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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Jun 29. 2020

선생님을 울린 아이들


  지민이는 거친 아이였다. 심술궂은 표정으로 교실 안을 걸어 다니며 친구들을 밀치거나 친구의 물건을 빼앗거나 기 싸움에서 선생님을 이기려 들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일어난 친구의 바지를 잡아내려 수치심을 주기도 했다. 귀여운 2학년을 맡게 되었다며 좋아했던 나는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지민이에게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친구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말도 서슴치않고 하는 모습에 아이의 인성자체가 좋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가정 방문의 마지막 날이었다. 지민이의 아버지가 바쁘셔서 길에 서서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죽도록 때려도 좋으니 1년 동안 잘 가르쳐 달라는 말을 하셨다. 사나운 성격의 아이를 집에서 어떻게 훈육하시는지 보이는 대목이었다. 2시부터 가정방문을 해야 하는데 결재를 맡으면서 교감 선생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길어져버렸다. 지민이의 아버님 이야기를 전하니 교감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시며 


  “우리는 전문가지 아이를 때려서 길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절대 그 말씀대로 따르지 마세요. 지민이가 1학년 때 강아지 똥을 보고 너무나 서럽게 울었던 일이 있었어요. 이런 것들을 보면 아이가 사납게 구는 것은 사실 마음에 내상을 입은 가여운 아이라는 반증일수도 있어요.”


 라고 말씀을 하셨다. 이런 말씀을 듣는 동안 나는 기선을 잡으려는 생각부터 하고 그 아이의 마음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구나 하는 자책이 들었다. 교실에 돌아오니 가정 방문할 4명의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교실을 나와 가방과 아이들의 손을 움켜쥐고 한 아이의 집으로 향해 가는데, 교문 밖에서 과자를 먹고 있던 지민이와 마주쳤다. 지민이는 잠시 내 눈을 피했다. 근처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팔을 벌리며 뛰어오는데 지민이는 엉거주춤 걸어왔다.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방금 전의 면담으로 나의 마음은 그 애에 대한 연민과 회환으로 가득 차있었다. 부드럽게 지민이를 불렀다. 지민이는 그제야 내게 팔짝 뛰어와 안겼다. 지민이의 손을 꼭 쥐고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지민이는 3시 30분에 학원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3시 20분이다. 지민이의 등을 떠밀며 이제 집에 돌아가 학원갈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러니 아이는 내 손을 꼭 붙들고 금세 눈물을 보였다. 참 처량하게도 운다. 선생님과 같이 있고 싶단다. 나도 지민이와 같이 있고 싶다. 휴대폰을 꺼내 지민이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부보다도 아이의 정서적 안정에 훨씬 신경을 쓰는 아버지다. 흔쾌히 학원 결석하는 것을 허락해주셨다. 옆에서 듣고 있던 지민이가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주영이의 집에 가는 길에 멀리서 트럭이 한 대 오고 있는 것을 봤다. 우리는 놀라서 후다닥 논두렁으로 들어갔다. 바닥이 얇은 내 신은 흙 속에 푸욱 빠진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댔다. 그때 지민이가 웃다가 갸우뚱 중심을 잃고 그만 다리를 삐었다. 다시 길에 올려놓으니 절뚝절뚝 걷다가 꽤 아픈 모양인지 입을 벌리고 울었다. 가방을 다른 아이에게 맡기고 나는 곧 지민이를 들쳐 업었다. 지민이가 내 목덜미에 자기 얼굴을 비비적대며 좋아했다. 

  지민이의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그것도 아이가 두 살 때. 그래서 아이는 할머니와 고모, 고모부, 아빠와 산다. 하지만 가겟집인 그 애 집은 항상 바쁘다. 지민이는 제 할머니를 닮아 욕을 잘한다. 그리고 고모를 닮아 남 헐뜯기를 좋아하고, 고모부의 폭력성을 보고자라 주먹을 쥐고 친구들의 머리를 난폭하게 때리기도 한다. 확인된 바 없지만 주위 지역 분들이 들려주신 그 집의 내력은 대충 이러했다. 주영이의 집까지 가는 그 몇 분 동안 지민이는 내 등에서 마냥 응석을 부린다. 그러고 나서 주영이의 집에서 그 애는 놀랍도록 얌전한 아이로 변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그만 가슴이 뭉클해졌다. 주영이집을 나온 후로 평소 앙숙이던 지민이와 하은이는 친자매처럼 놀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지민이는 다른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밭두렁에서 갑자기 내게 엄마, 라고 한다. 지민이의 엄마 소리에 가슴이 멨다. 지민이는 내게 자기 아빠와 결혼해달라고 했다.


