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 쓴 일기 06

by 허이란

엊그제 고모가 한 말이다.


사는 게 힘들다.


나 역시도 그랬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질문, 수없이 던졌다.


그런데 어느 새부터 인지 사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언제부터지?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나를 사랑해주지 못했던 시간들로.


이제 나에게 그만 매몰되고 밖으로 나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오랜 시간 나를 부정하면서도 나에게 집착하는 양가적인 속성 안에서 살아왔기에

정리가 필요했다.


집착. 그래 집착.


나의 사사로운 감정들을 돌보는 것에 집착, 내가 애정을 준 것에 대한 집착, 다른 사람의 반응에 대한 집착, 애착관계에 대한 집착. 집착들로 점철된 그 시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나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해서,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아닌지 아님 거꾸로 다른 사람의 소리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해서 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아닌지. 두 사이에서 구슬이 굴러다는 것 같았다.


마음이 건강하지 않고 나를 알아간다고 생각할수록 같이 있는 사람에게 미안했다. 이 마음의 부정적인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가가 되어 힘들게 하지 않을까, 힘겹게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라는 사람은 자신의 굴로 파고들 뿐일 텐데. 아픈 것에도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관계에 조심하기 시작했다. 아마 나를 '어른'이라고 규정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나의 약점이나 내 안의 아이를 적당히 감추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것이었을 뿐. 10년 이상 타지에 산다는 것은 조금은 특수한 일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딘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필요에 의한 관계가, 솔직하지 않은 관계의 정도가 엄연히 더 강했다. 어쨌든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그랬다. 좁은 사회에 있었기에 실수 없는 관계를 만드려고 부단히 애썼을지도 모른다.


실수 없는 관계가 있을 수나 있을까. 예측을 미리하고 실수나 오류를 줄여서 경제적 손실을 줄이는 것이 요즘의 삶이다. 과학과 기술로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다 알려고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리 알고 싶은, 채워지지 않은 욕구들이 이곳저곳에서 투영된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럴 테지만.


그러니까 사는 게 싫지 않기 시작한 것이 알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고 미리 알려고 하지 않기로 하면서부터다. 미래에 대한 것도, 사람에 대한 것도 안다는 것에서 믿는다는 것으로 치환하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그냥 믿는다는 것은 꼭 쥐었던 집착의 손을 잠시 느슨하게 풀어준다. 그리고 믿음의 영역은 내 시작에서 죽음의 영역까지 방대하게 확장되고 있다. 그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실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래도 살아지는 내 삶의 근원으로 추측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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