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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Jun 01. 2020

새내기의 모험

 

 전화를 받은 건 토요일 오후였다. 퇴근 시간이 지나있었지만 교무실과 교실을 오가며 정리를 하느라 분주했었다. 교실에서 교무실까지는 교실 3개를 지나쳐야할 정도의 거리였는데 끈질기게 전화벨이 계속 울려서 마지막 교실을 지날 때엔 전력을 다해 뛰고야 말았다. 전화를 건 이는 KBS 인간극장의 방송 작가였다. 그녀는 5월 스승의 날을 맞아 새내기 선생님의 이야기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홈페이지를 뒤져가며 전화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선생님이 된 지 한 달도 안 된 참의 내가 전화를 바로 받았으니 이것 참 신기하다 싶었다. 그 작가는 듣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 같았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초임 교사의 교실 이야기를 어쩌면 그렇게 재미나게 들어줄 수가! 내 눈에만 예뻐 보이는 게 아닐까 싶은 우리 학생들의 이야기를 열심히도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출연해볼 생각 없느냐고 물었다.  

    

 흥분해서 이야기를 하느라 볼이 빨개져 있던 나는 바로 거절을 했다. 내가 텔레비전에 나오다니.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녀는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만 가지고도 충분하다고 했다. 베테랑을 찍으려는 게 아니다 지금 선생님이 느끼는 아이들에 대한 마음, 하고 있는 활동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했다.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니 당장 내일이라도 내려와서 상의해보자고 했다.      


얼떨떨한 채로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에 정말 촬영 팀과 피디님이 학교에 오셨다. 교감 교장 선생님께서는 좋은 기회라며 걱정하지 말고 한 번 도전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주변 분들의 응원과 내 평생 텔레비전에 나올 날이 또 있을까 싶어 내본 용기로 촬영을 수락하고 월요일부터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피디님과 촬영 팀은 아침 6시에 집으로 찾아와서 출근준비를 하는 장면부터 퇴근 후 하루 마무리 하는 장면까지 찍으며 한 달 간 나를 따라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겁도 없었다. 학부모 앞에서 하루 한 시간 하는 공개수업에도 긴장을 그렇게 하면서 한 달 간 모든 수업 공개는 물론이고 주말까지 따라다니며 찍었던 촬영을 내가 했다니. 촬영은 벚꽃 잎이 바람에 마구 떨어져 나뭇잎이 초록으로 마구 돋아날 즈음에서야 끝났다.      


내가 만난 학생들은 5학년 여섯 명의 아이들이었다. 남자 셋, 여자 셋. 


1학년 입학 때부터 줄곧 함께였던 동네 친구였던 아이들. 여섯 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두 개성이 강하고 자기표현을 잘하는 아이들이어서 교실은 항상 북적북적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도 학원조차 하나 없던 시골에서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늘 내가 퇴근할 때까지 교실에서 놀았다. 학년에 한 반 밖에 없었기에 업무가 많았지만 일하는 틈틈이 아이들과 재밌게 놀았다.    

  

학교 바로 뒤엔 큰 산이, 길 건너엔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이, 10분 거리에는 바닷가가 있던 마을에서 우리가 놀 거리는 항상 많았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수업을 일찍 마치고 후문으로 살짝 나와 아이들과 산에 올랐다.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나무, 풀꽃이름을 많이 알았다. 고사리가 돌돌 말려지기 전의 모양도 아이들을 통해 알게 돼 처음 보았다. 산에서 딴 잎으로 풀피리 만드는 법을 A가 가르쳐주어 모두들 입술이 퉁퉁 부을 때까지 풀잎을 붙들고 놀았다. 

내려오는 길 개울에서 미나리도 보았다.      

“미나리를 캐서 팔면 돈이 될까?”     

 누군가 말을 하자 개구쟁이 B가      

“미나리를 팔아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요!” 했다.      

아무것도 아닌 생각에서 시작된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 운동이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는 한소쿠리 가득 미나리를 채취해서 마을로 내려왔다. 의기양양 미나리를 채취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팔려고 하니 아이들이 용기가 안 났나보다.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어떻게 해요.”를 반복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사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B가 큰마음을 먹더니 미용실로 들어가 미나리를 팔고 돌아왔다. 천 원을 벌어온 B 주위로 다섯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선생님, 우리 돈 벌었어요!”     


 그 때 내 표정이 어땠더라? 첫 일주일은 나를 찍고 있던 이들이 부담스럽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어느 순간엔 풀어져서 의식 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몰려와 미나리 판돈을 내밀었을 때 그 때 내 표정이 어땠을까? 나는 방송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 내 표정이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섯 아이들의 비명에 가까운 환호를 들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던 것은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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