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먹고 지하철에서 졸면서 집에 오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학생의 말이 들려서 잠이 깼다. 친구에게 하는 말 같았는데 ‘옆에 앉은 아저씨가 졸면서 어깨를 계속 친다’는 것이었다. 내가 꾸벅꾸벅 졸면서 옆으로 기울었나 보다. 잠이 깬 나는 더 이상 옆으로 기울지는 않았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내 나이가 어느덧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아저씨’로 보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까지고 학생이나 청년일 줄 알았는데, 그리고 아직까지는 어리게 보이는 줄 알았는데 아저씨라니. 나는 믿어지지가 않아서 눈을 감은 채 그 학생이 내릴 때까지 자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뜨고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온 세월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학생과 아저씨의 경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다만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 하루를 살았을 뿐인데 왜 아저씨가 되어 버린 것일까. 나의 늙음을 만들었던 세월의 풍파들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에 해장을 하러 국밥집에 갔다. 내가 대학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어떤 할머니가 어디를 찾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국밥집을 찾는다고 말씀드리니 옆에 두 군데 국밥집이 있고, 시장 안에도 OO 국밥집이 있다며 알려주셨다. 왠지 이름을 콕 찍어 얘기해 주신 국밥집이 맛있을 것 같아서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장통에 있는 오래된 국밥집이었는데 안에는 정감이 가는 퉁퉁한 할머니가 고기를 삶고 계셨다. 아마도 젊었을 때부터 운영하셨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시장 안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거동이 불편하신지 절뚝이며 국밥을 내 오시는 모습을 보며 나의 ‘아저씨’ 생각이 났다. 저 할머니도 학생 소리를 듣던 젊었던 시절이 있으셨겠지. ‘학생’이라는 소리가 어느덧 ‘아줌마’라는 소리로 바뀌었을 것이고, 먹고살기 위해 국밥집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울컥하였다. 나도 이제 ‘학생’에서 ‘아저씨’로 넘어왔는데, 언젠가는 ‘아저씨’에서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고, 늙어간다는 게 이렇게 서글픈 일인가 하는 생각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국밥을 한 그릇 다 먹고 현금을 드리니 현금을 줘서 고맙다는 할머니의 배웅을 뒤로하고 대학가를 걸었다. 주변에는 전부 젊은 학생들이었다. 왠지 모르게 학생들 옆을 걸어가기가 민망했다. ‘저 학생들은 나를 지나가는 아저씨라고 생각하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술을 먹고 지하철을 탄 지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스스로 아저씨가 되어버렸고, 어제까지만 해도 늙었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