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위너인 너희들을 위해
처음 기간제 교사가 되어 7-8학년 체육을 가르칠 때다. (학교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한국과 다르게 캐나다는 전담 선생님이 모든 과목을 가르친다.) 캐나다는 체육 과목 안에 신체 건강에 대한 커리큘럼이 들어가 있어서 보통 체육 선생님이 성교육을 한다. 처음 체육을 맡았을 때는 다른 과목에 비해 수업준비가 수월하다고 좋아했지만 막상 성교육을 해야 할 때가 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저학년도 아니고 중학생 아이들에게 사춘기 때 일어나는 몸의 변화,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 그리고 건강한 인간관계와 더불어 성관계에 대해 가르치라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어찌 아무렇지도 않게 수학 공식을 가르치 듯 우리 몸에 대해 얘기한단 말인가.
학생으로서 받았던 성교육을 생각해 봤지만 내 수업에 쓸 수 있는 유용한 기억은 없었다. 한국에서 6학년 때 받았던 성교육은 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비디오로 본 후 “순결캔디"를 먹은 게 다였다. 순결캔디 라니. 말도 안 되는 이 짧은 수업이 그 당시 내가 받은 성교육의 전부였다. 작은 캔디를 내 손 안에서 돌멩이처럼 굴리며 고민을 했다.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걸 먹으면 순결하고 먹지 않으면 더러운 건가. 이걸 먹고 순결을 지키라는 선생님의 지나가는 말씀에 캔디를 입에 넣고 말았다. 잠시 나는 순결하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이 수업을 통해 성에 대한 모든 것은 불순한 것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버렸고, 달콤한 캔디가 쑥처럼 쓰게 느껴졌던 혀의 감각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학생으로 캐나다에서 받았던 성교육도 수업준비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9학년 때 성병에 대해 프로젝트를 하며 헤르페스 사진을 보다 큰 충격을 받아 머리가 얼얼했던 기억이 전부다. 첫 수업부터 학생들에게 성병에 대해 가르칠 수는 없었다.
뾰족한 수가 없어 동료 베테랑 체육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하니 그가 껄껄 웃는다. "이것처럼 유용하고 재미있는 주제가 없는데 뭘 그렇게 어려워해?"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며 쩔쩔매는 나의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경험이 쌓이면 얼마나 필요한 교육인지 알게 될 거라며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를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수업 자료를 쓱 나에게 넘겨주었다. 굿 럭이라는 말과 함께.
그 선생님의 자료를 가이드로 삼아 수업을 준비하는데 내가 낯이 다 뜨거워졌다. 그림으로 그려진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실제로 여기서도 이 주제는 어렵고 때론 부모님의 반대도 있기에 꽤 많은 선생님들이 한두 번 수업으로 끝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짧게 가르친 후 활동지 하나 주고 이 유닛을 끝내고 싶었지만 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료 선생님의 도움과, 이것이야 말로 꼭 제.대.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그의 적절한 압력 덕분에 체계적으로 수업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성교육은 성관계에 대해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정체성, 성인지, 성평등, 성병을 비롯해 건강한 관계에 필요한 동의에 대한 개념까지 포함한 커리큘럼이었다. 어렸을 때 내 머릿속에 각인된 ‘성은 불순하다'라는 공식이 선생이 되어 수업을 준비하며 비로소 깨졌다. 더불어 요즘같이 컨트롤 없는 미디어 노출로 인해 잘못된 성 지식을 쌓는 것보다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옳다고 믿게 되었다.
그렇게 첫 성교육 수업시간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최대한 마음의 평정심을 찾고 학생들 앞에 섰다. 이 수업은 과학의 일부일 뿐이라며 내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깊은숨호흡을 한 뒤 학생들 얼굴을 보니 나만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제 막 성에 호기심이 생긴 학생들에 눈에도 기대와 두려움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아이들의 시선은 온통 내 입으로 향해 있었다. 선생님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까. 나를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사람처럼 보는 학생들 앞에 서 있자니 속으로 웃음이 피식 나왔다. 수학을 이 집중력 가지고 했으면 경시대회 문제는 거뜬히 풀 수 있었을 텐데. 녀석들, 꼭 이럴 때만 집중을 하지.
웃음을 감추고 성교육 시작에 앞서 수업에 임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강조를 했다. 첫째, 모두를 존중할 것. 둘째, 불편하고 생소한 주제가 나와도 최대한 성숙한 자세를 보여줄 것. 셋째, 몸에 대해 얘기할 때 바른 용어를 사용할 것. 넷째, 궁금한 것은 질문할 수 있으나 사적인 질문은 하지 말 것. 만약 이 규칙을 어길 경우 수업에 참여하지 못함.
다른 사람을 해하는 말이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 수업에 참여 못한다고 얘기를 하니 아이들은 자세를 바로 고쳐 앉고 경청할 준비를 했다. 프레젠테이션을 켜고 사춘기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 생식기 그림이 나오니 교실 곳곳에서 킥킥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처음 가르치다 보니 나 또한 학생들에게 휘둘려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겨우 참고 무표정을 유지한 채 레슨을 이어나갔다. 이건 과학 수업에 지나치지 않을 뿐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첫 수업시간의 긴장감을 털어내니 아이들은 성교육 수업에 좀 더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진행할수록 놀라웠던 점은 중학생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자기 몸에 대해 의외로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특히 여학생들이 더 그랬다. 소변을 보는 곳과 생리가 나오는 곳이 다르다고 얘기하니 입이 턱까지 내려오던 몇몇 학생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다시 한번 성교육이 왜 중요한지 깨달은 순간이었다.
다른 수업 할 때 늘 몸을 베베 꼬며 졸던 학생들도 성교육 시간만 되면 눈이 말똥말똥 해져서 나의 말 한마디에 상당한 집중력을 선보였다.
하루는 임신이 되는 과정에 대해 가르치던 중이었다. 여자의 생리주기,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과정을 설명하다 90억 마리의 정자 중 단 한 마리만이 난자와 만나 아기를 만든다고 얘기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던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선생님, 그렇게 많은 정자 중에 딱 한 마리만이 아기를 만든다는 소리예요?”
“응. 맞아.”
잠시 생각하며 학생은 내 말을 곱씹었다. 고요한 학급 안에 학생의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우주의 신비를 발견한 과학자 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수만 년 전,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칠 때 이랬을까.
“그럼 우리가 90억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거 축하해야 할 일 아닌가요?”
가쁜 숨을 고른 뒤, 그는 소리쳤다.
얘들아.. 우리는 진정한 위너야!
말할 것도 없이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연신 우리는 위너라고 소리치는 학생 덕분에 팽팽하게 우리를 감돌고 있던 긴장감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넘실대는 학생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질문을 던졌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경우의 수 보다 더 희박한 확률을 뚫고 이 세상에 나온 너희들이 지금 내 수업을 듣고 있을 확률은 대체 얼마나 될까.
순식간에 성교육 시간은 수학 시간이 되었고, 더 나아가 인연에 대한 철학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그 어떤 수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즐겁게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 덕에 내가 가지고 있던 성교육에 대한 부담감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9번에 걸친 모든 수업을 마치며 학생들로부터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다는 피드백을 받으니 동료 선생님의 말이 그제서 이해되었다.
경험이 조금씩 쌓이니 이제는 입에서 어색하게 맴돌던 단어들이 더 이상 부자연스럽지가 않으나 솔직히 매년 성교육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긴장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휴.. 언제쯤 쉬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