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직까지 과거의 기억에 사로 잡혀 벗어나지 못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내 인생에 어떤 한 계기로 내 심리 메커니즘을 이해하려 내 기억의 굴로 들어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4살, 어린 나에게 생겼던 나만한 크기의 북극곰 인형이 있었다. 그 곰 인형에 안겨 책도 읽고, 흰 털을 어루만지며 안정감을 느끼고, 곰을 바라만 봐도 좋아했던 그런 인형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나의 '애착 인형'이었던 것 같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인형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은 그만큼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3년 후 여수 -당시 여천- 에서 우리 가족은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을 싸던 과정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데 도착하여 이삿짐을 풀던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사를 도와주셨던 한 아저씨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던 아버지는 나에게 물었다. "O아, 이거 아빠가 아저씨 주고 싶은데 줘도 되지?" 나는 말을 못했다. 싫다고도 좋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는 또 다시 묻는다. "괜찮지?" 계속 물어왔지만 역시나 나는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계속적으로 물어오는 그에게 나는 결국 싫다는 말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그 부분의 기억이 희미하다. 인형을 주고 싶지 않은데 줄 수 밖에 없는 강요를 받았던 어린 나의 첫 트라우마의 기억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물건을 항상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좋은 물건이이 있으면 더욱 그러했다. 한국의 부모라면 통상 좋은 것은 자기 자식을 먼저 주고, 다른 자식보다 많은 것을 누리게 하는 것이 보통의 부모인데 내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의 직업적 사명감 같은 것과 결부되어 있었던 것인 듯 하다. 어찌되었든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 때의 기억은 마음에 새겨져 상처가 되어 왔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 어린 날의 경험들은 누적이 되어 어느 순간부터 나는 좋은 것을 가질 수 없는 사람, 좋은 환경에 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메세지로 이해하며 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렇게 형성된 아버지와의 관계, 강압적이고 나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무서운 아버지(적어도 어릴 땐 그렇게 느꼈다)와의 관계 형성은 훗날 성인이 되어 연인 관계에서도 문제가 됨을 발견했다. 연인을 대할 때 아직도 내 안에 아빠(남자)를 두려워하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 아빠(남자)를 미워하는 아이가 아직 있음을 발견했다. 상대에 상관없이 관계가 형성될 때마다 그 아이가 방어기제로 발현되곤 하여 관계의 어려움을 겪곤 했다.
나는 내 아버지가 자신의 일만 중요하게 여기는 가족을 돌보지 못한, 날 사랑하지 않은 아비라 결론을 내어가고 있을 때 내 생각을 바꾼 한 순간이 있었다. 2년 전 미국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을 들었을 때 였다. 온 가족 채팅방에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의 새로운 다짐들이 오갔다. 그리고 각각 가지고 있는 사진들을 하나 둘씩 풀어내기 시작했는데 사진 속에는 내가 있는데 보지 못한 사진들도 몇 개가 있었다. 내가 조부모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다섯 살, 그들이 잠시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 때 찍은 사진들을 인화해 가져간 모양이었다. 같은 순간에 찍은 다른 두 사진을 각각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집 마당에 나와 내 언니가 할머니가 사준 인형을 들고 앉아 조부, 내 아버지가 둘러 앉아있는 사진을 우리가 가지고 있었고, 내가 보지 못했던 다른 사진은 조부모가 가지고 있었다. 그 사진에는 같은 구성원이나 내가 아버지 품에 푹 안겨있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이 가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갓난아이의 사진 이외에 아버지 품에 안긴 사진이 집에 없었고, 그러한 기억이 별로 없었기 떄문이다. 애정과 사랑은 식어있고, 미움이 커지고 있던 찰나의 이 사진은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으며, 그 또한 그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든 순간이었다. 나의 기억이 다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나의 현 상태, 혹은 불행함을 합리화하기 위해 인간이 얼마나 기억을 수정하고 조작할 수 있는가, 얼마나 내게 필요한 기억만을 이용하는가. 머리를 무언가에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마음에 빛이 환히 켜진 그런 류의 느낌.
나는 가능할 때 대화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 모든 이야기를 아버지와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음을, 그리고 상처받았음을, 미움이 있음을,나는 아무 힘이 없는 아이여서 저항할 수 없었음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음을, 부모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저 환경일 뿐임이라고 항상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 사과를 듣고 싶다고 했고 결국을 사과를 받았다. 사과를 받고 보니 사실 곰인형을 주고 싶지 않았던 내가 싫다고 울며 떼를 쓰지 않았던 것은 곰인형을 주어 그를 만족시키고 그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내 욕구가 갈등을 했던 것이었다. 그가 나에게 강요를 했다기 보다 그 순간에 나는 그 선택을 함으로 또 다른 나의 욕구를 채운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결국 누군가와 부대끼며 살며 상처받고 상처를 주고 산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혹은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다 보면 다른 탈이 나고 만다. 상처가 날 수 있어도 길을 걷는 용기가 더 건강할 것이라고는,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만 내가 어떻게 약한지, 다쳤을 때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정도의 기술이 있다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