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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 Aug 26. 2021

선생님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선생님이 척척박사가 아니어서 좋은 점

코로나 19 때문에 일 년 늦게 열린 올림픽이라고 해도 올해 도쿄 올림픽 열기는 대단했다. 스포츠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나 인데도 올림픽은 기나긴 락다운 때문에 지친 일상에 활력소가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랜만에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열정을 심어주었다. 흥미롭게 본 많은 올림픽 게임 중 단연 내 마음을 울린 것은 한국의 여자 배구팀의 경기였다. 선수들이 속 시원한 스파이크를 날릴 때마다 무더위가 날아가는 듯했고 내가 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환호가 사자가 표효하듯 공기를 가득 채웠다. 아쉽게도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부상과 허벅지 핏줄이 터져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끝까지 쉼 없이 도전하는 12명 선수가 보인 ‘성공적인 패배'는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기나긴 여운을 남겼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유튜브에 한국 여자 배구 선수와 카리스마 가득한 캡틴 김연경 선수의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이내 그들의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요즘은 하루의 시작과 끝이 여자배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돌 ‘덕질'을 한다는 사람들의 심정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달까.) 여러 영상 중에 선수들이 라바리니 감독과 장난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의 코칭 스타일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구글 이미지 검색


배구 선수들에 의하면 라바리니 감독은 그 전 한국 감독과는 다르게 전력분석과 비교를 통한 철저한 준비와 선수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한다고 한다. 감독과 선수 사이뿐만 아니라 선후배 사이도 그렇다. 그는 그동안 한국 배구에서 선배 선수 위주로 하는 훈련이 결코 팀에 도움이 될 수 없다 판단하여 나이 상관없이 모두 다 똑같은 훈련을 받게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벤치 선수까지 포함해 모두가 자연스레 게임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며 한 뜻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말에 무릎을 탁 쳤다. 내가 한동안 생각하고 있던 이상적인 선생님의 모습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선생이 된 후 학생들 앞에서 모르는 것은 없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 학생들이 하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탁탁 답을 내줄 수 있는 선생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선생으로서의 위치를 존중받고 권위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질풍노도 시기의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 않나. 얕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모르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 선생이 되고자 고군분투했다. 선생과 학생은 수직관계라 생각해 나의 지식으로 학생들을 컨트롤하려는 어리석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중학생을 가르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아는 분야라고 해도, 아무리 공부하고 준비를 했다고 해도 아이들이 더 많이 알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는 척할 수도 없고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전된 시기에 괜히 이상한 답변을 주었다가 자칫하면 더 망신만 당할 수도 있었다. 



이상적인 선생 이미지에 나를 투영할수록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베테랑 선생님과 나를 비교하면 할 수록 내가 못나 보였다. '나는 왜 이 정도 밖에 안 될까..'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무렵 이런 틀에서 스스로를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뭣하러 나한테 맞지도 않은 가면을 쓰고 학생들 앞에서 아는 척을 하는가. 



홀가분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어느 날, 과학시간에 한 학생이 블랙홀에 대한 질문을 했다. 강스파이크가 훅 하고 들어오는 것 같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모른다고 솔직히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 학생은 되물었다. “선생님인데 왜 몰라요?” 뒷목이 빨개지는 것이 잠시 느껴졌지만 차분히 다시 말했다. “선생님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야. 나도 모르는 것이 많으니까 그 질문의 답을 네가 찾아보고 선생님한테 가르쳐 주는 게 어때? 선생님이 너한테 배울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데?” 



처음엔 ‘저 선생님 뭐야..’ 하는 눈초리를 줬던 학생이 자기가 선생님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하니 신선한 충격이었는지 신나게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수업이 끝날 때쯤 상기된 모습으로 설명하는 모습에 이것이 ‘자기 주도적 학습'의 효과인가 싶었다.


