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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Sep 07. 2020

그녀의 이상한 핑계


나의 두 번째 근무지는 지역의 거점학교였다. 지나고 보니 교사 사관학교에라도 다닌 듯 근무하는 내내 연구학교 공개수업을 했었다. 공개 수업일에는 군에 계시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오셨기에 예전에 근무했던 선생님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녀는 내가 근무했던 첫 학교의 동료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젊은 선생님이었다.

 나는 본교 그녀는 분교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1년에 서너 번 정도 얼굴을 보았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늘 검정 투피스 차림이었다. 묻는 말에는 잘 대답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아서 까다로운 인상이었다. 함께 발령을 받았기에 학교 어른들은 종종 우리 둘을 비교하곤 했다.

 감성적이고 사람 좋아하는 나와 이지적이고 개인적인 그녀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2년 만에 학교를 옮기며 더 이상 그녀와 회식자리에서 마주칠 일도 없어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3년 후쯤 공개 수업 일에 그녀와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얼굴 아는 이를 만난 정도의 반가움으로 적당히 인사하고 헤어지려는 나를 붙들었다. 뭔가 하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었다. 우리는 운동장에 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 그거 알아요? 지금 제가 맡은 아이들. 예전에 선생님이 가르쳤던 아이들이에요.” 


그녀의 말을 듣고, 3년 전을 떠올렸다. 쉽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가르치는 동안 학교 도서관도 새로 만들어야 했고, 생활 지도가 어려운 학생들이 많아서 1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 아이들이 벌써 5학년이라니. 힘들었던 기억보다 부쩍 컸을 아이들 생각에 반가워서 이것저것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예의 그 비틀린 웃음을 먼저 지어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제가 아이들 맡고 너무 문제가 많이 생겨서 한 명 한 명 깊은 상담을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모든 문제가 선생님이 맡았던 해에 시작됐더군요. 아이들이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선생님은 알고 계셨나요? 상담 후 모든 내용을 정리해서 학부모님들께 알려드리고, 교장 선생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다들 기가 막혀하셨어요. 그리고 모두들 선생님에 대해 성토를 하시더군요. 알고 계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나야말로 기가 막혔다. 몇 년 만에 만난 사람이 나를 난도질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굴에 핏기가 확 가신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예의 없음에 분개하는 대신 내가 그 시절 놓친 것은 무엇이었나 복기했다. 아이들은 내가 두 번째로 맡은 학생들이었고 저학년이었기에 부모님들과 소통하며 나름 최선을 다했다. 

자신이 맡았을 때도 아이들이 힘든 아이들이었음을 느꼈다면, 나 역시 그랬으리란 생각은 안 들었던 것일까?

 싸늘한 그녀의 일갈이 내내 머릿속을 울렸다. 


내가 그 학교를 2년 만에 떠난 것은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주변 동료들이 편하지 않아서도 컸다. 아이들을 체벌하거나 학대한 것도 아닌 이상 내가 그들에게 그렇게 미움받을 이유가 없었다. 6년 내내 같은 반으로 진급하는 아이들이기에 현재의 문제는 과거의 고리에서 시작됐을 확률이 높다. 그 매듭을 찾아보려 노력한 그녀의 성취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굳이 그 과정에서 드러난 진실을 과거 담임에게 알려주며, 너 이렇게 형편없는 교사였었어. 알려줬어야 했을까? 내가 아니라 연배 높으신 선배님이었더라도 그녀는 나에게 했듯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카락 한 올도 놓치지 않고 틀어 올린 검정 투피스의 그녀를 그 후로 다시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그 날 그녀가 내게 남긴 생채기는 집단 폭력 린치를 당한 듯 가슴에 얼얼한 통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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