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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 May 03. 2021

나는 굳이 왜 골치아픈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나

중학교 선생님이라 해.. 행복해요


얼마 전 교생 선생의 지도를 마쳤다. 얼마나 아이들을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레슨을 준비하던지, 그녀 덕분에 내 할 일이 현저히 줄어든 건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느긋한 여유로움은 보너스였다.  


교생 선생의 실습 마지막 날,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씩 했다. 반항기가 가득 찬 나이라 해도 마음만은 얼마나 예쁘던지 아이들의 말을 듣고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는 그녀를 보니 나의 첫 중학교 실습이 생각났다.  


중학생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아이들이었다. 중2병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막 접어든 그들. 주체할 수 없이 마구 분비되는 호르몬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롤러코스터를 탄다. 자기와 세상의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총체적 난국을 어쩔 줄 몰라하며 분노의 질주를 하는 청소년들. 컨트롤할 수 없는 변화 앞에서 필사적으로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에게 더 반항을 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싶어한다. 


으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상상 속의 중학생 아이들은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피하고만 싶은 학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교생시절, 두 번째 실습 자리를 찾을 수 없어 7/8학년 반으로 배정받게 되었다. 당시 유치원 실습을 막 끝내면서 나는 역시 어린아이들과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니! 청천벽력이었다. 


두려움에 가득 찬 첫 실습이 다가왔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떨리는 손을 진정시킨 후 입을 열었다. “하.. 하이. 에브리바디. 마.. 마이 네임 이즈 미.. 미스 문…” 머리가 하얘지면서 그다음은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나지도 않는다. 소개를 마치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수업 관찰을 하고 있는데 쉬는 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랏? 불을 내뿜으며 나를 쏘아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따뜻한 면이 있었네?’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무서운 아이들이 아닌 것 같아 내 마음은 조금씩 녹아내렸고, 결과적으로 이 실습은 내가 중학교 선생님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담임 선생님과 상의 후 과학과 사회(Geography)의 유닛을 가르치기로 했다. 과학은 전공을 했으니 나름 수월했지만 사회는 전혀 모르는 과목이라 나 또한 공부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했기에 스트레스만 받을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레슨 준비를 하며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운 것이었다. 중학교 때 배웠던 것을 다시 짚어보고, 검색한 자료를 비교하며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는 재미는 내 호기심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내가 배운 것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바꾼 후 그것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즉각 반응을 해 주었다. 내가 ‘아' 하면 그들은 ‘어’하고 맞장구를 쳤다. 학생과 나 사이에 새로운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 같았고 유치원생을 가르칠 때 와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이 묻는 수준 높은 질문은 내 뇌를 매번 자극했다. 이것은 아주 좋은 동기부여가 되어 더 즐겁게 공부를 했고 열정을 다해 레슨을 준비했다. 과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학생 때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실험으로 바꾼 뒤 다음 날 실행으로 옮기면 마음에 불꽃이 파바박 튀어올랐다. 아르테미스가 유레카를 외칠 때 이럴 심정이었을까. (과장도 이런 과장이 없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즐거웠던 4주 실습의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막으며 너무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반 대표 학생이 나에게 쓱 책을 내밀었다. ‘이게 뭐지..?’ 물끄러미 학생을 쳐다보니 얼른 열어보라는 손짓을 한다. 궁금한 마음으로 책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내 참고 있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미스 문이 왜 좋은 선생님이 될 것 같아?’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답을 적은 책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나 몰래 아이들과 함께 준비한 선물이었다.  