이후로 수업 방식을 바꿨다. 아는 것은 충분히 준비하되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고 말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신기하게도 솔직하게 말하니 학생들이 나를 더 존중해 주는 것 같았다. 권위를 잡고 있는다고 해서,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존중이나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약점을 털어놓으니 조금 더 인간적이게 느껴진 것일까. 혹은 자기도 선생님을 가르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일까. 


예상치 못했던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오! 넌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지? 아주 예리해!” 하며 탄성을 질러주면 어깨가 올라간 학생은 신나서 구글 검색을 시작한다. 학생들 질문을 리시브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자며 토스를 올리면 열정적인 학생은 스파이크를 날리듯 빛의 속도로 자신만의 답을 찾아 나간다. 국가 대표 배구팀이 외쳤던 “원 팀!”이 되는 느낌이다. 



실제로 “Google Hour”라는 프로젝트를 내줬을 때 자기 주도적 학습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자기가 배우고 싶은 주제를 정하고 리서치 시간에 정보를 수집하며 발표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들이 이내 적응이 되어 구글 리서치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즐겁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은 몇몇 아이들도 있었다.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수준 높은 기사를 쓴 학생을 봤을 때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정도 레벨의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는 아이였다니. 시험으로만 학생 실력을 평가했다면 절대 볼 수 없는 퀄리티 높은 결과물이었다. 발표가 끝나고 나중에 꼭 기자가 되어 우리 사회에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하길 바란다고 격려해 주니 어깨를 으쓱하던 학생의 모습이 기억난다.



이 시간만큼 나는 학생들과 같이 배우는 동료 입장이 된다. 수직으로 내려오는 가르침이 아닌, 서로가 수평적인 위치에서 지식을 같이 쌓아 올리는 것이다. 권위를 내려놓고 학생들처럼 배우는 사람의 입장으로 지도를 시작하니 기대치 못했던 학생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표를 싫어하는 학생들조차도 나름대로 자기들의 ‘연구’를 발표하고자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모른다. 내 부담도 줄어들고 학생들의 학습실력은 늘어가고. 이것이야 말로 일석이조,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꿩도 먹고 알도 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자리에서는 나는 더 이상 세상 모든 답을 내 손안에 쥐고 있는 권위적인 지식 보유자가 아니다. 단순히 지식을 A에서 B로 넘기는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지식 촉진제' (facilitator)가 되어 선생이라는 역할의 폭을 넓힌다. 받은 정보를 비판적이게 간별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수집한 자료를 발표하게 이끌다 보면 기대하지 못했던 즐거운  배움의 장이 열린다. 배우는 과정을 직접 익히면서 학생들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정보를 흡수해야 하는 수동적인 학생 (passive learner)이 아니라 적극적인 학생 (active learner)이 된다. 본인이 직접 알아보고 자기 방식으로 소화한 정보는 머릿속에 더 의미 있게 남기 마련이다.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해 가르치기보다 학생들 스스로 배움의 길을 찾아가니 학습 습관이 더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자신감도 덩달아 높아졌다. 더불어 ‘학급 지식의 장’에 모두가 참여하니 주인의식이 생겨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경쟁 구도를 벗어나 협력을 통해 얻은 지식과 배움은 우리 모두에게 더 오래, 깊게 남는다. 



구글 검색 이미지


여자배구를 올림픽 4강으로 이끈 라바리니 감독과 선수들의 환상적인 팀워크는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을 상기시킨다. 교실 내 리더 자리에 서 있는 나는 ‘지식 협력자'로 앞으로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까. 올림픽을 마치며 김연경 선수가 남긴 말을 되새겨본다. 



스포츠는 결과로 보답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준비를 하면서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배우는 과정을 배우는 것.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 교육에 있어서 이것이야 말로 본보기가 되는 좋은 리시브, 토스, 스파이크가 아닐까. 


이제 좀 더 자신 있게 학생들 앞에서 모른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얘들아, 강력한 서브를 날려보렴. 선생님은 두 팔 뻗어 받을 준비가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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