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브티 Jul 13. 2020

학생들과 목욕탕을요?


아침에 소희의 손을 우연히 만져보았는데, 이걸 때가 끼어 두툼해졌다고 해야 하는지 아님 갑작스러운 찬바람에 손이 텄다고 해야 하는지 거칠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소매를 걷어 올려보고, 종아리도 걷어보니 때가 허옇게 일어나 있다. 지난번 아이들끼리의 수다를 들으며 대충 소희의 집안 사정도 파악한 터라 아이가 목욕탕에 간 지 오래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선생님하고 목욕탕이나 갈까, 했더니 소희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네네, 거린다.   

   

소희가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6시. 나는 학교에서 소희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선생님들과 배드민턴을 쳤다. 소희만 데려가기 뭣해서 아이들 셋을 더 데려가기로 했다. 내 허리께에나 오는 작은 몸통의 여자 아이들 때 미는 일이라고 해봤자 뭐……. 그 정도야, 가볍게 생각했다. 여섯 시가 되어 네 명의 아이들 집에 들러 차례차례 싣고 가는데, 엄마들의 반응이 너무 재밌다. 또, 목욕가방이라고 챙겨 온 우리 꼬맹이들의 비닐봉지들이 귀여워서 나 역시 설레고, 즐거웠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뒷좌석에 앉은 3명은 발을 구르며 즐거워했다.      


드디어 목욕탕 도착. 입구에서부터 신발을 벗어 든 우리 4명의 꼬맹이들은 우왕좌왕. 칫솔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1회용 칫솔을 사야 한다는 둥, 목욕 수건은 몇 장씩 줄 거냐는 둥……. 선생님을 찾아댄다. 자주 들르는 이 목욕탕에 나는 늘 조용히 찾아와 씻고 가곤 했었는데, 오늘은 요 꼬맹이들 때문에 내게로 모든 시선이 다 쏠리고 말았다.      


내 눈에 귀엽기에,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목욕탕 주인이나 탕 안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들은 우리 아이들을 쉼 없이 재잘거리는 오리 새끼들 취급을 하였다. 급기야 내가 앞에 있어도 호통 친 일도 있어서 참으로 민망했다. 한 명 씩 불러다가 비누칠을 하여 씻기고 탕 속으로 밀어 넣었다. 고만고만한 통통한 엉덩이에 물을 끼얹어주니 넷 다 꺄아꺄아거린다. 아이들을 밀어 넣은 후엔 서둘러 내 몸도 씻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딸 넷 둔 엄마로 둔갑한 나. 아이들은 작은 팔을 뻗어 맨몸의 내게 안긴다. 보드라운 아가 살들이 코끝에 허벅지에 가슴에 닿는다. 따뜻한 물의 감촉과 함께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물방울처럼 통통 울린다.      

소희의 손을 잡아끌어다 더운물에 넣고 비벼주기도 하고, 주영이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넘겨주기도 하고, 혜미의 올챙이배에 물을 끼얹기도 했다. 날이 저무니 목욕탕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눈치를 봐가며 때밀이 아주머니만 사용하는 때밀이용 침대에 나는 아이들 한 명씩을 불러다 눕혔다. 그리고 제법 솜씨 있는 때밀이처럼 아이들의 살을 탁탁 두드리며 때를 벗겼다. 그런데 다들 때가 장난이 아니다. 목욕을 하려면 읍내에까지 나와야 하는 우리 아이들 사정상 이렇게 때가 많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겨드랑이 사이사이를 밀면서 간지럼을 태웠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 제 몸 위에 뚝뚝 떨어지는 내 땀방울을 맞으며, 신기한 듯 나를 봤다. 네 명의 아이를 다 밀고 나니 그만 파김치가 된 나. 저녁도 안 먹고, 목욕탕에서 너무 힘을 뺐더니 허기가 졌다. 나보다 먼저 나간 우리 애들은 꼬마 숙녀답게 벌써 머리칼까지 드라이어로 다 말리고 발그레한 볼로 나를 불렀다.      


내가 밖에 나가자 탈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나를 봤다. 아, 창피해. 이미 애 엄마 이기라도 했다면 덜 창피했었을 것인데……. 네 공주님은 선생님의 이런 창피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115번 열쇠를 잃어버린 미영이는 탈의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울상. 그 열쇠가 없으면 신발을 못 꺼내는데……. 어휴 어쩌나.      

할머니들은 얼기설기 짜인 나무 평상에 앉아 헛헛 웃고 계시다.      


“애기들이 정신이 없네잉. 혹시 팔에 차고 있는 것 아니냐?”      

파란 파카를 입고 있던 미영이. 두꺼운 소매 부분에서 정말로 열쇠를 끄집어낸다.      

“어휴…….”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목욕탕에서 나와 모두      

“하아, 살 것 같아~.”     

를 외치고. 떡볶이, 만두, 김밥, 돈가스로 배를 채운 뒤 다시 집으로 출발했다. 


어둑한 시골길을 더듬어 운전하는 길은 힘들었지만, 헤드라이트를 켜고 오직 우리들뿐인 길을 가는 순간은 남다른 기쁨이 있었다. 도시로 모두 가 있는 나의 친구들보다, 그 순간은 우리 꼬맹이 넷이 내게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학생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조금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