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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Apr 23. 2024

할아버지 귀신은 오지 않았다

 

점집은 산 밑의 어느 빌라에 있었다. 벨을 누르니 어떤 아저씨가 문을 열어 줬다. 무당의 남편인 것으로 보였지만 정확한 관계는 알 수가 없었다.      


안은 일반 가정집이었는데 방 한 칸이 신당으로 꾸며져 있었다. 거실에도 점 보는 것과 관련된 몇 가지 물품들이 있었으나 크게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오니 와이프의 신점이 시작되고 있었다. 문이 열린 신당 안에서 무당의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쌀을 던지거나 방울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신점은 정확도가 떨어졌다. 내 친구와 친구 주변 사람들은 너무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았다고 하였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무당은 나를 반백수로 보았다. 옷차림이 캐주얼해서 그런지 내 이미지가 그런지 몰라도 반백수에 자유분방하고 역마살이 낀 사람으로 보았다. 내가 앉자마자,      


“대주님은 자유로운 영혼이고 역마살도 있어. 공부는 아직도 하고 있어?”라고 물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교수를 하고 있으니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서 아직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공부는 그만해. 계속해서 뭐 할 거야.” 무당이 말했다. 마치 공무원 시험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백수에게 말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은 하고 있어?”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무당이 확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공부는 이제 그만하고, 다른 데 갈 생각하지 말고 2년은 거기 그대로 있어.” 올해와 내년에 운이 좋으니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말을 얼버무렸다. 무당은 신당이 있는 우측 벽 쪽을 흘깃흘깃했다.                    


나와 와이프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도 안 맞는 것이 많았다. 오히려 나의 조상과 와이프의 조상이 바뀐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하였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가 의구심을 가진 표정으로 계속 앉아 있자 무당은 우측 벽 쪽을 계속 흘끔거리며 쌀을 던지거나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는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은지에 대해서 말을 해 줬다. 요지는 나는 지금 사업을 하면 안 되고 적어도 8년 뒤에야 혹시 기회가 있으면 변화를 줘도 괜찮다고 했다. 와이프는 자기 사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몇 년은 더 있어야 된다고 하였다. 나중에는 둘이 전원주택에서 알콩달콩 잘 살면 되니 지금부터 노후를 잘 준비하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무당은 인간적인 조언을 하는 언니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무당이 말했다.     


“신내림을 받고 신을 모신다는 게 엄청 힘든 일이야. 예전에는 하루 종일 귀신에 씌어서 점을 봐주고 했는데 나도 사람이다 보니 늘 그렇게 하기는 어렵더라고.”라고 하면서 본인이 신내림을 받은 과정, 몸이 아팠던 얘기, 작두를 탔던 얘기를 했다.      


시간은 거의 다 되었지만 무당은 오히려 처음 점을 볼 때보다 재미있는지 본인 이야기를 계속했다. 보다 못한 아저씨가 신당에 오더니 시간이 다 됐다며 이야기를 끊었다.         




점을 다 보고 온 우리는 차를 타고 가면서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점을 볼 때 신내림을 받았다던 그 할아버지 귀신이 안 오셨구나...’     


무당은 우측 벽 쪽을 보면서 그 할아버지 귀신을 계속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고, 귀신이 없어도 그간의 짬밥으로 맞추려고 해 봤는데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쌀도 던져보고 우리의 얼굴도 유심히 보고 했는데 뭔가를 맞춘다는 게 쉽지 않았고, 그러면 좋은 조언이라도 해 주자 싶어 사업 얘기나 일 얘기,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은지에 대해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분위기는 좋았다. 그리고 재미도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맞추거나 하는 것이 없어서 좀 아쉽긴 했지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잘 새겨들었다.   

  

그리고 나는 점을 보러 온 목적이, 사람 상대를 많이 한 사람이 나를 보면 어떤 얘기를 할까였기 때문에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 제삼자가 볼 때는 내가 반백수로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구나...’ 정도의 수확이랄까..


참고로 무당은 내 전공을 IT나 전자, 인공지능 쪽으로 얘기를 하던데 ‘남이 볼 때 나의 외모에서 공학도의 모습이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의 수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전공을 바꾸기에는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서 어렵겠지만 어릴 때 IT 쪽으로 우연히 기회가 왔어도 그럭저럭 잘했을 것 같기도 하였다. 사람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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