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썰티마커 SALTYMARKER Mar 12. 2024

13년 만에 다시 찾은 마라도에서의 소회


이번 제주 여행에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라도는 더더욱 일정에 없었다. 우연히 오메기떡을 찾다가 모슬포항 근처로 가게 되었고(오메기떡보다 우연히 먹은 쑥 흑임자 찐빵이 더 맛있었다), 예전에 마라도에서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갑자기 마라도로 발길을 돌렸다.     


시장에서 산 쑥 흑임자 찐빵, 정말 맛있었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았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예쁜 섬 풍경을 마라도에서 봤고, 수백 마리의 제비들이 떼로 다니는 장관도 처음 보았고, 한국의 최남단이라는 의미를 느끼며 머나먼 바다를 구경했던 좋은 기억이 있었다. 마침 와이프가 마라도를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다고 하여 이번이 아니면 언제 가 보겠냐 싶어 배 시간을 10분 남겨 놓고 승선신고서를 작성하였다.     


새우깡을 향해 솟구치는 갈매기


배를 타니 과자를 받아먹으려는 갈매기들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우리는 바다를 더 잘 보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아이들이 신이 나서 떠들고 있었고, 우리도 터키 여행 이후로 오랜만에 타 보는 배에 신이 나 있었다. 배가 출발하자 몇몇 갈매기들은 배를 따라왔고, 파도에 배가 흔들렸다. 중간쯤 가자 왼편으로 가파도가 보였고 그때부터 와이프는 울릉도에서도 하지 않은 배 멀미 때문에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배 뒤로 제주도와 오름들이 보인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멀리 타원형 경기장 모양의 마라도가 보인다


배는 25분 만에 마라도에 도착했다. 마라도에 도착하니 처음 우리를 맞이한 냄새는 쥐포를 굽는 냄새였다. 할아버지 한 분이 입구에서 쥐포를 굽고 계셨고, 이어서 마라도에서 유명한 자장면집이 줄지어 있었다(쥐포 할아버지가 위너인 듯). 마라도에서 유명한 듯한 톳자장면을 먹어 볼까 하다가 너무 비싸고 육지와 맛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우리는 식당들을 그냥 통과했는데, 코로나 시기를 지나서 그런지 빈 식당들이 많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쓰러져 가는 빈 건물들 때문에 마라도의 예쁜 풍경도 가려지는 것 같았다.      


선착장 근처에 늘어서 있는 자장면 식당들
마라도의 등대와 성당이 보인다


13년 전 나의 기억에 있던 마라도는 풍경이 아름다웠고 좀 더 컸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겨울이라 그런지 아름다움이 조금 덜했고, 생각보다 더 작았다. 그래도 와이프와 마라도 곳곳의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생각들을 나누며 산책을 했다. 끝없이 트인 바다를 보며 가슴이 시원해지기도 했지만, 거대한 자연과 큰 파도에 대비된 인간의 작은 삶이 덧없어지기도 했다. 더군다나 전날 고속도로에서 화물차 바퀴가 빠져서 반대편에서 달리던 고속버스로 돌진해 두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던 터라 인생이 더 허망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멀리 우리가 탈 배가 오고 있다


1시간 안에 마라도 한 바퀴를 돌고 마라도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여유를 즐겼다. 푸른색 바다와 황토색 억새들과 검은색 현무암 절벽들이 배경이 되어 주었다. 곧 우리가 탈 배가 들어왔고 배에 타자마자 25분 동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 제주 여행은 갑자기 계획 없이 가게 되었지만 기억에 많이 남았다. 식당이나 가야 할 곳을 정해 놓았을 때보다 더 알찼던 것 같고, 여유와 낭만이 여행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에 있어서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매일 힘들게 일하던 곳을 벗어났다는 해방감, 그리고 해야 할 일들과 촘촘한 계획들로부터 벗어났다는 여유가 중요하다. 부산으로 여행을 온 사람에게 부산은 부산에서 힘들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부산과 다르다. 마찬가지로 같은 제주도지만 제주도로 휴양을 온 사람이 느끼는 제주와 제주도가 일터인 사람이 느끼는 제주는 다를 것이다. 어찌 보면 ‘원효의 해골물’처럼 생각하기 나름일 수 있으나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통해 환경을 바꾸고, 바뀐 환경에서 생각을 전환시키고, 전환된 생각으로 휴식을 취하고, 휴식을 하면서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해외에 가지 않아도 해외에 온 것 같은, 제주씨에스호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