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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Aug 24. 2020

매를 들다, 관계를 자르다

교탁에 서서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속마음을 확실히는 몰라도 나에게 호의적인지 호의적이지 않는지는 알 수 있다. 호의적이지 않는 눈빛의 아이들이 열 명이 넘어가면 교실 문을 여는 일이 겁이 난다. 대체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일까? 저희들끼리 내 흉이라도 본 것일까? 마음은 지옥이 된다.


 6학년을 하면서 아이들 눈치 보는 교사가 됐다. 그런 척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기에 실제로 아이들이 나의 두려움을 알아챘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속 마음은 그랬다. 특히 주말 지나 월요일이 되면 여자 아이들을 중심으로 그런 느낌이 더 심해졌다. 


우리 반에는 다른 반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중학생과 교제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얼굴도 예쁘고 날씬한 데다 솔직해서 아이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여름이 다가오는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교무실에 불려 갔다. 우리 반 여학생이 주말 저녁에 중학교 남학생들과 어울려 교내 운동장에서 소주를 마시다 마침 순찰을 돌고 계셨던 당직 기사님께 걸린 것이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노발대발하시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지도하라고 하셨다. 아침부터 봉변을 당한 느낌이라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늘도 아이들은 반항적인 눈빛으로 보내고 있다. 그렇잖아도 화가 나는데 저 애들은 왜 나를 저리 볼까 싶어 절망스러운 기분이 됐다. 


입술에 립글로스를 발라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비벼가며 나를 보는 그 애를 보는 순간 일단 그 애를 누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 애를 혼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를 칠판 앞에 세워 두고 교실 뒤편으로 가서 밀대 걸레에서 걸레를 빼냈다. 손바닥을 지시봉으로 몇 대 때려본 적은 있지만 매를 들어야겠다 마음먹고 제대로 때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걸레가 빠진 파란색 밀대는 보기에도 위협적이었다. 아이는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밀대를 붙들고 아이의 엉덩이를 여러 번 때렸다. 한 대씩 때릴 때마다 교실 분위기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너 무슨 잘못 한 줄 알아?”

“네, 중학생 오빠랑 술 마셨어요.”

“그래, 다음부터 또 그럴래?”

“아니요.” 


뻔한 질문과 대답이었다.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용기를 주는 선생님이 내 꿈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마음에 맞는 열쇠를 찾지 못해 고군분투하다 스스로 씩씩거리며 무너졌다.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그때 아이가 왜 중학생 오빠와 주말 밤에 소주를 마셨는지 이유를 모른다. 그 애로서도 그런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괴로운 일이 있었을까? 아님 중학생 오빠가 애정 테스트를 선을 넘는 담력 시험으로 들이댄 것이었을까? 


그 후로 아이와 나의 관계는 잘라졌다. 아이는 내가 원하던 대로 반항의 눈빛을 보내지 않았고, 학교에서 중학생 오빠와 술을 마시는 일도 하지 않았다. 자잘히 속을 썩이긴 했지만 매를 맞을 만한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에게 하듯 나는 아이를 열심히 가르치고 일기장에 덧글도 써줬다. 하지만 그 애와 연결된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1년 동안 만나는 모든 학생과 마음으로 다 연결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직 자라는 아이들이기에 어떤 실수를 저질러도 믿을만한 어른에게 가느다란 끈이라도 연결되어있어야 했다. 나는 나에게 적대적인 6학년 내 교실이 두려웠다. 나의 어설픈 학급경영과 교직 생활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 아이들을 똑바로 대하지 못하고 그저 빨리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 아이들을 누르고 싶었다. 힘든 반은 힘든 반대로 잘 맞는 반은 맞는 반대로 교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했는데 말이다.


 3년 차에 만난 6학년 아이들은 나에게 혹독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강압적인 태도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과 교사로서 부족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학급 운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잘하고자 해도 3년 차에 볼 수 있는 시야는 넓지 않다. 그저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괴로워하지 않았어도 좋았다. 아이의 행동은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아이의 상황을 보여주는 힌트이며, 도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지금은 알 것 같다. 


은효야, 선생님이 그때 친구들 앞에서 매를 든 거 정말 미안해. 

선생님이 은효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도 듣지 않고 혼내기부터 해서 답답한 마음도 있었겠다. 

은효가 준 깨달음으로 선생님은 만나는 아이들에게 훈육할 때 마음까지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14년 전 6학년 담임의 전화번호를 여전히 지우지 않고 카톡에 뜨게 해 놓은 은효의 마음을 선생님은 사실 잘 모르겠다. 은효의 마음을 상하게 한 선생님이라 두고두고 보는 것일까? 아님 우리는 사실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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