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처럼 사소한 것들>: 양심대로 산다는 것

by Sylvia

토론토에도 기나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다. 살랑이는 바람이 보드라운 아이의 살갗을 간지럽히고 내 머리를 기분 좋게 헝클어 놓는다. 날씨가 풀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뒷마당에는 벌써 민들레가 여기저기 피어올랐다. 민들레가 잡초인지 모르는 딸은 노란색 꽃이 예쁘다며 민들레 부케를 만들어 내게 건넨다. ‘엄마 선물이야!’ 아이를 갖기 전에는 잡초라고만 생각했던 민들레가 딸의 작고 앙증맞은 손에서 근사한 꽃으로 다시 태어난다.


세 살 어린이와 7개월 아기와 함께하는 육아가 쉽지는 않지만 이런 아이들의 사소한 사랑스러운 행동에서 행복의 원형을 느낀다. 흙을 파다가 발견한 달팽이를 보고 보물을 찾은 것 마냥 좋아하던 딸. 목욕 후 리사이틀을 하듯 목청 터져라 ‘아기상어’를 부르던 모습. 그런 누나를 보고 꺅꺅 웃던 둘째. 행복이 뭐 별 건가. 하루 끝에 나는 파절임이 되어 있지만 마음만은 꽉 찬 날들이다. 이런 작은 순간이 모여 지루하고, 때로는 지난한 하루를 견딜 힘을 준다. 결국 우리를 살 게 만드는 것은 이런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순간들이 아닐까.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묘사함과 동시에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가끔 펄롱은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성당에서 무릎 절을 하거나 상점에서 거스름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이 애들이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한 기쁨을 느끼곤 했다. (pg. 20)


이 구절이 인상 깊게 남았다. 잘 자라고 있는 자식들을 보며 진한 기쁨을 느끼고, 이로 인해 더 열심히 일하며 가족을 지키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펄롱. 거기서 내가 보였다. 하지만 펄롱의 이런 결심은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간 날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자기도 미혼모의 아들이서 그랬던 걸까. 펄롱은 수녀원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을 차마 지울 수가 없다. 암암리에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실체를 목격하니 충격이었던 것이다. 소시민인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애원하는 여자 아이들의 손을 뿌리친다. 잠시 눈을 감으면, 입을 닫으면 펄롱은 별 탈 없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행복을 느끼면서.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다 가 아니라는 것을. 애써 불편한 마음을 무시하며 집으로 돌아오지만 펄롱의 마음에는 이미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책을 읽으며 그의 내적 갈등을 따라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사회 부조리 앞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던 갈등인 것 같아서.


마음속에 꿈틀대는 무언가를 해소하고자 부인에게도 말해보지만 오히려 그녀는 우리 일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세상에는 사고를 치는 여자들’이 있다며 자식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무심한 부모를 탓한다. 펄롱은 부인의 반응에 놀란다. 어린 나이에 자기를 임신하고 미혼모가 된 자기 엄마를 그렇게 생각해 왔던 걸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그녀는 그런 쓸데없는 질문은 왜 하냐는 투로 단호하게 말한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우리 애들”과 “걔들”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그녀의 모습에서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내가 떠올라 뜨끔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또는 ‘내 아이만 잘 되면 장땡이지’라는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내가 별 탈 없이 잘 살고 우리 가족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내가 잘해서 이룬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보며 내가 아닌 게 다행이라고 여기는 나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그 일이 나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슬픔, 아픔, 고통을 보며 내 일이 아니라며 마음을 쓸어내릴 수 있나. 나의 안일한 일상이 타인의 희생 위에 쌓아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는 이런 이기적인 마음이 들 때마다 그 싹을 싹둑 잘라버린다.


요즘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하며 사회생활을 딸아이를 보니 내 아이가 잘 되는 만큼 다른 아이도 잘 돼야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한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을 하려면 건강한 마을과 사회 곳곳에서 이들을 소중히 여겨 줄 어른이 필요하다. 작가는 이런 어른의 중요성을 미시즈 윌슨을 통해 그린다.


그녀는 미혼모가 된 펄롱의 어머니를 다른 사람처럼 내치지 않으며 비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기 집에서 계속 일을 하게 하면서 펄롱을 돌본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한 펄롱에게 아낌없이 격려를 해주며 펄롱이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 (pg.37)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주는 것, 등등. 그녀는 펄롱이 마음에 구멍이 난 상태로 자라지 않을 수 있도록 든든히 지켜준다.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pg.120)




자기를 진심으로 대해 준 어른의 행동은, 그것이 얼마나 사소할지 몰라도, 한 사람의 삶에 온기를 남긴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선행이라도 공기처럼 스며들어 그의 마음을 빚고 그의 삶을 만든다.


미시즈 윌슨 덕분에 펄롱은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 양심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마음속에 양심의 외침을 무시할 수 없는 펄롱은 모두가 오랜 시간 동안 묵인해 왔던 일을 수면으로 끌어올리고, 결국 모두가 꺼려했던 일을 한다.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옳은 선택을 하기로 결정한 펄롱의 모습에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광주 학살 생존자의 입을 빌려 양심에 대해 말하던 장면이.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Pg. 114)


양심이 뭘까. 클레어 키건 작가는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라 했고, 한강 작가는 “자신이 완전하고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라고 했다.


작가들이 양심에 대해 말한 이 두 문장에서 오래 생각이 머물렀다. 내 마음속의 가장 깨끗하고 순수하고 선한 부분을 만나는 일. 그것을 짓밟지 않는 일. 나무를 가꾸듯 소중히 다루는 일. 두 작가는 양심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양심대로 산다는 것은 사실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그저 무시할 수 없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심장이 요동치는 곳으로 따라가 그곳에서 온전히 선하게 존재하는 나 자신을 만나면 된다. 그뿐이다.


양심 없이 사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세상을 뒤흔드는 요즘, 나의 안일한 삶을 위해 사회 부조리에 눈을 감고,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더 쉬운 세상에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래?


이제는 부모가 된 만큼 더욱더 양심이 이끄는 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 양심대로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가 되고 건강한 사회가 건강한 어린이를 키우니까 말이다. 어린아이들이 양심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양심대로 사는 어른이 되면 된다. 미시즈 윌슨처럼 주위를 살피고 만나는 모든 이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어른들을 보며 자라는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도 내 안에서 빛나고 있는 존재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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