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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 Feb 15. 2021

사랑은 공감을 타고

마음을 치유하는 공감의 힘

“쌤! 쌤! A가 농구공으로 제 머리 때렸어요.” 


쉬는 시간 후, 반 아이들을 줄 세우고 다시 학교로 데려 오던 중 J가 다급하게 말했다.  


“어, 알았어.”


꼭 이렇게 정신없을 때 일이 터지지.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처리해야 할 자잘한 일이 또! 생겼다는 마음에 짜증이 밀려와 듣는 둥 마는 둥 짧게 대답했다. 평소 다른 아이들에 대해 고자질 하길 좋아하는 그의 말이라 더 흘려 들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자기 말을 제대로 안 들었다는 것을 감지한 J는 다시한번 내 옆에 바싹 붙어서 말했다. 


“쌤! A가 저 때렸다니까요!” 


“응 그래, 알았다니까.” 


늘상 있는 일 아닌가. 굳이 내가 해결해 준다 해도 어차피 달라질 건 없잖아. 건성으로 다시 한번 대답하고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오는 마음을 가라 앉히며 교실에 발을 들여 놓으려는 찰나, J가 낮지만 실망 가득한 목소리로 마지막 한방을 날렸다. 


“저 맞았는데 이거에 대해 선생님은 아무것도 안 할거예요?” 


응? 잠깐만. 얘가 지금 맞았다고 했나?

그제서야 학생의 말이 머리에 입력됐다. 


별 일 아닌 듯 무시할 문제가 아니었다. 부랴부랴 애들을 들여보내고, 조용히 책을 보고있으라고 한 후,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있던 중 A가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자기의 머리를 농구공으로 때렸다는 것이었다. 하지 말라고 해도 몇번 반복하고 심지어는 머리에서 튕겨져 나간 농구공으로 슛 넣는 걸 즐겼다고 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는데 자기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던 나를 J는 불같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두 팔짱을 꽉 끼고 A에게 타당한 벌이 내리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을 태세를 취한 그에게 말했다. 


“어머.. 그런일이 있었구나. 너무 아팠겠다. 괜찮니?” 


탁.


얘기를 처음부터 진중하게 들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위로의 말을 건넨 것 뿐이었는데 J 마음안에 꽁꽁 묶여있던 응어리가 스르르 풀리는 소리를 냈다. 마음이 풀리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날 수도 있는 건가. 세상 억울한 표정위에 드리웠던 검은 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A에 대한 복수로 가득찼던 눈은 온데 간데 없이 증발했고 한껏 긴장되어 있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이렇게 공감해 주면 될 걸..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새삼 미안해졌다. 


마음이 풀린 J를 교실로 들여보내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걸음으로 들어오는 A를 불러 세웠다. 이유없는 행동은 존재 하지 않는다. 양쪽 의견을 모두 들어보고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해야했다. 


교실에 못 들어가게 하니 기분이 팍 상한 A. 

곧바로 높고 강인한 방어벽을 세우며 나에게 벌같은 말을 쏘았다. 


“쌤. 저 잘못한거 하나도 없어요. 사과하라고 하지 마세요.” 


일단 치고 들어 오겠다는 건가. 반 친구를 고의적으로 때리고도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아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그의 이야기도 들어보기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네가 그 학생 때렸다면서?’ 하는 질문으로 시작해 옳고 그름을 줄줄이 설명하려 했을텐데 몇년 간의 경험으로 이런 대응은 하나도 도움되지 않는 다는 걸 배우지 않았나. 깊은 심호흡을 한 후 A에게 물었다. 


“그렇구나. 그럼 무슨 일 있었는지 설명 해 줄래? 선생님이 네 얘기도 듣고 싶어서 그래.” 


당장 벌을 줄 것 같지 않으니 마음이 좀 놓였는지  A가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듣고보니 그의 행동에도 일리가 있었다. 얼마전 A가 2주 동안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못 나왔을 때 J가 자기가 코로나에 걸렸다며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고 했다. 근거도 없는 가십을 퍼뜨린 J에게 화가 나 있었는데 마침 그날 기회가 되어 그에게 농구공을 던지며 시원한 복수 한방을 날린 것이었다. 맞을 짓을 했으니 때리는 게 정당하다며 자기는 떳떳하다고 보란듯이 큰소리쳤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요 쌤!’ 외치는 듯 했다. 앞으로 그런 얘기를 떠들고 다니면 더 심하게 대응 하겠다는 선언도 물론 잊지 않았다. 


