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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Aug 31. 2020

불량 언니의 학교 방문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별관에 있던 급식실에서 5층에 있던 교실에 올라오는 동안에도 소란이 느껴졌다. 우리 층에서 무슨 일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급히 교실로 향했다. 마침 나를 부르러 오고 있던 우리 반 아이들과 마주쳤다. 아이들 눈빛은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큰일 났다는 표정이었다. 아이들끼리 대단한 싸움이 일어난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달려갔다.


 5층 복도에 들어서니 6학년 아이들이 복도를 꽉 메우고 서 있었다. 아이들 머리보다 하나 더 쑥 올라온 같은 학년 남자 선생님 얼굴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네가 보호자라는 거야? 그럼 지금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네가 다 책임질 수 있다는 거지? 너 학교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부모님이 너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거 아셔? 어디서 건방지게……. 당장 안 나가? 여기 네 동생만 다니는 학교 아니다. 아무 때나 쳐들어와서 따지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서슬 퍼런 선생님의 호통에 금세 기가 죽은 두 사람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요란하게 파마를 하고 화장을 진하게 한 여고생 두 명이 우리 교실 앞에 서 있었다. 오후 1시가 되기도 전이었다. 이 시간에 고등학생이 어떻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가. 황당하기도 하고 무슨 일로 온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 선생님의 기세에 눌려 그녀들은 황급히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흥분한 아이들을 단속한 후 동료들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예사롭지 않은 여고생 두 명이(본인들이 고등학생이라고 밝혔다.) 우리 교실 앞에 서 있길래 무슨 일로 왔느냐고 했단다. 그랬더니, 


“담임이란 사람이 우리 동생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혼내주려고 왔어요.”

라고 했단다. 


평소 다혈질이었던 후배 선생님은 그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상담을 요청한 것도 아니고, 혼내주려고 왔다니. 아무래도 선생님이 아가씨 선생님이라고 우습게 본 모양이라고 했다. 


종이 울리고 5교시가 시작되었다. 당사자인 학생은 얼굴이 새파래져 있었다. 아이를 불러 물어보았다. 언니가 찾아오기까지 한 이유가 무엇인지. 더듬더듬 속상했던 것을 쏟아내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건은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점심시간에 한 남학생이 이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아이는 남학생과 다투다 급기야 울면서 화장실로 왔다. 마침 내가 화장실에 있다가 그 사건을 알게 됐다. 아이가 화장실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동안 나는 바로 교실로 돌아와 남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아이가 돌아오면 사과하라고 시켰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겼다.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두 아이의 상황을 정리해주고 마음을 풀어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들어보니 사소한 다툼이라고 내 나름대로 판단했었고, 여학생도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남학생에게 잘 알아듣게 타일렀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남학생을 지도한 사실을 몰랐고 나는 졸지에 우는 학생을 두고도 무시한 선생님이 됐다. 


복도로 남학생을 불러 여학생의 오해를 풀어주고, 보는 앞에서 사과도 하게 했다.


 “네가 그렇게 속상한 줄 몰랐네.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꼭 얘기해.”

라고 말하며 섬세하지 못했던 나를 탓했다.


 방과 후에 아이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다. 그리고 말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상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평소에 늦둥이 막내를 엄청 챙기더니 저에게 말도 하지 않고 쫒아갔네요. 왜 그 시간에 학교에 가지 않고 거길 갔는지. 다시는 학교에 찾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다행히 어머님께서는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셨다. 그러나  학교로 나를 혼내주겠다고 가족이 쫓아온 전무후무한 상황을 겪은 나는 그 후로 여러 번 악몽에 시달렸다. 


만약 동료가 나서 주지 않았다면 나는 불량 언니들을 맞아 어떻게 했을까? 

꿈속에서 나는 매번 다른 선택을 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끝나고 느껴지는 감정은 모두 열패감이었다. 패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떻게 감히 십 대 소녀 두 명이 일과 시간 중에 따지러 올 수 있었나? 그것은 충분히 가서 해볼 만하다는 계산에서였을 것이고. 그만큼 내가 쉽게 보였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사나운 십 대 소녀 앞에서 죄인처럼 서 있었을 내 모습을 그려보는 일은 너무 끔찍했다. 나는 평소 작은 말다툼에서 이겨본 적도 많이 없고, 소리 높여 훈계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짙은 화장의 불량 언니가 하는 말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을 확률도 높다. 복도를 가득 채우며 구경에 나섰던 6학년 학생들이 떠올랐다. 그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겠지. 나는 아이가 졸업을 한 이후에도 종종 그 복도에 얼어붙은 듯 서 있는 꿈을 꿨다. 



3년 차의 기억은 고스란히 지금도 생생하게 불러낼 수 있다. 용기를 내 본다. 노려보는 불량 언니에 시선을 두지 않고, 복도 끝에 서 있는 나를 본다. 다가가 어깨를 안아준다.



 “많이 두려웠지? 사람들이 너를 형편없는 교사로 볼까 봐, 불량 언니가 너를 꺾어 넘기고 의기양양해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단해.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수습하려 애썼네. 

상처 받고도 아이들 곁에서 아직 열심히 일하고 있네. 잘했어. 잘했어. 

오해받고 비난받는 것에 대해 두려워 마.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어.

약해서, 힘이 없어서 당했다, 라는 피해의식도 날려버려. 

그저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만 손에서 놓는 용기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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