“미스 문은 우리에게 소리 지르지 않고, 인내심이 많아요. 항상 재밌는 레슨을 준비하려고 노력하셔서 수업받는 동안 즐거웠어요. 아, 가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구몬 수학 숙제를 도와주시기도 했죠. 훗날 미스 문을 담임으로 가질 수 있는 학생들은 행운이에요. 분명 좋은 선생님이 되실 거예요! 굿 럭!”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뜻밖의 선물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뜨겁게 데웠다. 실습 나갔던 학교는 90%가 백인들로 구성된 학교라서 동양 선생님을 어떻게 대할지 솔직히 겁부터 먹었는데 아이들은 나의 외모를 상관하지 않았다. 나를 선생으로 인정해준 아이들의 순수함이 얼마나 고맙던지. 무섭게만 느껴졌던 학생들이 이렇게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니 놀라웠다. 그때 따뜻한 경험에 속아서(?) 결국 중학교 선생님이 되고 만 것이다. 지금도 학교에서 전쟁을 치르고 온 날, 내가 왜 8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해서 이 생고생을 하냐며 신세 한탄이 절로 나올 때 이 책을 열어 위로를 얻곤 한다.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가 늘어가는 것만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기필코 다음 학기는 저학년 반으로 옮기겠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결국 매년 원하는 학년을 적는 서류에는 중학생 반을 쓴다. 


대체 나는 왜 골치 아파 죽겠는 중학생 아이들에게 빠진 걸까?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을 통해 행복했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고 캐나다에 이민을 왔다. 영어를 못해 고독한 외톨이로 산 적도 있지만 수학으로 모두를 한번 놀라게 한 뒤로는 학교 생활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수학이라고 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겨우겨우 중간 정도밖에 하지 못했는데 여기 오니 우리 반 탑에 들어가는 엄청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분수 덧셈 뺄셈을 한국에서는 이미 3/4 학년 때 마스터했는데 여기서는 6학년이 배우고 있다니. 오 마이 갓! 이걸 왜 6학년이나 돼서 배우는 거야? 영어는 한마디도 못했지만 수학 테스트에서는 무조건 90점 이상 받는 나를 보며 여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까지도 눈이 휘둥그레졌던 게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는 친구도 생기고 방과 후 밴드 활동도 하면서 활기찬 중학교 생활을 보냈다. 프렌치 호른을 불던 오빠를 열렬히 짝사랑하기도 해서 밴드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어느 순간 플룻을 불던 언니와 그 오빠 사이에 핑크빛이 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짝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하지만 지금 읽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기를 매일같이 장황하게 쓰기도 했다. (그땐 뭐가 그렇게 드라마틱 했는지.. 이것도 중학생의 매력이겠지.) 


처음으로 외국에 나와 새로운 경험하고 그 경험을 스펀지처럼 쏙쏙 다 흡수하던 시절.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항상 "노!"라고 대답하지만 그래도 굳이 돌아가고 싶은 때를 뽑으라면 난 망설임 없이 중학교 시절을 선택할 것이다. 이민 생활 중 가장 즐거웠을 적, 아무 걱정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맞이했던 그때로 말이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면 중학생 때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생각나고 이런 추억들은 내 기억 속, 가장 소중한 중학교 시절로 나를 데리고 간다. '어린아이' 딱지를 갓 뗀 순수함. 기나긴 성년의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때. 학생들 앞에 서면 그 시절 나의 모습이 다시 살아난다. 우리 반에 있는 ESL 아이들을 보면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고,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방과 후 활동으로 밴드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 밴드 활동을 했던 내가 떠오르고 덤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짝사랑의 추억과 함께 미소가 지어진다. 



나에게 중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란 매일같이 내가 가장 행복하게 기억하는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다. 돈도 들지 않는 시간 여행, 그것도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곳으로 직행할 수 있는데 어찌 이 나이 또래 아이들을 안 좋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머리가 지끈거리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도 결국 중학생 아이들을 택하게 되나 보다. 그것이 노화를 앞당기는 어리석은 짓이라 하여도 말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중학교 애들이 너무 크다며 혀를 내두르고 고등학교 선생님은 중학교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맞다. 누구에게는 반항심이 가득한 아이, 또 누구에게는 철없는 아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난 이렇게 중간에 끼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좋다. 점점 자기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것을 자신의 지도 위에 그리고 수정한다. 때론 그 과정에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다시 희망을 찾고 성장해가는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앞으로도 이들의 지도 만들기에 오랫동안 동참하며 내 지도도 같이 수정하고 그려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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