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학부모 공개 수업 날이 다가왔다. 숙제 한 번 제대로 봐준 적 없는 바쁜 엄마라 늘 아이들한테 미안한 마음이었기에 되도록 꼭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힘든 학급을 맡을 때라 몸이 아파도 쉬지 못했다. 결국 2학년이던 아이들의 학부모 공개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마음이 쓰였지만, 퇴근 후에 충분히 마음 읽어 주기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퇴근 후 아이들을 안아주며 엄마가 못 가 미안하다고 말하며 공개 수업 때 어땠는지 물었다. 친한 언니가 아이들 수업하는 장면을 찍어 보내줘서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아이들이 신나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학급에서 엄마가 안 온 아이는 자기들 외엔 딱 한 명 있었다고 했다. 그 아이는 엄마가 없는 아이란다. 가슴이 ‘쿵!’ 했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이 엄마가 모두 온 친구들 틈에서 엄마 없이 발표하는 심정이 어땠을까? 남편은 나의 이런 속상함을 이해해주며 상황이 어쩔 수 없다면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키우는 것도 괜찮다고 위로해주었다.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나도 괜찮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그 후 우연히 집 근처 공원을 걷다가 아이들 반 친구 엄마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다가 그녀가 대뜸 나에게 물었다.
“근데, 언니 왜 애들 털실내화를 안 갈아 신겨요? 공개 수업 때 보니 아이들이 상당히 더워 보이던데…….”
털 실내화라니. 그녀와 헤어져 그 길로 바로 집에 갔다. 물 한잔 마신 후 아이들을 붙들고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 아직도 털실내화 신고 다니니?”
“응, 엄마. 엄마가 작년 겨울에 실내화 새 걸로 사준 뒤로 안 바꿔줘서 그냥 쭉 신었어.”
“…….”
그 때는 이미 아이들이 반팔을 입고 학교에 다닐 정도로 날이 더웠다. 얼마나 정신이 나가 있었으면 6월이 될 때까지 겨울용 털 실내화를 안 갈아 신겼단 말인가. 저희들끼리
“근데, 이제 발에 땀이 좀 많이 나긴 하더라. 넌 안 더워?”
“응, 나도 땀 많이 나. 덥긴 해.” 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 달려왔다.
“엄마, 왜 울어?”
난 우느라 제대로 말도 못했다.
“미……안, 미안……해.”
남편도 놀라 한 걸음에 다가왔다.
“난 엄마도 아냐.”
꼬맹이 둘이 이 더운 날씨에 털실내화를 신고 교실에 앉아 있는 상상만 해도 계속 눈물이 났다. 아이들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흐느껴 울었다. 대체 뭘 위해 내 새끼들 실내화도 바꿔주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었을까? 자책감에 나는 계속 울었다. 자다 깨서 울고 아이들 자는 모습을 보다가 또 울었다.
“엄마,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덥지 않았어. 엄청 더웠으면 우리가 말했겠지. 그러니까 그만 울어. 안 미안해도 돼.”
아직 어렸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미안한 마음을 이미 알았다.
엄마의 정성과 품이 아직은 많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봐야 할 내가 글을 쓴다고 다시 정신이 팔리기 시작했을 때 불에 덴 것처럼 이때의 기억이 확 올라왔다.
아이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반사적으로 쓰기를 멈추게 된다. 쓰기를 멈추고 아이를 안아준다. 포옹은 아이들과 나 스스로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엄마가 뭘 하든 언제든 중단할 수 있어. 그건 너희가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야.’라는.
끝 방에 들어앉아 나의 글쓰기용 음악을 켜고 글을 써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천천히 눈을 모니터에서 떼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막 안아주려고 하는데
“엄마, 이제 괜찮아. 엄마 하고 싶은 거 해. 일어나지 말고, 그냥 글 써.”
하고 나갔다.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글쓰기가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이의 응원에 나는 비로소 몇 해 전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컴퓨터 앞에 몇 시간씩 앉아 있는 엄마를 만지고 싶어 내가 있던 끝 방에 들락날락하던 아이는 그 때보다 조금 더 자라있었다.
‘엄마, 하고 싶은 거 다해.’라는 아이의 말은 내게
‘엄마에게 시간을 선물할게. 엄마가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야.’로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선물 받은 시간으로 나는 나를 읽고 쓴다. 허투루 쓸 수 없는 시간이기에 매 순간이 깊고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