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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Nov 16. 2020

경청은 나의 힘!

"선생님을 ~!"

"보세요~!"


아이들의 집중력은 길지 않다. 자세가 흐트러지고 친구와 장난하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 집중 약속 신호를 한다. 날이 흐리거나 체험활동을 중간에 하고 돌아온 후 수업을 하게 되면 "선생님을~" 하고 소리 높여 몇 번을 말해도 잘 따라 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나의 수호천사 학생들을 눈으로 찾는다. 폭풍우 속에서 등대를 발견한 선원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내 수업을 들어주는 아이들을 눈으로 더듬으며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남은 아이들도 서서히 끌려와 종이 치기 전까지는 흔들리는 상체를 의자에 고정시킬 수는 있게 된다. 


민성이는 수호천사 학생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이다. 민성이를 담임하기 전 해부터 나는 학급일지를 직접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학교의 일상을 자세히 기록해두면 교직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날마다 수업계획을 세우고 학급에서 일어난 일들을 꼼꼼하게 적어뒀다. 5학년 민성이를 만났을 때엔 학급일지를 기록하는 일에 재미가 붙어서 수업계획을 학급일지에 상세히 기록했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열두 살 아이들은 참 바빴다. 공 들여 수업 준비를 해가도 수업 시작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눈이 풀렸다. 일기를 통해 본 아이들의 하루는 촘촘하게 짜여 있었다. 직장 다니며 아기를 둘 키우는 나보다 더 하 루 일정이 늦게 끝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이해했다. 오후 수업 중 눈이 풀려도 피곤하겠거니 했고 주요 교과가 아닌 수업에서 긴장을 풀고 마음껏 공상하는 아이들이 늘어가도 그러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죽 수업해야 하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자존심도 상하고 힘도 들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학생이 민성이었다. 민성이는 어느 자리에 앉혀놔도 수업 중 나를 따라다니는 시선이 끊기지 않았다. 나는 수업 중 궤간 순시를 자주 한다. 뒷 쪽에 앉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교실을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민성이는 자세까지 바꿔가며 시선으로 쫒는다. 민성이의 그런 모습은 내게 깊은 감화를 주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 수업을 듣는 단 한 명이 있다는 것! 감동을 넘어선 감격이었다. 지난번 실과 시간에는 아이들이 멍~했는데, 대충 교과서만 읽어주고 말까? 싶다가도 민성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민성이는 역대 수호천사 학생들과는 달랐다.  그 애는 내가 준비한 모든 수업을 집중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 애의 경청하는 태도는 내 열정에 불을 지폈다. 그 해 나는 어떤 해보다 더 공격적으로(?) 수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가수들이 단 한 명을 위한 콘서트를 해보는 경험처럼 내게는 민성이가 있었기에 안심하고 내 교육력을 펼칠 수 있었다. 


아이가 적극적으로 발표를 잘하거나 수업 중 추임새를 넣어 내 흥을 돋워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민성이는 '선생님의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이었다. 민성이를 통해 경청의 미덕을 확실히 알았다. 눈과 마음을 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민성이는 경청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1년 동안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 해 민성이는 마지막 시험에서 올백을 맞았다. 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내 모든 수업을 열심히 들었기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을 것이고 아이는 시험지에 그것을 차분하게 적어냈을 것이다. 시험 결과가 나온 날 민성이 어머님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민성이가 올해 성적이 정말 많이 올랐어요. 민성이가 그러더라고요. 선생님 수업은 정말 재미있다고요. 매일매일 열심히 가르쳐주셨다고 했어요. 아이들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1년 동안 적었던 내 수업일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봤다. 깨알같이 적은 수업계획과 수업결과들, 상담의 기록들을 손으로 더듬으며 그 순간을 즐겼다. 교육은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다. 내가 말과 행동으로 옮긴 교육의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지 바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지칠 때 떠올릴 수 있는 기억 하나를 건졌다. 선생님이 되어 참 좋았다.


민성이는 내게 1년 동안 머물다 6학년으로 올라갔고 나는 지역을 바꿔 학교를 옮겼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집중하지 않거나 못하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매일 수업을 한다. 수업을 하다 아이들이 집중이 흐려지는 순간이 되면 교실 어디선가 민성이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 괜찮아요." 다독여주는 것 같다. 나를 거쳐간 아이들이 나를 지지해주는 것 같다. 힘이 난다. 배에 힘을 주고 "선생님을~" 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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