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this is F***ing dumb!”
개학한 지 일주일 만에 한 학생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한 프로젝트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욕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든 사람이 다 들릴만한 큰 목소리로.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또 얼마 후엔 이런 소리를 들었다.
“Oh shit. I have to sit with this f***ing b****!”
맘에 들지 않는 친구 옆에 앉혔다고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나.. 지금 학교에 있는 거 맞니?
코로나 때문에 세계가 잠시 멈추어 있었던 2020년.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보다 본 사람이 훨씬 더 많을 테지만 그중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이는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본격적으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대해 전문가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의 우울증 급증과 함께 학업 부진 우려에 대한 뉴스가 연이어 따라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건만, 대면 수업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니 전문가들의 경고가 고스란히 피부로 느껴졌다. 학생들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테스트를 하는데 8학년을 준비된 상태로 시작한 학생은 고작 3명뿐이었다. 다른 가정에 비해 조금 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부모님이 아이들 학업에 관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머지는 코로나 터지기 전, 2년 전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으로 어떻게 지도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쯤, 더 심각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학생들의 수업 태도와 사회성 문제였다.
개학한 지 한 달 만에 여러 학생들이 내 앞에서 욕 하는 것을 여섯 번이나 들었고,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자기 맘대로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학생도 보았으며, 맘에 들지 않는 학우에게 서슴없이 쌍욕을 날리는 경우도 몇 번을 목격했다. 이 모든 것이 다 교실에서, 내가 바로 코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이었다. 더 답답했던 것은 이런 행동을 하고 나서도 사과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오히려 떳떳하게 욕을 내뱉고 사과의 마음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 학생들 태도에 말문이 막혔다. 시원하게 문을 박차고 교실을 나가며 화를 펄펄 내던 학생을 따로 불러서 왜 그랬냐고 물으니 그의 답이 더 가관이었다.
저는 원래 이런 애니까 상관하지 마세요.
하아.. 자기는 앞으로도 이렇게 나갈 거니까 맘에 안 들면 속된 말로 내가 알아서 기라는 식이였다. “뭐? 네가 원래부터 그랬던 뭘 했든 내 알바 아니고 지금 너는 학교에 있거든? 여기는 집이 아니라 학교라고.” 네가 학교에 있는 이상 나는 어쩔 수 없이 상관할 수밖에 없고, 네가 지금 한 행동은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며, 가뜩이나 임신한 내가 일하기에 굉장히 힘든 환경을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만들고 있다고 하니 그제야 조금 생각하는 눈치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화산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것을 참으며 이해해보려 했다. 그래, 일 년 반 동안 집에서 원치 않는 감금생활을 하다가 오랜만에 학급에서 친구들을 만나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을 가지면 점점 더 심해질 것 같아 아이들을 불러놓고 차분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르친 반 중에 학교 시작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이렇게 욕을 많이 한 반은 너희들이 처음이야.”
“에잇. 선생님 거짓말하지 마요! 다른 학생들은 욕 안 하는 줄 아세요?”
오히려 선생님은 몰라도 뭘 한참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 졸지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선생님이 됐지만 연연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걔네들도 욕을 하겠지. 욕을 아예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때와 장소는 가려가면서 하는 머리가 있는 거야. 이렇게 생각 없는 사람처럼 아무 컨트롤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진 않아.”
그제야 교실이 조금 잠잠해지며 학생들은 자기 행동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하는 눈치였다. 8학년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아이들도 알 만한 인간관계의 기본 중에 기본을 가르쳐야 한다니. 온라인 환경이 주는 익명성 때문일까. 마스크 뒤에 가려져 상대방의 표정이 더 읽기 힘들어져서 일까. 쓸데없는 담대함과 도를 넘은 무례함이 지난 2년 동안 학생들의 사회성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듯했다.
이 날 이후, 서로를 욕 하면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게 하고자 친절한 말과 행동을 한 학생을 Random Acts of Kindness라는 액티비티를 통해 추천하는 시간을 준비했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함을 베푸는 학생들의 행동을 알아채고 칭찬해주는 것. 비록 별거 아닌 것처럼 작아 보일지라도 그 영향은 크다. 이 시간을 통해 그동안 자기 행동을 스스로 자가진단 할 수 있고, 칭찬을 받으니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으며, 서로를 예의 바르게 대하려 노력하는 자세로 인해 학급 내 따뜻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
액티비티를 설명하고 학우를 추천하는 종이를 나눠 주었다. 하지만 추천서에 이름을 쓰기 전, 친절한 행동의 예를 들어보라고 하니 애들은 멀뚱멀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어머, 이것도 일일이 다 가르쳐야 하는 거야?’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코로나의 상흔이 느껴져 안타깝기도 했다. 실로 사회성이 한창 발달되어야 할 나이인 아이들에게 일 년 반 동안의 락다운은 너무 가혹한 것이었다. 혹은, 누군가의 호의를 받은 지 오래되어 그 느낌이 무엇인지 망각하게 된 걸까.
깊은 심호흡을 하고 친절한 행동의 예를 칠판에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친절한 행동이란:
- 욕을 하지 않는 것
- 친구의 떨어진 물건은 주워 주는 일
- 다른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일
-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는 일
-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와주는 일
학생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추천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개표가 시작되고 학생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호명되었다. “내가 수학 문제로 어려워했을 때 도와줬던 ㅇㅇ를 추천합니다.” “연필 빌려줬던 ㅇㅇ를 추천합니다. 고마워.” “쉬는 시간에 나와 놀아준 ㅇㅇ야, 고마워.” 추천서를 읽을 때마다 호명된 학생은 친구들의 갈채를 받았고 기대감으로 가득 찬 아이들의 얼굴엔 빛나는 두 눈이 반짝였다. 개학하고 처음 보는 아이들의 리액션이었다. 심지어 평소 학습태도가 좋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려고 하는 학생조차 자기 이름이 불릴까 싶어 숨죽이고 집중하며 추천서를 들었다.
마지막 학생을 호명한 후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다들 따뜻함에 상기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차가웠던 공기가 바뀐 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주는데, 그것도 좋은 일로 자신을 알아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의 행동이 누군가 마음에 작은 촛불이 될 수 있다고 자각하는 것은 인간관계 상호작용을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 시간 후에 욕하는 학생이 현저히 줄었고 조금씩 학급 일을 도맡아 하려는 학생이 늘어났다. 추천을 받으려고 일부러 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딘가.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함으로써 자기 조절 능력이 생기고, 배려심이 뒷받침된 행동은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안정된 학급을 구성하는데 큰 요소가 되어 학생이 배운 것을 좀 더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욕설로 뒤덮인 곳에서 무엇을 얼마나 배울 수 있을까. 한낱 나비의 날갯짓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처럼 한 사람의 작은 친절함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 시간을 통해 코로나로 인해 상실된 학생들의 사회성이 조금씩 다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서로의 마음에 심은 작은 촛불은 결코 작게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코로나로 인해 마음속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내몰린 인간성을, 그 따뜻함을 서서히 다시 찾아가길 바라본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님이니까.
*주의사항*
사회성이 부족한 학생이나, 학급에 친구가 별로 없어 추천될 확률이 낮은 학생은 선생님이 평소 학생의 행실을 세심히 관찰 한 후, 직접 추천서를 작성해 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