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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Nov 23. 2020

선생님, 그 화장 안 어울려요!

사춘기 아이들은 외모에 민감하다. 자기 외모에 민감한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담임 외모에 대해서까지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폭력으로 느껴졌다. 5학년을 연속 3번 하며 나는 화장을 제법 진하게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평소 작은 눈이 콤플렉스였기에 바로 쌍꺼풀 수술을 했다. 수술은 제법 잘 됐지만 앞 트임을 하며 남은 흉터는 새로운 콤플렉스가 되었다. 하지만 시원하게 커진 눈은 만족스러웠다. 하여 따로 화장을 하거나 새로운 시술을 받지는 않았다. 이 흉터가 다시 문제가 된 건 5학년을 연속해 담임하면서부터였다. 


열두 살 아이들은 제각각이었다. 나이보다 성숙해서 선생님에게 할 이야기 안 할 이야기쯤은 구분하여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기도 했지만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받아주기 힘든 말을 생각나는 대로 하는 아이도 있었다. 


5학년 국어에는 토론하기가 있어서 하나의 주제로 찬반을 나누어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다. 토론은 주제가 얼마나 아이들의 생활에 밀접한 내용을 선정하느냐에 따라 아이들 참여도가 달라졌다. 고심해서 아이들과 토론 주제를 골랐다. 여자 아이들은 주로 외모에 관한 주제를 선호했다. 초등학생들에게 화장을 허용해야 한다. 성형은 필요한 것인가, 같은 주제가 나왔다. 과반수의 득표를 얻어 그 날 아이들은 초등학생들에게 화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제로 토론을 했다. 


"초등학생들도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화장을 허용해야 합니다."

"초등학생들은 아직 미성숙합니다. 그런 시기에 화장을 하면 어른이 되었을 때 오히려 피부가 망가져 회복이 어렵습니다." 


양쪽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자연스럽게 화장을 하고픈 여자 아이들과 그런 여자 아이들을 덮어놓고 반대하고 싶어 하는 남자아이들이 갈렸다. 모든 여자 아이들이 화장을 하고픈 건 아니었던지 그 날 토론은 '개성 표현보다 건강한 피부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남자아이들의 주장이 더 먹혔다.


방과 후에  '화장파'의 여자 아이들이 남아 매섭게 남자아이들을 질타했다. 그때 한창 열이 오른 규리가 나를 슬쩍 보더니


  "선생님, 쌍꺼풀 수술하신 거죠? 티 다나요." 했다.


 아이들 화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내 눈에 대한 화제로 옮겨가자 나는 당황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선생으로서 예뻐지려고 수술한 자국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것이 그 순간엔 어쩐지 부끄러웠다. 당황한 내가 얼굴이 벌겋게 돼서 가만히 있어도 규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몇 학년 몇 반 샘도 했고, 자기 엄마도 했고 이모도 했고 이러면서 주변의 성형인들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리고 자기도 어른이 되면 수술할 거라는 말을 했다. 


다음 날 아침, 화장을 하며 아주 오랜만에 유심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쓸 줄은 몰랐다. 하지만 잠시 잊혀 있던 것이 불과했던 콤플렉스는 언제 잊혔었냐는 듯 금세 올라왔다. 그 날부터 나는 눈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쉐도우를 입히고 아이라인을 그리고 나면 흉터 자국보다 진한 화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잖아도 커진 눈매는 화장으로 더욱 강조되었다. 나름 무장을 하고 교단에 서야 조금 안심이 됐다. 나는 그 해가 끝날 때까지 눈 화장을 했다. 


두 번째 5학년을 했을 때에도 외모에 관심 많은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내 눈 화장법에 대해 토를 달았다.


 "선생님, 그 화장 안 어울려요!" 


그리고 제 엄마가 얼마나 예쁘고 화장을 잘하는 사람인지 조목조목 나와 비교하며 설명했다. 철없는 열두 살 아이가 한 말이었지만 속상했다. 그 애가 그 말을 했을 때 말리는 아이가 없었다. 그 말은 동조하는 것이었을까? 아이들의 눈과 입을 보며 나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해에도 눈 화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같은 학교에서 세 번째 5학년을 했을 때엔 특별히 내 외모에 대해 말을 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래도 그 학교에 있는 동안엔 습관처럼 그렇게 진한 화장을 하고 다녔다. 


눈 화장을 하지 않게 된 건 1학년을 하면서부터였다. 1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의 콤플렉스에는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 와서 선생님과 공부하고 운동장에서 친구들하고 신나게 놀고 급식 맛있게 먹는 것이 제일 좋은 아이들이었다.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나는 비로소 편안해졌다. 나도 모르는 새에 눈 화장을 멈췄다. 아침이 바쁜 날이면 종종 맨얼굴로 학교에 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까맣게 몰랐다. 


이렇게 까지 아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로 나는 약한 사람이었나? 이 글을 쓰면서도 웃음이 난다. 하지만 외모 품평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눈 화장을 하려고 매일 아침 화장대에 앉았던 나를 탓하고 싶지 않다.


 "응, 선생님. 쌍꺼풀 수술했어. 나름 만족해."


라고 한 마디 해줄걸 하는 생각을 몇십 번은 했었던 나를 위로한다. 아이들 앞에서는 늘 좋은 모습이고 싶고 싫은 소리 듣기 싫은 그 안에서는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이가 들고 자연스레 품이 넓어지며 지금은 아이들의 외모 품평에도 허허 웃어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나를 다독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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