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채식주의자>를 읽고: 결국엔 사랑

by Sylvia

두번째 찾아온 육아휴직.

온전히 육아를 하면서 글쓰기 리듬을 찾는 게 힘들어 일단 뭐라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읽다 보면 결국 쓰게 될 것을 알기에. 짬나는 시간에 열심히 읽고 짧게나마 기록을 하려고 오랜만에 브런치에 새 매거진을 만들었다. 읽은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나의 독서 일기. 그 첫번째 책인 <채식주의자>의 감상평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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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랑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고나면 한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야 한다. 단단한 문체에서 피어나오는 생생한 이미지가 뇌리에 박혀 소화할 시간이 꼭 필요하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자기 뜻대로 안 된다며 영혜의 뺨을 후려친 후, 안 먹겠다는 고기 한 점을 입 안으로 쑤셔넣는 그의 아버지를 보면서 얼굴이 저절로 찌푸러졌던 순간이 기억난다.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나까지 구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기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일은 얼마나 한 사람의 존엄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일인가.


이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는지 몇년 후 첫째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 늘 조심스러웠다. 싫어하는 걸 건강하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먹이게 될까봐. 영혜의 아버지의 강압적인 행동을 내가 하게 될까봐. 오랜시간 견딘 폭력으로 인해 ‘영혜의 뼛속에 아무도 짐작 못할 것들이 스며드는 것’이 내 아이에게도 스며들까봐.


하루는 남편이 혓바닥을 내밀며 이유식을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억지로 한스푼을 떠서 입에 넣어 준 적이 있다. 아이가 방심하여 입을 벌린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장난을 섞어서 했기에 아기가 울거나 난리치지는 않았지만 그 장면을 보는 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곧바로 남편에게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이 장면을 설명했고 앞으로 이유식을 그렇게 먹이지 말라고 했다. 그럴 때 마다 그 이미지가 떠올라서 내가 너무 힘들다고. 계속해서 생각나는 이 장면 때문에 결국 아기주도 이유식을 선택했다. 말 못하는 작은 아이라도 의사표현을 할 권리가 있다는 걸, 그것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어쨌든..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그 때 누군가가 영혜의 꿈을 이해해줬더라면 어땠을까. 단 한 사람이라도 그녀를 이해해 줬더라면 영혜가 그렇게 현실을 등지고 저 세계로 가지 않았을텐데. 책 3부에서 점점 미쳐가는 영혜를 보며 그의 언니 인혜는 비로소 이해한다. 영혜의 몸 속에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폭력의 잔상이 뼛속까지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고. 그것이 그녀를 서서히 죽였을 거라고. 매 순간 사는 것이 고통이었던 영혜에게 남은 선택은 결국 죽는 것 밖에 없었다고.


마지막 챕터를 읽는 내내 인혜를 껴안으며 위로해주고 싶었다. 내가 장녀라서 그녀에게 더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른다. 장녀로써, 아내로써, 언니로써, 엄마로써, 이 모든 역할을 기꺼이 떠안고 묵묵히 해내고 있는 그녀에게 삶은 너무 잔인한거 아닌가. 기찻길에 핀 잡초를 보면서 한번도 자기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그녀가 한없이 안쓰러웠다.


그래도 그녀를 현실 세계와 연결해 주는 건 아들 지우다. 지우 때문에 웃을 일이 생기고, 지우 때문에 버리고 싶은 인생을 그래도 살아나간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북클럽을 준비하며 다시 읽으니 엄마와 자식간의 이야기가 나오면 더 공감을 하게 된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이 문단을 읽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마지막 챕터가 겹쳐 떠올랐다. 어린 동호가 엄마에게 꽃 핀 쪽으로 가라고 말하는 대목.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소년이 온다> pg. 192


<채식주의자>에서 시작된 “왜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은 <소년이 온다>에서 답을 찾는다.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는 이가 왜 살아야 하는가. 그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결국 사랑이 사람을 살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남는 건 사랑이라고. 그래서 결국 우리는 기어이 꽃 핀 쪽으로 가는 것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면 이상하게 동호가 말한 문장이 떠오르곤 한다. '엄마아, 저쪽으로 가, 기왕이면 햇빛 있는데로. 꽃 핀 쪽으로.' 그래, 오늘도 꽃 핀 쪽으로, 밝은 쪽으로 가자. 혼자서 이 말을 되뇌이다 보면 무거웠던 마음이 깃털의 무게 만큼 가벼워진다. 그렇게 덜어낸 아주 작은 무게로 인해 그 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대가의 문장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다시 나를 햇빛 있는데로 이끈다.



영혜에게 없는 사랑이 인혜에게는 있다. 영혜가 나무가 되길 선택함으로써 인혜는 앞으로 더욱 더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지옥같은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래도 결국 인혜는 살게 되지 않을까. 지우가 있으니까. 안간힘을 쓰며 그녀를 웃기려는 아이가, 꽃 핀 쪽으로 끌어당기는 아이가 있으니까.



책을 끝내며 이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인혜에게 작은 기도를 올렸다. 타오르는 듯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겠지만 부디 버티고 견뎌야 할 시간 속에 봄날 같은 웃음이 간간히 깃들길. 그런 순간들이 작은 숨통이 트이는 구멍을 만들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