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해변가에 가서 돌멩이를 주워왔다.
몇 년 전 벨기에 오스텐드 해변가에서 조개를 주워온 일이 근래 생각나는 일 중 가장 잘한 일로 꼽게 되었다.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모르는 그곳의 오브제를 가져온 일. 유일한 자연의 '물건'이기도 하면서, '수브니으(souvenir 기념품)'이 되어 그것을 떠올리면 다른 것 상관없이 단숨에 기억이 소환된다. 그 때의 기분, 풍경, 사람들, 음식, 기차 안에서 했던 몇몇의 대화들. 그것이 좋았든 나빴든 볼 때마다 기분좋게 하는 주홍빛의 조개껍데기들을 바라보면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1년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 상황과 나의 상황이 그닥 좋지 않지만 잠깐 콧바람 쐬러 가서 주워 온 마음에 드는 돌이 추억의 구조물을 짓고 있다. 잠시 담근 바닷물의 기운, 바람, 약간의 더운 기운, 우연히 들어간 피잣집, 사람 모두 그냥 좋은 기억으로 남게 해준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저 돌멩이 몇 개일 뿐인데. 바다에서 주워 온 돌멩이 네 개가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기억소환품이 되었다. 그저 생경한 이 기분은 뭘까.
그런 생각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사진 하나를 주었다. 내 추억이 있는 사진이라며. 내 옛날 애인이 있는 사진을 아무렇지도 않게 추억이라며 건넨다. 그랬다. 헤어질 때는 괴롭고, 아프고, 다시 하지 않을 경험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사진 속 나는 환하게 웃고 있고 사진을 보고 있는 나는 아프지 않다. 그저 예뻤구나. 더 어렸구나. 사랑하겠다고 애썼구나. 그냥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억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막연히 시간이 약이라는 그런 말과는 다른 어딘가 신기하고 생경한 느낌이 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제까지 나는 빨리 잊고 새롭게 적응해야만 한다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환경적으로도 그랬고, 내 성정이 그러하기도 했다. 그래서 잊는 것에 익숙했고 시간을 가지고 어떤 것을 기억하는 것이 익숙지 않을 뿐아니라 고통스럽게 느끼는 일이 더 많았다. 그런데 지금 어떤 물건을 보고 기억할 수 있다는 일이 신비로운 일로 느껴진다는 것이 어색할 따름이다. 심지어 괴로웠던 시간들마저도 지금은 그저 그런 시간을 겪었구나 하고 보낼 수 있는 것도 말이다. 이제는 옛날의 기억을 엮어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 준비가 되었다는 방증일까.
과거와 과거를 이어오는 나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상황과 환경에 반응하는 나는 생물학적 조건 속의 노화를 살고 있지만, 몸 안에 살고 있는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 기분이다. 이것은 그냥 기분일 뿐일까. 아님 '영혼'이라고 불리는 것을 내가 예민하게 감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답을 말할 순 없겠다. 그저 분명한 것은 나는 과거의 나를 기억하는 일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더 그런 물건이 있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 뿐이다.
앞으로 어떤 물건을 줍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