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어가 허문 경계 위 새롭게 세운 우정
어쩌다 보니 대학을 또 다니게 되었다. 두 번째 대학 생활이었지만 1학년 1학기 첫인사는 여전히 떨렸다.
코시국이라 인사는 카카오톡에서 했다. 설렘과 기대로 가득한 인사를 건네는 '진짜' 새내기들과 달리,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이 깜찍발랄상큼한 공기가 나 때문에 엄숙해질까 봐.
인사하자는 메시지를 못 본 척 넘어갈까?
아니야,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댔어.
서둘러 인사말을 전송했다.
안녕하세요, 대학 졸업하고 일하다 다시 교대에 입학한 김소금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 나이는 친해지면 알려드릴게요! :-)
나이를 밝히지 않은 건 내 딴엔 배려였다.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 나이를 먼저 알게 되면 부담스럽잖아. 내가 적은 나이도 아니고. 그치, 그치.
그런데 이게 오히려 화근이었다. 나이를 감추는 게 수상했는지 동기들이 극존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아, 이건 아니다. 2002년 월드컵 직전에 태어난 베이비들에게 "그 나이 많은 분?"으로 기억되고 싶진 않았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교수님 뒷담화나 하는 그런 아기자기한 사이가 되고 싶었는데. 나의 소박한 바람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아니야, 괜찮아질 거야. 조만간 코로나 끝나겠지. 얼른 얼굴 보고 얘기하면 달라질 거야.
보란 듯이 코로나는 전 세계를 뒤흔들었고, 10월이 되어서야 동기들과 대면했다.
KF94 마스크 아래로 내가 가장 많이 한 말 1위는 "말 편하게 해도 돼."일 것이다. 그 뒤에 "제발."을 덧붙였을지도 모르겠다.
동기들의 눈에선 불편함과 의심이 읽혔다. '진짜로 그래도 돼?' 같은 거 말이다.
이러다가 누가 교수님께 "그분 오늘 편찮으셔서 출석 못하셨어요."라고 말할까 봐 아찔했다. 내가 볼드모트도 아니고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이 될 순 없지. 절레절레.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동기들이 존댓말을 할 때마다 서둘러 고쳐줬다. 괜찮아, 존댓말 안 써도 돼. 호칭도 편한 대로 해. 웃음웃음.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닌 ‘상징권력의 장치‘로 보았다. ‘누구에게 어떤 말투를 쓰는가'는 곧 그 사람과 내가 맺는 사회적 위계를 드러낸다.
마치 나는 같은 학번이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존댓말을 ‘받는 쪽’이 된 것처럼. 그 순간, 우리 모두가 언어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권력관계를 감지했던 것처럼.
그 위계를 의도적으로 망가트리고 싶었다. ‘나이 많은 분’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별 것 아닌 일로 꺄르르 웃으며 수다를 떨고, 과제가 너무 많다며 푸념을 해대고, 주말이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그런 평범한 친구가 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평어를 통해 내가 가진 나이 권력을 내려놓으려 했다. 다행히 동기들도 존댓말이라는 갑옷을 벗어던지며 나를 동등하게 받아주었다.
평어를 쓰는 순간만큼은, 우리는 서로의 감정과 일상을 먼저 들여다보았다. 나이와 사회적 배경, 그리고 나머지 것들을 잠시 모른 척한 채.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처음이었겠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 이렇게 가까워지는 게. 특정 말투에 갇히지 않고 대화하는 관계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조금은 흐물흐물한 모양의 우정도.
우리는 그렇게 평어라는 언어적 장(場)에 도달했고, 평어는 새로운 친밀함의 가능성을 소개해주었다.
당신도 언젠가는 겪어 보았으면. 평어로만 만들 수 있는 낯설고도 다정한 풍경. 예고 없이 찾아오는 누군가와의 경계 없는 우정.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그런 문이 하나쯤 열려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