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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Jun 22. 2020

그녀가 나를 미워한 이유

교무실에서 호출이 와서 부랴부랴 뛰어갔다. 교감 선생님 책상 위에 화려한 꽃바구니가 한 개 놓여있었다. 작은 교무실 안은 향기로 가득했다. 


‘나를 부르셨으니, 내 이름 앞으로 왔나보구나, 누가 보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교감 선생님이 싸늘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방송 후론 내내 저런 눈빛이다. 목소리도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이거 선생님 앞으로 온 꽃바구니야. 누가 보냈을 거 같아?”

“잘 모르겠는데요.”

“인간극장보고 어떤 분이 보낸 거야. 그런데 말이야. 인간극장은 선생님 개인으로 출연한 게 아니지 않아? 그러니 꽃바구니는 이곳에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꽃바구니를 어찌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행여나 방송 출연했다고 잘난 척 할 생각이라면 그 생각 접는 게 좋을 거다. 라는 식의 고압적인 교감 선생님의 행동에 놀랐던 기억만 난다. 


또, 교무실에서 결재를 받는 중에 교감 선생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교육청에서 온 연락 같았다. 나에게 강의를 하나 부탁하고 싶은데, 특기가 뭐냐고 묻는 전화였다. 그러자 교감 선생님이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할 줄 아는 게 뭐 있다고. 특기 이런 거 없어요. 그 선생님 하나도 할 줄 아는 거 없어요.” 


주말에 아는 언니가 전화했다. 언니의 남자친구는 나와 같은 과를 나온 오빠였는데 1년 늦게 임용을 보는 바람에 새내기 연수를 그때서야 받았다. 그 연수 때 교감 선생님이 강의를 하셨는데 연수를 진행하면서 자기가 이번에 텔레비전에 나온 교감이라고 하며 연수 사이사이에 내 욕을 그렇게 했다고 했다. 나의 잘못한 점을 이야기 하며 여러분은 학교에 가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자신이 이러저러하게 지도했다. 등을 말하고 있다했다. 


왜 나를 미워하지? 교감 선생님 말에 의하면 자신은 PD가 시켜서 약간 연출을 도와준 것뿐인데 나 때문에 전국적으로 욕을 먹고 있다며 속상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지역 교육청이며 도교육청에 인맥이 많았던 그녀가 뭐라고 말하고 다녔던 것일까? 얼굴까지 다 알려진 나를 새내기 연수에서조차 그리 도마에 올렸던 사람이라면. 


결국 2년을 겨우 채우고 나는 관내내신을 냈다. 어지간하면 4년을 채우고 옮기고 싶었지만 아침마다 교문에 들어서는 것이 지옥 같았다. 관내 내신을 쓸 때도 함께 낸 남자 선생님에게는 아무 말 없었으면서 나는 다른 교실로 조용히 따라오라고 하더니 2년 밖에 안 된 네가 어찌 옮길 깜냥이 되냐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번만큼은 물러서고 싶지 않아 그래도 써달라고 우겼다. 다행히 관내 내신이 잘 되어서 나는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새 학교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 분은 다음 해에 내가 옮긴 학교 교감으로 왔다. 그 분이 오시고 교감 선생님과 동년배인 1학년 선생님들 중 몇 분은 나를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셨다. 인사를 안 받는 건 기본이고, 차갑게 노려보시는 분도 계셨다. 그 분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조차 나눠 본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왜 그런 미움을 받아야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 이유를 내가 교대에 편입해서라고 생각했다. 내  교직 인생에서 두 번째로 만난 교감 선생님은 내게 대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 신규 선생님들 얼마나 수준도 높고 능력이 뛰어난데 방송에서 그렇게밖에 못했나요. 선생님이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들의 대표 격으로 나온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학습목표조차 쓰지 않고 수업하는 장면을 보고는 눈살이 찌푸려졌으니 말이에요.”


 그 말을 듣고 한마디도 못했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다. 교육과정도 잘 못 짜고 아이들과 눈 맞추고 노는 것 밖에 못하는 그런 교사였다. 그래서 더욱 수치심을 느꼈다. 그 분은 교장 발령 나서 다른 학교로 가시며 교내의 모든 선생님들에게는 손 편지를 직접 쓰셨지만 나에게는 어떤 말도, 편지도 없으셨다. 그 해에 다른 학교로 전근가시는 또 다른 선배님은 테이블 끝에 앉아있던 나의 앞 선생님까지는 술잔을 건네고 인사를 하고 가셨지만 나에게는 눈길도 안주시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선배님들의 괴롭힘에 나는 외롭고 슬펐다.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느낌도 들었다. 


몇 년 후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교감 선생님과의 전화통화는 내게 큰 상처로 남았다. KBS에서 저작권 문제로 재방송 송출을 위한 공개동의를 원한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장선생님과 자신의 생각으로는 내 역량이 너무 부족해서 학교 홍보 상으로도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내게도 연락이 오면 방송 중단을 요구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 달 밖에 안 된 신규교사였다. 방송 작가에게 내가 선택된 이유는 내가 신규교사여서였다. 텔레비전에 나갈 만큼 수업능력이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일기장을 나눠줄 때 책상에 던지듯 줬지만 아이들 일기장에 댓글을 정성스럽게 달아주고 아이들 마음을 만져주었다. 능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아이들을 향한 마음과 교직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16년이 흘렀지만 나는 심지어 내 아이들에게도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좋은 기억이 될 만한 일도 분명 있었지만 마음 아픈 기억이 너무 커서 나는 그걸 통째로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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