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브티 Sep 21. 2020

밥 먹자, 선생님이랑

아버님은 몹시 젊었다. 6학년짜리 남자아이를 둔 아빠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는 슈트를 입고 방과 후에 교실로 찾아왔다. 나는 교실에서 단둘이 이야기하기가 겸연쩍었다. 학년 연수실을 대신하는 개방된 장소의 소파에서 물 한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빠르게 가정 사정을 설명했다. 소설에 나올 법한 가정환경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말씀하셨다. 


시골에서 보기 드문 슈트를 입고 학교에 온 아버님이었지만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워낙 파다하게 난 소문 속 주인공이시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지역에서 주름잡고 있는 00파 일원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소문과는 다르게 아이에 대해 갖고 있는 걱정이며, 상담내용이 평범했다. 그러나 대화하는 내내 나를 보는 눈빛이 매서워 나는 조금 무서웠다. 상담의 내용은 갑작스러운 가정의 변화로 인해 아이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의 내용이었다. 가정환경의 변화로 어렵긴 해도 부모님이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시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하지만,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나자 아이가 조금 달라졌다. 평소엔 내성적인 아이라 공부에 뜻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튀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친구들과 투닥거리긴 했어도 주먹다짐을 하지는 않아서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학기가 시작되자 아이가 살부터 빠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처럼 얼굴 살부터 내렸다. 급식실에서 보면 허겁지겁 밥을 맛있게 먹었다. 건강이 나빠진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왜 저렇게 살이 빠졌을까? 아이를 불러다 이야기를 나눠 봐도 별다른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성적으로 조숙했다. 키가 작고 발육이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나는 아이가 성적으로 조숙하다 여겼다. 이유 중 하나는 여자애들의 밀고의 내용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쳐다볼 때면 기분이 나쁘다 했다. 뭔가 끈적끈적하게 보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다 했다. 여러 명이 몰려와서 이야기를 하니 예의 주시하고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 아이들의 그런 불쾌함에는 원인이 있었다. 이 녀석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며 성적인 농담을 자주 했다. 농담의 수위가 센 편이라 남자애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돌다가 여자애들에게까지 전해진 모양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소문의 진원지인 녀석의 눈빛이 싫었던 것 같다. 여자아이들과의 갈등은 아이를 거칠게 만들었다. 작은 일은 부풀려져서 교실에서 다툼이 자주 일어났다. 하교 시간쯤에는 녀석의 얼굴이 울그락붉그락해져서 교탁 앞에서 나에게 소리 지르는 것으로 끝났다. 여자 아이들의 하소연을 나는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들어주었다. 내가 보기에도 아이의 눈은 게슴츠레하게 풀려있을 때가 많았고,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는 성적인 느낌에 대해 눈떴구나 하는 신호가 자주 보였다. 


아이의 상태가 점점 위태위태하게 느껴져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대화가 잘 통했다고 느꼈던 아버님과 전화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머님과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 그때서야 아이의 상황을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야,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니?”


 내 물음에 하교하다 말고 도로 교실로 들어와 너무나 쉽게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집에 사정이 생겨서 지금 외할머니네 집에 있다고 했다.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아이는 친엄마의 집에 맡겨진 것이다.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머님은 아이를 직접 양육하시지는 않는 눈치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읍내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했던 아이였다. 한순간 바뀐 환경에 적응이 쉽지 않아 보였다. 외할머니댁의 위치와 외할머니의 전화번호를 받아두고 아이를 집으로 보냈다. 아이는 그 후로 내게 와 무심히 자기 이야기를 하고 집에 가곤 했다. 


어느 날에는 갑자기 배가 자주 고프다 했다.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기색을 감추고 몇 마디 더 물었다. 


“어? 배가 고파? 그럼 집에 가서 바로 밥부터 먹어야겠다.”

“선생님, 요즘 태양초 고추를 파는 계절이잖아요. 외할머니가 너무 바쁘셔서 집에 아홉 시가 넘어오세요. 그래서 저녁 먹는 시간이 늦어져서 배가 많이 고파요.” 


그 말에 집에 밥이 없다면 빵이라도 사 먹으라고 말하고 이천 원쯤 쥐어준 것도 같다. 



학교에 일이 남아 늦게까지 하다가 퇴근이 늦어진 어느 날이었다. 교실 밖으로 나오니 늦가을 풍경이 어딘가 을씨년스러웠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낙엽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갑자기 A생각이 났다. 오늘은 저녁밥 먹었으려나. 늘 혼자 있다는 A가 어쩌고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아이가 일러준 외할머니댁 위치에 가보니 그곳엔 컨테이너 박스가 한 개 놓여있었다.


 ‘집이 아니라 컨테이너 박스에서 지내고 있었구나.’ 


어쩐지 가슴이 철렁했다. 집 입구에 댓돌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아이 신발 한 쌍만 덩그러니 있었다.


 “똑똑..A야, 집에 있니?” 


조금 기다리니 A가 부스스 문을 열었다. 어둑어둑한 방 안에 텔레비전 불빛만 켜 있었다. 아이는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던 듯했다. 집안에 어른이 안 계셔서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밖에서 보니 창고 겸 집으로 쓰는 공간인 듯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말했다.


 “선생님이랑 밥 먹을래?” 

아이는 바로 따라 나왔다. A는 사근사근한 학생은 아니었다. 떡볶이 한 접시와 김밥을 앞에 두고 우리는 말없이 먹었다. 할머님과 통화를 한 것은 아니라서 마음이 다급하기도 했다. 그런 걱정을 하는 내게


 “선생님, 할머니는 9시까지는 못 와요. 전화도 잘 못 받으시는데요.”했다. 

아이가 집에 돌아간 뒤에 할머니에게 있었던 일을 전했는지 그 뒤로 감사하다는 인사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집에 계신 날 집에 방문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평소엔 이 정도로 바쁘진 않는데 태양초 고추 파는 시기엔 정신이 없다고 하셨다. 직접 뵈니 아이를 무조건 방임하는 분 같이 보이진 않았다. 


그 후로도 몇 번 아이와 저녁을 함께 먹었다. 매주 목요일에 저녁 함께 먹을까?라고 야심 차게 권했지만 나는 사실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이의 환경이 부담스럽고 늘 어두운 녀석을 대하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살짝 망설이는 동안 겨울이 되고 방학을 맞았다. 

졸업을 한 뒤로 몇몇 아이들은 다음 해에 나를 찾아왔지만 A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늦가을 무렵 바람이 갑자기 차갑게 느껴지는 밤이면 종종 A 생각이 난다. 

컨테이너 박스 안 텔레비전 불빛 안에서 멍하니 있던 A. 방 안에 가득했던 것은 서글픔이었다. 

열세 살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겪고 여기저기 떠돌다 머물게 된 임시 공간에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작가의 이전글 함께 가자, 선생님이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