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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Jun 08. 2020

선생님, 요즘 힘들죠?

-교실 안의 트루먼쇼

 

가뜩이나 긴장한 첫 학기를 카메라와 함께 시작했으니 사실 마음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분명 처음 학교에 갔을 때는 신규교사인 나를 위한 선배님들의 양보와 안배가 느껴졌었다. 업무도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배려 받았었고 여섯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장 착한 학년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촬영 기간 중 갑자기 학교 대표 공개수업이 잡히질 않나, 벚꽃 축제가 생겨서 급히 아이들을 지도해서 무대에 올려야 할 일도 생겼다. 학년 교육계획과 교육과정을 그 때는 일일이 수기로 작성해야 했었던 때였는데 아무 설명도 없이 작년 교육과정을 참고해서 급히 짜 내라고도 했었다. 금요일이 되니 모든 선생님들은 다 제출하고 나는 어물어물거리다 월요일 아침에서야 겨우 제출했다. 


교감 선생님은 방학 때면 교육청 연수에서 저학년 통합교과를 강의하시는 실력이 뛰어난 분이셨다. 그 분 보시기에 얼마나 조잡해보일까 걱정하면서도 바쁜 신학기에 어지간히 틀리지 않으면 통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교감 선생님은 수업 중에 나를 교무실로 호출하셨다. 아이들에게 학습거리를 내주고 종종 걸음으로 교무실에 달려갔다. 교감 선생님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서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여고를 졸업하고는 누군가에게 불려가 혼난 경험이 거의 없었다. 


빨간 펜으로 내가 제출한 교육과정을 죽죽 그어가며 화를 내는 교감 선생님의 모습에 놀라 솔직히 내가 뭘 듣고 있는지도 몰랐다. 반대편에서 나보다 훨씬 어린 교무보조가 혼나고 있는 나를 애써 외면하던 모습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한 시간이 넘어서야 교실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200쪽이 넘는 학년교육과정 운영계획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고 나는 겁에 질렸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카메라가 고스란히 담았다. 


어느 날엔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감 선생님이 아무 말 없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교실이 이게 뭐냐고 화를 내셨다. 아이들은 혼나는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바닥에 널브러져있던 종잇조각들을 줍기 시작했다. 수업계획이 잘 짜여 져 있다면 이렇게 엉망으로 교실을 만들면서 수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하시면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나가셨다. 수업 중인 교실에 아무 말 없이 들어오다니 그런데다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꾸중이라니. 당황한 나는 곧 얼굴이 벌게졌다. 가뜩이나 교육과정 짜면서도 혼이 난 상태였는데 이런 일까지 생기니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아이들 앞에서 울 수 없어서 책상 뒤로 숨어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이들은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내게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귀를 간질이는 느낌에 결국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벚꽃가지가 있었다. 어느새 밖에 나갔다 온 아이들이 벚꽃가지를 꺾어와 나를 위로해준답시고 나를 간질이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이 양팔로 나를 붙들고 밖으로 끌어냈다. 이미 밖에 있던 아이들은 벚꽃가지를 엮어 화관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벤치에 나를 앉히고 머리에 화관을 올려주었다. 아이들의 서툰 위로가 마음을 달래주었다. 눈물방울을 달고 나는 곧 웃었다. 그리고 역시 카메라가 모든 것을 찍고 있었다. 


그 날 퇴근을 하려는데 통학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원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셨다. 

“선생님, 요즘 힘들죠? 근데 제가 보니까 그 방송국 사람들이 자꾸 선생님 힘들게 좀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눈물도 좀 나게 하라고 교감 선생님 찾아가서 부탁도 하는 것 같던데?” 


그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화가 났다. 이게 짜인 극본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왜 이렇게 힘들까? 나는 교사생활이 안 맞는 게 아닐까?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이렇게 부족한 나에게 배우는 우리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등등 온갖 생각을 다했는데 나를 궁지에 몰기 위해 상황을 더 만든 거였다니. 방송 출연을 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훗날 첫 교직생활을 평생 추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거라고 용기를 냈던 것이 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자존감이 무척 약했다. 일단 하기 로 결정했으니 마무리는 잘 지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가끔은 이런 건 안 찍으셨으면 좋겠어요. 하고 요청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요구를 충실히 들어준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보일 나를 신경 쓰느라 노력하는 내가 정말 나인지 순진한 아이들까지 동원해가며 쇼를 하고 있는 상황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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