타일이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결혼하면 일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직장상사가 성희롱하면 어떻게 할 거냐.
끝없이 꼬리를 무는 질문들. 웃음기 섞인 말투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마지막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을 읊었다.
대단하신 이 기업에서는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으며,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오해였을 거라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개뿔. 염병. 모멸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저런 삶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혐오를 드러내도 되는 삶.
공적인 자리에서 저따위 말을 해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삶.
즐거워 보였다. 리듬감 있는 말투. 올라간 입꼬리.
집에서는 듬직한 아들이고, 다정한 남편이고, 멋진 아빠인 척하겠지?
그날 밤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갔다.
그다음 면접은 나가지 않았다. 다른 기업의 면접에도 모조리 불참했다. 면접이라는 말만 들어도 속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 같았다.
쫓기듯 다시 수능을 보고, 교대에 갔다.
솔직히 말해볼까?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벼랑 끝에 몰려 있었고, 교대는 안전해 보였을 뿐이다.
적어도 저딴 질문을 더는 듣지 않아도 되니까. 무례한 사람들에게 날 봐달라고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시간은 흘렀고, 지금 나는 초등학교 담임교사다.
나는 내가 만든 교실에서 살아간다. 이 공간에서는 내가 만든 규칙이 있고, 내가 선택한 언어가 통한다.
물론 교사가 되었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모멸은 존재하고, 교사라는 이름 안에는 수많은 억압이 숨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더는 작고 약하고 무력하지 않다.
흐릿한 눈빛들, 얼굴들,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
잘들 지내시죠?
이젠 웃으며 인사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열몇 살 어린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며 낄낄대던 사람들. 그래, 그렇게밖에 못 사는 삶도 있는 거겠지.
훌쩍 커버린 나는 당신들이 그저 불쌍해.
당신들 앞에서 꾹꾹 씹어 삼켰던 모멸감은 모두 내 뿌리가 되었고,
그 뿌리는 크고 단단해져서 나는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어.
비가 오면 맞고, 바람이 불면 버틸 거예요.
흙탕물이 튄 자리마다 문장이 돋고, 상처 난 껍질마다 이야기가 자라나겠죠.
당신들이 썩어 문드러지는 동안 나는 숲이 될거거든요. 조용하고 끈질기게.
이제는 삼키지 않아요. 말하고, 뱉어내고, 써낼 거예요.
도망친 끝에서 만난 나의 직업에 대해,
내가 만들어낸 교실이라는 세계에 대해,
그리고 내가 끝내 살아내고 있는 삶에 대해.
선생님,
왜 교사가 되셨나요?
이 세계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요.
왜 글을 쓰세요?
지켜낸 내 삶을 기억하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