 아이들과 따로 떨어져 걷고 있는 정우는 우리 반의 유일한 남학생이었다. 정우는 귀여운 얼굴에 성격 또한 착했다. 특히 상상력이 풍부해서 엉뚱하고 발랄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발표하곤 했다. 또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보면 깜짝 놀랄 만큼 어른스럽고 멋져서 나는 정우와 일기장에서 댓글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정우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와 살고 있다고 들었다. 정우의 집에 가기 전까지 나는 정우의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가서 밤이 되면 돌아오는 사정으로 조부모님이 아이를 돌보아주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30분을 걸어 그 애 집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선 순간, 내 눈에 보이는 정우의 엄마는 장애인이셨다. 자세한 건 물을 수 없어 들려주시는 이야기만 들었지만 머리 쪽에 어떤 이상이 생기셨다고 하셨다. 


 우리 정우가 갑자기 너무나 대견하게 느껴졌다. 장애를 가진 엄마와 돌아오지 않는 아빠 밑에서 자란 아이 같은 면을 교사가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아이가 잘 자랐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나를 잘 도와주고 무슨 일을 맡기면 정성을 다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집에서도 그런 모양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를 많이 칭찬하고 예뻐하셨다. 그런데 학교에서와 달랐던 것은 아이가 집에서는 자주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었다. 별 이야기가 아닌데도 조용히 듣고 앉아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우는 모습이 나도 울고 싶어질 정도였다. 원래 집에서 그렇게 잘 운다고 하셨다. 그리곤 학교에서는 이렇게 많이 울지 않도록 잘 보살펴 달라고 하셨다. 


 정우는 부락에서 열리는 노래자랑대회에 나갈 것이라고 내게 자랑을 했다. 무슨 노래를 부를 거냐 물었더니 송대관의 ‘네 박자’를 부르겠단다. 선생님 앞에서 한 번 불러보라는 할아버지의 채근에 아이는 벌떡 일어서더니 ‘네 박자’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답지 않게 구성지게 잘도 불렀다. 그런데 이 녀석, 


  “쿵짝쿵짝 쿵짜자작작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이 부분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도 울지 않으려 한껏 눈을 크게 뜬 채 천장을 보면서 말이다. 나는 박수를 쳐주고 노래를 따라 불러주며 아이를 사랑스럽게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 노래하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를 보았다. 할아버지, 저 든든한 그늘이 사라지면 우리 정우는 얼마나 슬프고 힘들까. 기어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까부터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꾹꾹 참았다. 


 다시 30분을 걸어 나와 지민이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도착하기 5분 전부터는 내가 먼저 아이에게 등을 내밀어 업어주었다. 등에 업힌 아이는 내게 좋은 냄새가 난다고 킁킁댔다. 아이는 두 손을 내 목에 감고 몸을 다 기대왔다. 


  “지민아, 엄마…….생각나니?”

 “기억은 잘 안나요. 할머니가 엄마 말을 하면 죽여 버린다고 했거든요. 근데, 저 엄마 사진 본 적은 있어요. 선생님, 사실은 엄마가 보고 싶어요.


집 앞에 다 와서 지민이를 내려놓으며 말을 했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선생님에게 엄마 이야기 하세요.”라고. 


 지민이가 나를 꼬옥 안아준다. 


 지민이를 집에 보내고 건너편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차 시간이 15분 정도 남았다. 하은이는 이미 몸이 꽁꽁 얼어있다. 집이 멀어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하은이는 나와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어이 마지막까지 내 옆에 남았다. 하은이를 옷자락을 벌려 안아주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하은이가 쉬가 마렵다하여 한 편에서 소변을 보게 하고 있는데 지민이가 달려왔다. 평소 같으면 마구 놀려댔을 상황인데, 놀리지 않는다. 


 그리고 곧 둘은 세차게 바람이 불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통통 뛰어다녔다. 그러다 지친 우리 셋은 너무 추워 서로 끌어안고 다리 위에 앉았다. 조그만 얼굴 둘이 내 품에 파고들어왔다. 머리칼이 바람에 마구 날렸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후에도 오늘 이 아이들과 이렇게 껴안고 있었던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란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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