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브티 Jul 06. 2020

조금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영어 listen and repeat 시간이었다. 아이들 모두 열심히 듣고 따라 말하기를 하고 있었다. 교사-학생, 모둠-모둠으로 시켜보고 있었다. 다른 모둠들은 다들 잘하는데, 유난히 소리가 작은 모둠이 있어 살펴보니 종민이는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다. 모둠의 읽기가 끝나고 나는 종민이를 불러 일어나서 한 번 해보라고 했다. 내 속으로는 그 애가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천천히 되짚어주며 나를 따라 말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 생각도 않고 바로 


“싫어요!” 한다. 


얼굴엔 반항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했다. 


“종민아,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하는데 왜 입도 열지 않고 있어? 자, 일어나서 선생님하고 같이 해보자.”

“싫어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고개까지 가로젓는다. 교실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내 얼굴도 붉게 달아오른다. 아이들 몇이 내 표정을 보고 쟤는 가끔가다 꼭 저런다, 고 한다. 나는 벌을 줘라, 매를 때려라 아우성인 아이들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뒤로 나가 손을 들고 있으라고 할까? 선생님이 발표를 시키는데 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이 많은 친구들 앞에서 싫어요!라고 몇 번씩 말을 하며 나를 망신 줄 수가 있을까. 


그러다, 교사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아이의 생각을 혹시 내가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이의 '싫어'라는 말이 대체 어떤 이유에서 나온 것인지 제대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종이 한 장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종민아, 선생님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너를 꾸중하고 싶지는 않구나. 네 생각을 제대로 이야기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네가 어떤 생각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 여기에 네 생각을 적어보렴. 선생님은 네 생각을 들어보고, 너를 꾸중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가 너를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겠다.”


종민이는 종이를 받아 들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러나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다 적고 난 후엔 게임 활동도 열심히 한 종민이. 수업이 끝나고 종민이가 내게 가져온 종이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내가 생각해도 내 영어 발음은 못 들어줄 지경이다. 그래서 너무나 자신이 없다. 선생님이 나에게 하라고 한 부분은 문장이 너무 길어서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일어나서 다시 했다면, 친구들이 모두 내 발음을 듣게 되었을 거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평소 다른 공부는 열심히 하는 학생이기에 이런 두려움이 있으리라는 짐작은 하지 못했던 터라 나는 종민이를 벌주지 않은 순간적인 나의 선택이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글을 다 읽고, 나는 종민이의 손을 잡고 그때 네 마음이 어땠을지 이해가 간다. 선생님이 그런 네 마음을 전혀 몰랐구나. 그렇게 말을 하니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눈물을 닦아주며, 영어가 많이 어렵고 힘든지 집에서 따로 공부는 하고 있는지, 수업 시간에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방과 후에 개인적으로 함께 공부를 해볼까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친구들이 자신이 영어 못하는 걸 알게 되는 게 싫단다. 이렇게 자존심 강한 녀석에게 아까의 상황은 큰 문제였겠구나 싶다. 영어 공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그래도 아이의 선생님에 대한 태도는 바로 잡아줄 필요가 있겠다 싶어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네 마음이 그렇다 해도 선생님에게 방금과 같은 태도로 말하는 것은 잘된 것일까? 사실 몇 번씩이나 네가 '싫어요!' 해서 나도 마음이 상했거든. 종민아, 네 생각도 제대로 전하고 선생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말하면 좋았을까?”


 대답이 없다. 얼른 생각나는 대답이 없나 보다. 그래서 어깨를 두드려주며, 그럼 한 번 생각해보고 말해 달라했다. 바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 하교 준비를 시키고 있는데, 종민이가 내 옆으로 와 말을 한다. 


“선생님, 생각해봤는데요.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뻔했어요. 제가 지금은 잘 못하겠는데요, 조금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라고요. 그러곤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종민이의 그 티 없이 깨끗한 웃음을 보고, 나는 그만 아이를 끌어안을 뻔했다. 


'하마터면 내 잘못된 선택으로 이 웃음을 볼 수 없었겠구나'.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아이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내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선생님을 울린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