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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Sep 14. 2020

함께 가자, 선생님이랑

학교 뒤쪽 오르막길 끝에 우리 학교 축구부가 사는 합숙소가 있었다. 우리 반에는 축구부가 두 명 있었는데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축구 연습을 하다가 그곳으로 가서 생활했다. 수학여행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나는 학교에서 미적대다 저녁이 다 되는 시간에 퇴근했다. 그리고 학교 뒤편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축구부 훈련도 끝났을 시간이다. 


축구부 아이 하나가 아침에 갑자기 수학여행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미 여행비도 완납했고 친구들과 다툰 일도 없었다. 부모님도 허락한 여행을 본인이 가지 않겠다고 나서는 모양이 수상하여 이유를 계속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는 학기 초부터 내 속을 무던히 썩였다. 담임이 된 지 일주일 정도 됐을까? 교장실에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담임을 바꿔달라는 쪽지를 써서 교장선생님 책상에 올려놓은 것을 마침 우리 반 아이가 교장실 청소를 하며 발견해 내게 가지고 왔다. 수업에 제대로 참여를 하지 않아 교과서 펴고 똑바로 앉으라고 했더니 벌떡 일어나서 책상과 의자를 발로 마구 차고 교실 밖으로 나간 전력도 있었다. 맨 뒷자리에 위태롭게 앉아 친구들과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욕설을 툭툭 내뱉기도 했다. 사춘기, 반항 냄새를 풀풀 풍기는 아이와 힘겹게 한 학기를 보냈다.


 길 끝에 올라서서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꽤 가파르다. 아이는 매일 이 길을 오르락내리락했겠다. 아이들이 사는 합숙소엔 대문이 따로 없었다. 마당도 없이 길게 나온 처마 밑에 정리된 신발만 보였다. 미닫이 문을 똑똑 두드리니 금방 문이 열렸다. 자유시간인 모양인지 아이들이 놀고 있다. 나를 알아본 학생이 우리 반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는 문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문 바로 앞에 서서 나를 쳐다봤다.


 “현아, 왜 갑자기 수학여행을 안 간다고 한 거야? 선생님이 궁금해서 찾아왔어. 특별한 이유가 있니?”

 “…….” 


아이는 발끝만 보고 대답을 안 했다. 불편한 건 바로바로 말했던 녀석이라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대답을 억지로 하게 할 수는 없어서 합숙소 생활로 질문을 바꿨다. 

몇 시에 일어나는지, 밥은 어디서 먹는지, 잠은 언제 자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부모님 이야기도 나왔다. 주말이면 집에 가야 하는데 부모님이 바빠서 자주 가지 못한다고 했다. 6학년이어도 아직 아이인데 부모님을 자주 만나지 못하다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아이는 밖으로 나와 있었다. 우리는 미닫이문에 바로 붙어있는 조그만 마루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부터 아이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고개를 푹 숙이고 조그맣게 말을 했다. 


“…입고 갈… 옷이 없어요. 유니폼 밖에 없어서 엄마한테 말했는데 엄마가 안 사줘요. 친구들은 수학여행 간다고 다 새 옷 사 입는데 나만 유니폼 입고 가면 쪽팔리잖아요.” 


아, 그런 거였구나. 새 옷이라니. 생각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늘 축구부 유니폼 차림이었다. 두 종류를 번갈아가면서 입었고, 종종 점퍼를 걸쳤으며 계절마다 길이가 짧아지거나 길어질 뿐이었다. 부모님께 여러 번 얘기했는데도 안 사주셨다니 전화를 드리기도 난감했다. 감독님이 귀가하시면서 아이와는 그대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터미널 근처에 있는 아동복 가게에 갔다. 3년 차 교사였던 내가 아동복을 살 기회는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사장님의 도움으로 사이즈를 찾아 또래 아이들이 잘 입는다는 라운드 티셔츠와 면바지 한 개씩을 샀다. 서비스로 넣어주신 양말까지 챙겨 쇼핑백에 담았다. 


“딸랑.” 

아동복 가게 문에 달려있던 방울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밤이었다. 내일 아침에 이걸 어떻게 전달한담? 자존심 강한 녀석이라 받아줄지 어떨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쇼핑백을 잘 갈무리해서 아이의 책상에 걸어뒀다. 따로 쪽지를 쓰지도 않았고 알은 체도 하지 않았다. 방과 후에 교실 정리를 하면서 보니 책상에 걸어뒀던 쇼핑백이 없었다. 아이가 집으로 가져간 것이다. 수학여행 가기 하루 전 날. 아이가 내게 쪽지를 남겨뒀다. ‘선생님, 저 수학여행 가요.’라고 쓰여 있었다. 


파주까지 바로 떠나야 하는 일정이라 새벽 공기를 마시며 운동장에서 모이는 수학여행 당일.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였다. 줄을 세우며 한 명씩 확인하는데 맨 뒷 줄에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은 아이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길이며 품이 딱 맞았다. 바지 길이가 길까 봐 걱정이었는데 맞춘 듯 딱 맞았다. 함께 신은 운동화와도 제법 잘 어울렸다. 옷 입은 태가 보기 좋아서 자꾸 눈이 가려는 걸 꾹 참고 큰 소리로 외쳤다.


 “얘들아! 수학여행 가자! 준비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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