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브티 Jun 15. 2020

후폭풍

 촬영 팀이 돌아간 후 긴장이 풀렸는지 나는 한동안 앓았다. 한 달 정도 찍는 동안 익숙해졌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부담이 많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고 무심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자유였는지 깨달았다. 아이들에게도 특별히 잘하지도 않고 못하지도 않은 약간 무심한 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편집이 되었을까 궁금했지만 드러내놓고 누군가와 방송 이야기를 해보지는 못했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2주도 안되어 KBS에 나와 여섯 아이들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익숙한 인간극장 시그널이 울리고 화면에 내가 등장했다.


‘아이고 깜짝이야. 진짜 내가 나오잖아.’ 


텔레비전을 껐다. 문자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주변에 많이 알리지 않아서 우연히 보게 된 친구들이 연락을 한 것이다. 중간에 다시 한 번 켰다. 상아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내가 웃음을 꾹 참으며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벌을 받는 아이들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뒤돌아서 웃고 있는 내가 예뻐 보였다. 내가 저런 표정을 하고 있었구나. 아이들 예뻐하는 마음이 잘 찍혔네,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장면으로 변하자 못 보겠어서 텔레비전을 끄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를 전국에 있는 사람 누구라도 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과 함께 과거의 실수 같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송이 끝나고 인간극장 홈페이지에 가보았다. 대부분은 아이들도 나도 순수하고 귀엽다는 반응이 많았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은사님과의 추억을 올린 분들도 있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적어가며 소감 남기신 분도 있었다. 하지만, 뭐 저런 사람이 교사가 되었느냐 혹평을 쓴 사람도 있었다. 끝까지 읽지 않고 게시판을 나왔다. 하지만 그 사람은 방송된 5일 동안 내내 게시판에 나에 대한 험한 말을 쏟아내고 갔다. 


3일째 되는 날부터 작가님과 피디님에게 전화가 왔다. 그 분들도 시청자 게시판을 모니터하고 있다가 그 사람 글을 읽어보고 혹시나 내가 상처 받았을까봐 걱정되어 연락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게시판에 들어오지 않기를 당부하셨다. 그리고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생전 처음 보는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들어본 악담은 그러나 당시의 나에겐 쉽게 넘길 만큼 가볍게 여겨지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그리 형편없어 보였나? 자책하게 된 것이다. 흥분되었던 마음은 삽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스로 겸손해야한다고 또 나를 눌러야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전국 방송의 위력은 대단했다. 집 앞 깁밥 천국에 갔는데 주인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며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얼떨떨한 상태로 아저씨가 주신 수첩에 내 이름을 적어서 드렸다. 지하철을 타니 옆 사람이 


“저 혹시 인간극장 나오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어서 


“네…….”라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송 후 일주일이 지난 후부터 학교로 편지가 쏟아졌다. 학교 이름이 버젓이 나온 채로 촬영을 했으니 내 이름 앞으로 편지가 올 수 밖에 없었다. 전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편지가 왔다. 혼자만 자전거가 없어서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 때 걸어 다니거나 달려 다녀야했던 혁성이의 모습을 알아보시고 자전거를 선물로 보내주신 분도 계셨다. 아이들과 나눠 가지라며 학용품과 책, 간식들을 보내주신 분도 계셨다. 하지만 제일 연락을 많이 하신 분들은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길 원하는 분들이었다. 교도소에서도 편지가 많이 왔다. 어떤 죄를 짓고 들어가셔서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는지 방송을 보며 느꼈던 소감들 그리고 출소 후에는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런 내용들이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받았고 답장도 했다. 하지만 나중엔 정말 찾아오실까봐 무서웠다. 감사한 마음으로 편지를 받았지만 나중엔 뜯지 못한 편지들이 쌓여갔다. 꾹꾹 눌러쓴 글씨들이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스타가 되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올망졸망 모여 살던 사람들은 늘 보던 학교와 마을이 나오자 모두 좋아하시고 아이들을 대견해하셨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척들에게 좋은 말을 꽤 들은 모양인지 얼마간은 아이들도 들떠 지냈다. 그러다 애들답게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잊고 본래의 아이들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선생님, 요즘 힘들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