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브티 Sep 28. 2020

사랑의 온도

다이내믹한 첫 6학년 담임을 뒤로하고 나는 5학년을 희망했다.

 ‘오늘도 무사히’를 마음에 새기고 다닐 만큼 조마조마해서 6학년을 한 번 더 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내 희망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기 이틀 전에야 작년 멤버들에서 선배님들과 빠지고 그 자리에 전입교사와 젊은 교사들이 추가된 6학년 담임이 발표됐다. 교감 선생님은 내 의견 따위 묻지도 않으셨다. 내 희망 학년에 ‘6학년’은 없었는데 2년 연속해서 6학년 담임을 하게 됐으니 새 학기 첫날 내 기분은 말이 아니었다. 올해는 또 어떤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려나 두근두근했다.


 교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간신히 용기를 끌어올려 문을 열었다.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이 난다. 미리 창을 열어둔 아이가 있었는지 교실 안엔 상쾌한 바람이 맴돌고 있었다. 교실로 들어오는 나를 발견하자 모두 자리에 앉아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호의적인 시선을 오랜만에 받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움츠렸던 어깨가 펴졌다. 저절로 웃음도 지어졌다. 목소리도 조금 커졌다. 다정한 눈 맞춤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 반이 된 걸 좋아하고 있었다!


사람으로 상처를 받으면 사람으로 치유하라는 말이 있었던가. 나는 진리를 체험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수업에 잘 참여했다. 책상을 발로 차거나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는 학생도 없었다. 연예인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며, 운동장 조회 시간을 틈타 사라져 한 동안 나타나지 않는 아이도 없었다. 공이 안경을 때려서 안경 조각이 눈에 들어가 급히 병원에 갈 일 또한 일어나지 않았다. 질투한 친구네 가게에 일주일 연속 오물을 투척해 경찰 조사를 받은 아이도 이번에는 없었다.


나는 1년 동안 바로 전 해에 아이들에게 받았던 상처가 아무는 것을 느꼈다. 평범하게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재밌게 수업하고 내일을 기대하며 종례를 했다. 수학여행 때 무슨 간식을 가져올 거라는 아이들 다운 재잘거림을 들으며 큰 걱정 없이 행사 준비를 했다.


학교 생활이 안정되자 성장의 욕구가 올라왔다. 평소 관심 있었던 모임에 가입해서 2주에 한 번씩 모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막 결혼한 새댁이었던 나는 결혼식 전 날까지 마음이 편치 않아 남편에게 심리적으로 많이 의지했었다. 주말부부라 월요일 아침이면 헤어져야 했었는데, 남편은 학교에 나를 들여보내며 늘 걱정스러워했었다. 하지만, 그 해에는 씩씩하게 학교에 다니는 나를 보며 그는 크게 안도했다.


그 후로 힘든 반과 힘이 되는 반을 번갈아 겪으며 나는 면역력이 생겼다.

힘든 반을 만났을 때는 나 역시 힘을 빼고 집중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 하는 법을, 힘이 되는 반을 만났을 때에도 역시 힘을 빼고 내 안에서 끌어내지는 것을 마음껏 실천해보는 방법을.

방전과 충전을 번갈아가며 균형을 맞춰가는 삶을 아직도 살고 있다.


아이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아이들을 만나던 나는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선생님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에서 아이들을 사랑하면 됐다.


작가의 이전글 밥 먹자, 선생님이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