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과테말라의 우기가 지나고 건기의 해가 쨍하고 비치는 어느 날이었다. 항상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한 학생이 줄 서라는 소리가 무섭게 쪼르르 달려왔다.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도착했다는 기쁨에 취해 싱글벙글 미소를 머금은 아이의 눈은 내 물병에서 멈췄다.
“선생님, 지금 물병 안에 있는 거 뭐예요? 왜 까만 게 들어 있어요?”
“물에 라임이랑 치아시드를 넣어서 그래. 선생님도 한번 건강한 음료 마셔보려고.”
“네? 치아시드? 씨앗이요? 식물을 자라게 하는 씨앗 말씀하시는 거예요?”
과학시간에 강낭콩에 새싹 틔우는 실험을 하며 식물에 대해 배우고 있던 터라 곧바로 생각이 거기로 옮겨졌나 보다. 눈을 요리조리 돌리며 나를 이해하려는 학생의 얼굴에서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는 듯한 빛이 났다. 전구의 불이 띵~ 하고 켜진 순간이었다.
“그럼 선생님 배 안에 이제 식물이 자라기 시작하는 거예요? 얘들아~! 빨리 와봐! 선생님 지금 배 안에 식물을 키우고 있어! 언젠가는 커다란 나무가 될지도 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이의 특별한 창의력에 박장대소가 터졌다. 들이키고 있던 물이 나올 뻔 한 걸 간신히 막고 아주 신박한 상상력으로 나를 웃겨준 그에게 고맙다 했다. 졸지에 소리 소문 없이 배 안에 작은 식물을 키우는 선생님이 될 뻔한 순간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들의 상상력에 감탄이 절로 난다. 아이의 말에 한바탕 웃고 나서 불현듯 내 어릴 적을 돌이켜봤다. 나도 분명 한 때 내 앞에 서 있는 꼬마 학생들처럼 별빛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누구 못지않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언제부터 이 아이를 잃어버리게 된 걸까?
2년 전 신혼여행으로 떠난 파리에서, 영원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내면의 아이를 조우했다. 예술의 메카라서 그랬던 건지 죽어있던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센느 강 너머로 서서히 지는 분홍빛 노을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걷고 있자니 인상파 화가가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예술가의 영혼이 곳곳에 깃들어져 있는 로맨틱한 도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오르세 박물관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따뜻한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을 꼼꼼히 감상했다. 다 봤다고 생각했을 때쯤, 1층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자리에서 내 발걸음은 멈췄다. 지금까지 봐온 인상파 작품과는 현저히 다른 느낌의 그림을 만난 것이다.
무엇인지 모르겠는 어떤 힘에 이끌려 이 작품 앞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나타냈던 르느와르의 작품이나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빛의 대조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모네의 작품과는 다른, 아주 강렬하고 열정적인 무언가가 꿈틀했다. 이 여인이 진짜 사람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난 것 마냥 생생했다. 뾰족한 코끝과 검은 눈빛 아래 붉으스름하게 그을려져 있는 취기를 보고 있자니 와인잔에 들어있는 칵테일의 맛이 저절로 상상이 되었다. 한순간 뇌리에 박히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 대체 누구일까? 왜 이렇게 멋진 작품이 박물관 구석에 꽁꽁 숨어 있는 거지? 궁금해서 옆에 있는 설명서를 읽어보니.. 세상에나, 미술의 거장, 큐비즘의 아버지 파블로 피카소였다.
그때 그 충격이란!
고등학교 미술시간 때 3D를 2D로 표현한 천재적인 화가라고 했지만 난 아무리 봐도 어린아이가 아무렇게나 대충 붓질을 해 놓은 듯한 그의 그림이 이해되지 않았다. 피카소인지 파카소인지 내가 알게 뭐람. 미술 선생님이 그 어떤 예찬을 해도 그에 대해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평소 좋아하지 않았던 미술 선생님의 말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그를 천재라고 부른다는 말에 코웃음이 절로 났다 (‘그 정도면 나도 그리겠다!’). 그때 이 사람은 내가 좋아할 수 없는 화가라 단정 지었다. 이런 내 편견 때문에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는 피카소 박물관에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의 그림 앞에 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돼 버리고 만 것이다. 미술의 한 영역을 완벽하게 정복하고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그가 경이로웠다. 피카소 박물관에 가지 않은 걸 땅 치고 후회한 건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편견을 가지고 지레짐작한 내가 바보, 천치, 말미잘 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울렁거리는 감동을 가지고 박물관을 나온 후 피카소에 대해 알아보다가 읽게 된 그의 명언에 또 한 번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았다.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을 소비했지만,
아이들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이 걸렸다.
- 파블로 피카소-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이 걸렸다니.. 천재 화가가 아이처럼 그리고 싶어 했다는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그제서야 그의 그림이 이해되었다. 그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고 잠재되어 있는 내면의 아티스트를 간과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에게는 삶을 온몸으로 즐기는 아이들이 무한한 뮤즈가 되었을 것이다.
