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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Jul 20. 2020

소중한 선물

예쁘장한 아이였다. 하지만 표정이 서늘했다. 가까이 오면 할퀴어 주겠어, 라는 결의가 담긴 눈빛. 5학년쯤 되니 이제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신호가 제법 매섭게 느껴졌다.      

아이는 긴 머리로 한쪽 뺨을 가렸다. 살짝 드러나는 왼쪽 뺨에 눈이 갔다.      


‘아, 네가 그래서 그랬구나.’     


 왼쪽 뺨 전체에 흉이 져 있었다. 예쁜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커튼처럼 가리고 다닐 정도니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 것 같았다.      


3월에 만나 한 달 정도는 아이의 흉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전체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존중과 배려라는 것을 계속 지도했다. 그 해 아이들은 나와 마음이 잘 맞았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부럼을 준비해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친구들과 호두를 깨 먹고 내 더위 사가를 하며 재밌게 놀았다. 또, 합창을 처음 맡아서 두려웠는데 우리 반 친구들이 합창 반에 많이 들어와 함께 해 주어서 훨씬 든든하기도 했다. 참 예쁜 아이들이었다. 학교 가는 길이 내내 즐거웠다. 나뿐 아니라 아이들도 그랬다. 이사를 앞둔 남학생은 부모님을 졸라 멀리 가지 못하고 같은 아파트 내로 이사했다. 아들의 성화에 그랬다는 학부모님의 전화를 받고 참 행복한 해라고 감사해했었다. 아이는 그런 친구들과 나와 함께 하며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아이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 어린 시절 사고로 생긴 아이 뺨의 흉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선생님, 지혜의 흉터가 하필 얼굴에 크게 있어 자라면서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어릴 때는 놀림받고 울면서만 왔거든요. 그런데, 좀 자라고는 되레 싸우고 다녀요. 그래서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 걱정이 커요. 특히 남자애들을 경계하고 예민하게 대해서 집에서 다독이고 있어요.     

  게다가 서너 달에 한 번씩은 흉을 지우기 위해 힘든 시술을 견뎌야 하는데 아이가 치료를 많이 힘들어해서 그걸 보는 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픈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버티다 집에 와서 소리 없이 줄줄 눈물을 흘려요. 근데, 오늘 치료받으러 가는 날이라 애가 아침부터 긴장하고 학교에 갔어요. 선생님, 혹시 아이가 예민하더라도 이해 바랄게요. "     


 그날따라 아이는 일찍 학교에 왔다. 열어 둔 창으로 이제 막 초록으로 예쁜 잎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는 자리에 앉아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흉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0년 후, 20년 후 아이를 상상해봤다. 흉터 위로 곧 더 성숙하고 깊어진 눈매의 멋진 여성이 그려졌다. 

     

“지혜야, 선생님은 네가 정말 예쁜 얼굴이라고 생각해. 지금은 흉터가 이렇게 있지만 스물이 넘은 네 얼굴에는 흉이 아주 작아져 있거나 없어졌을 것 같아. 선생님도 스물넷부터 화장을 시작했는데 피부 화장을 시작하면 작은 점이나 흉이 가려지더라고. 그러니 주눅 들 필요 없어. 게다가 지금 치료받는 중이고, 넌 지금도 예뻐. 선생님 눈에는 어른이 된 네 모습이 보인다. 지혜는 예쁜 아가씨가 될 거 같아.”      


흔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는데 반짝반짝 눈을 빛내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푸른 잎사귀 같은 아이야, 작은 흉 하나가 너의 고움을 가릴 수 있었겠니.’     


 다음 날 거짓말처럼 아이가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묶고 왔다. 고맙게도 나의 말이 가 닿았다. 드러난 볼은 치료를 받고 와서 붉은 기가 여전하다. 그래도 아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5학년이 끝나는 날. 아이는 깊숙이 인사를 하며, 커다란 꾸러미를 하나 주고 갔다. 꾸러미 안에는 어머님의 편지와 방석이 들어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지혜를 편견 없이 예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예쁘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준비한 선물입니다. 꼭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퇴근 후 자수를 배웠습니다. 서툰 솜씨지만 선생님 생각하며 한 땀 한 땀 수놓았습니다. 저희 아이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하얀 광목천에 작은 노란 꽃이 한쪽에 곱게 피어있는 꽃자수였다. 꽃 무더기 아래에 ‘샘과 지혜.’라는 동글동글한 글씨도 함께였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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