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주변인이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결혼을 결심하기에는 걸리는 게 너무 많아 마음을 주기 전에 선을 그었다. 그랬던 그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가 좋은 사람이기도 했지만 ‘타이밍’이 맞아서 였다. 6학년 담임을 하며 지친 나를 심리적으로 돌봐준 그의 소중함이 크게 다가왔다.
행복은 자신감에서 온다.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첫 6학년 담임을 하며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교실문 앞에 설 때마다 땅 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자신감을 겨우 끌어올리고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아이들의 냉랭한 눈빛에 바로 움츠러들어버리는 시기였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이 끝나는 토요일. 나를 데리러 학교에 왔다. 그리고, 어디로든 나를 데리고 갔다. 그의 차에는 돗자리와 직접 탄 유자차와 계절에 어울리는 간식들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의 나무 그늘 아래서 그가 펴준 돗자리 위에 앉아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보면 일주일의 고단함이 사라졌다.
그는 어떤 비난도 판단도 없이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내 실수를 자책하고 능력없음에 비관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 속에 있던 나의 좋은 의도들을 짚어주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악평을 들으며 좌절해 있다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보내주는 사람을 만나니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교사는 평가받는 직업이다. 매 수업시간을 ‘재미있다, 없다’로 평가받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1년에 한 번씩 평가 받는다. 동네 어머니들의 입방아에도 자주 오르내린다. 무뎌지지 않으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형편없는 교사라고 스스로 상처 낼 수도 있다. 좋은 교사라는 것은 너무 상대적인 것이라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그 온갖 기준에 나를 끼워넣고 넌 정말 부족해. 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이 일을 계속해나갈 수 없다.
그는 3년차 교사의 이런 푸념을 존중과 격려하는 방식으로 내 영혼을 지지해주었다. 주변인이었던 그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됐다. 사는 동안 만나게 될 고난의 산 앞에서 그와 함께라면 이렇게 돗자리와 따뜻한 차 한잔으로도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6학년 담임을 하며 심리적으로 많이 무너져 딱 내 그림자만큼만 내가 남은 때.
나는 그때서야 그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