나의 즉각적 반응은 ‘뭐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반 친구를 때리기까지 하냐’며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바로 5분 전, 작은 공감의 힘을 느끼지 않았나. 잘못된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일단 A의 마음도 충분히 존중해 줘야했다. 참을 인 석자를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꾸짖음 대신 그를 이해하는 말을 건넸다. 


“걔가 너에 대해 소문 내고 다녔을 때 기분이 안 좋았겠다. 맞아. 나도 너였다면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거야.” 


벌 받을 줄로만 알았는데 자기 마음을 위로해주니 이런 반응은 처음 본다는 듯이 학생의 눈이 동그랑땡 처럼 커졌다. 그의 마음이 묻는 듯 했다. ‘이 선생님 뭐지? 왜 날 혼내지 않지? J편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편인가?’ 자기 편을 확보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좀 전까지만 해도 깨질 것 같지 않았던 그의 방어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럼 J 한테 말 해봤어? 네가 그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설명해 줬니?” 


“네? 선생님도 참. 뭘 이런 걸 말로 해요. 그냥 보여줘야해요. 원래 그렇게 푸는 거예요.” 


그런 시덥잖은 방법으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냐며 학생은 콧방귀를 꼈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마음이 열린 틈을 타 얘기를 이어 나갔다. 


“그래? 선생님 생각은 좀 다른데. 먼저 가서 네가 기분 나빴다고 말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지금 봐봐. 대화로 풀지 않으니까 오히려 네가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잖아. YOU are in trouble, not him. 선생님이 J에게 네 상황을 설명할 기회도 안주고 폭력을 사용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니까 J가 다쳤잖니. 걔는 네가 왜 그랬는지 전혀 모르는데.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누군가가 나에 대해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면 나도 엄청 화 나고 복수하고 싶을거야. 하지만 선생님은 어떤 이유라도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곧바로 반박하려던 아이는 다시 생각해 보니 내 말이 논리적으로 들렸는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맞아요. 때린건 제가 잘못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J한테 말해주세요. 그때 제 기분 정말 나빴다고.”  


진심이 담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방방뛰며 감정의 머리로만 반응하고 있던 학생이 차분한 이성적인 머리를 쓰며 자신의 행동을 되 돌아 본 것이다. 내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한 A가 놀라웠다. 이게 공감의 힘인가. 마음이 상해서 한 행동은 마음을 위로해 줘야 비로소 고쳐지는 듯 했다. 다시 J에게 돌아가 사실 확인을 했고, 마음이 안정된 J도 자기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다. 앞으로 쓸데 없는 말을 퍼트리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그 당시 서로의 감정이 제대로 식은 것 같지 않아 사과하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둘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는 옳았다.


자기 존재와 그 느낌을 만나고 공감받은 사람은 특별한 가르침이 없어도 자신에게 필요한 깨달음과 길을 알아서 찾게 된다. 그것이 정확한 공감의 놀라운 힘이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p.149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 말하는 ‘적정 심리학'의 효과를 직접 내 눈으로 보니 공감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잘못을 따지기 전에 ‘네가 옳다'고 말하고 ‘네가 느끼는 감정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고 이해해 주니 신기하게도 합리적인 사고가 알아서 뒤따랐다.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해주고 공감해 주는 일은 크게 언성을 높이지 않고 그가 스스로 옳은 길을 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가장 빠른 길이다.


며칠 후. 아침에 있었던 미팅에서 돌아오니 우유, 비스킷, 그리고 사과가 책상에 놓여 있었다. 미팅 때문에 아침 간식시간을 놓치게 되자 어떤 학생이 내가 좋아하는 간식만 골라서 책상에 갖다 놓은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나를 이만큼이나 세심하게 생각해준 게 언제 였던가. 찡한 마음으로 눈물을 머금으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선생님 책상에 간식 갖다놓은 곱디 고운 마음을 가진 애 누구니? 이렇게 나를 감동 시키면 어떡해?” 


그러자 어디선가 나타난 J가 내 주변을 쭈뼛쭈뼛 맴돌더니 수줍게 대답했다. 


“Ms! You’re welcome. 천만에요, 쌤~”


쑥스러웠는지 자기라고 고백은 못하고 돌려서 말하는 J가 너무 귀여웠다. 얼굴이 빨개지며 어쩔 줄 몰라하던 녀석은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전력질주 하며 밖으로 나갔다. 쌩쌩하게 달려 나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보며 책상에 놓여있는 우유 한모금과 비스킷 한입을 먹었다. 달콤한 비스킷에 담긴 그의 마음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따스하게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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