파리 여행 후 피카소를 흠모하는 마음에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찬찬히 관찰하고 싶어 져 쉬는 시간을 틈타 저학년 놀이터에서 서성였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쉴 새 없이 떠들며 끊임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꼬맹이들을 보고 있자니 피카소가 얻었다는 영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억지로 노는 아이는 없었다. 온전히 눈 앞에 놓인 놀이에만 집중하는 아이들. 좋아하는 걸 즐길 뿐이었지만 그곳에선 쩍쩍 갈라진 마른땅을 뚫고 올라오는 힘찬 물줄기 같은 활력이 느껴졌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Flow (몰입: 한 가지에 완전히 참여해서 즐기고 그것에 흡수되는 상태)*가 이런 모습일까? 그 순간을 완벽히 즐기고 있는 아이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고 누가 뭐래도 알아서 Flow를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대체로 예술가들이 작업을 할 때 이런 상태에 빠진다고 했던 심리학 교수의 말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렇다면 새처럼 자유롭게 뛰놀며 머릿속에 있는 우주를 거침없이 표현해 내는 그들의 삶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삶이 아닐까. 삶이 놀이터고 놀이터가 곧 삶인 그들의 인생. 그곳에서 우리가 생각지 못한 새로운 시선이 피어올랐고 한 번도 보지 못한 걸작이 태어나고 있었다. 틀에 갇힌 어른들이 못 알아봤을 뿐이지 아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에 도전하는 예술가였다. 피카소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놀라울 뿐이었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인 동시에 모든 예술가는 아이들인 것이다.
다시 내게 물었다. 그럼 너는? 나도 분명 한때는 ‘아이'였고 역동적인 창작자이자 예술가가 아니었나. 머리가 커지고 세상에 물들어 가면서 언제부터인가 이 아이를 볼 수 없었다. 영원히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르세 박물관에서 편견이 산산조각 무너져 내렸던 그 순간, 아이는 피카소의 작품이 던진 별똥별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아 무뎌져 있던 감각들은 깨워달라고 소리쳤다. 마음 안에 갑갑하게 갇혀있던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갈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 소리에 집중하고 무엇을 해야할까 둘러보니 그나마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였다. 글로 마음을 달래볼 마음에 파리에서 돌아온 후, 묵혀 놓았던 이야기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큰 기대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일은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내면의 아이에게 다시 돌아가는 길을 열었다.
고요한 토요일 아침,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아이와 다시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따뜻한 커피를 내리고 달콤한 마들렌 하나를 입에 넣는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고귀한 시간에 나의 작은 놀이터인 컴퓨터 앞에 앉아 내면의 아이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그녀를 만나는 일은 설레기도 하지만 두려움도 동반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어떤 글이 써질까?’ 하는 기대와 ‘글이 잘 안 써지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온갖 잡생각으로 복잡해질 때도 있다. 그때마다 몇 년 전 내 심금을 울렸던 노희경 작가의 말,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떠올린다. 이 말을 조금 바꾸어 한껏 움츠린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지금 창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다. 그러니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그녀와 함께 실컷 놀면서 마음껏 창작하자.
오랜만에 만난 내면의 아이에게 온몸의 감각을 집중하고 마음의 생각들을 모니터에 옮기는 순간만큼은 멋진 무대 위 발레리나가 된 것만 같다. 내 손 끝에서 태어난 자음과 모음의 조합은 우아한 백조가 되어 눈 같은 백지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뭐 그리 거창하게 말하냐고 누군가는 비아냥 거릴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만큼은 그렇게 보인다는 소리다. 누가 뭐라면 어떤가. 내가 즐긴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때때론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처 받은 아이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할 때도 있다. 올라오는 감정 때문에 잠시 멈춰야 할 때도 있지만 끝까지 쓰다 보면 이것 또한 하나의 문장으로 변한다. 상처를 글로 옮기고 나면 긴 시간 방치되어 문드러져가던 고름이 비로소 터지고 그곳엔 보들보들한 새살이 나기 시작한다. 옛것의 죽음과 새로운 것의 탄생을 느끼는 순간은 마치 기나긴 겨울 끝에 봉긋 피는 목련의 모습 같다. 내면의 예술가가 날개를 펼치는 순간. 억누르고 살았던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끝내면 이런 느낌일까? 한 에세이를 완성하고 나면 새장 안에 갇혀 있던 새가 높은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 것만 같다. 이것이 창작의 힘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아이를 만나고, 아이들처럼 예술적인 삶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깨끗한 호수같이 영롱하고 푸른 마음으로 우리 모두 한때 창작을 거침없이 해 나갔던 예술가가 아니었던가.
오랫동안 마음의 방 한켠에 묻어두고 무시했던 내면의 아티스트를 이제는 주기적으로 꺼내 보듬어줘야 할 것 같다. 뱃속에 나무를 키우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게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내면의 아이가 삶이란 무대 위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내게 저지르는 큰 죄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푸르른 숲이 되는 걸 상상해본다. 따스한 아침 햇살. 사랑노래를 지저귀는 새들.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나의 꼬마 예술가. 미술에 한 획을 그은 천재 화가 피카소가 평생을 아이처럼 그리는 데 썼다면 나는 평생을 아이처럼 사는데 쓰고 싶다.
*위키백과에서 정의한 <몰입>의 의미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