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쓰고 싶어
엊그제 위경련이 있어 잠을 설치는 밤이었다.
벨기에 역시도 코로나로 인해 격리 생활이 시작되어 벌써 2달이 되어 가고 있다. 첫 달은 학교 안가는 자유의 시간이 무조건 반가워 혼자의 시간을 만끽하다 이제 두 달을 채워가는 이 시간이 곤혹스러워진다. 같은 처지의 친구와 연락을 하며 지내고 나름의 동기를 찾으려고 하다가도 나 대신 잘 살아주는 사람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누구나 인터넷 플랫폼을 통한 영상을 보고 있으면 다른 영상을 타고 타고 주체할 수 없이 핸드폰 혹은 컴퓨터를 몸 멀리 떼어내지 못 하고 보고 있는 나, SNS에 올린 다른 사람들 사진을 관음적으로 파고 들면서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증상(?)을 개그의 소재로 삼거나, 강의의 소재를 삼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것을 보면 단연 나만에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위로 삼고 있는 나 또한 발견한다. 고백하자면 필자인 나는 한국 예능의 짤들을 보게 되는데 잘 나고 성공한 사람들을 불러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나를 대신 살아는 것을 경험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하면, 지금 내가 하는 해야하는 하는 일에는 막상 하지 못하고 내가 '해야하는' 노력 - 이건 누가 정했지?- 에 무기력증을 느끼고, '성공한 사람' 이미지를 시청하며 대리만족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거다. 마치 그 순간만은 내가 그런 것 처럼. 그리고 현실의 나를 보고 다시 그 이미지를 갈망하게 되거나 혹은 그냥 절망하게 된다. 소소히 내 삶을 하루 하루 살아내는 것에 의미를 둔다고 살면서도 남들이 이루어 놓은 성공하여 잘 살고 있는 삶을 보다보면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날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내가 가진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지만.
필자는 어릴 때 언니따라 만화책을 읽다가 그림만 보고 글을 읽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초등학교 저학년 쯤이었는데 책을 읽기보다 이미지로 이해하기가 빠른 만화영화, 만화책을 좋아했다. 아마 그 때부터 였나.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느려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늦게 성인이 되어서야 도스토예프스키,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의 고전소설을 읽고 글과 글에서 오는 문학적 감동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도 책을 한 번 잡기 어렵다가도 한 번 잡으면 빠져들게 하는 글의 매력을 확인하게 된다. 종이를 만지며 나만 할 수 있는 나만의 상상의 세계도 참으로 경이롭다. 나는 이 순간도 잊고 이미지 파도에 떠 내려가 잠시 쓰러져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보이지 않으면 하지 않을 일들도 보이게 되기 때문에 하게 된다. '그것'이 보이기 때문에 갖고 싶고, '그것'이 보이기 때문에 하고 싶고, 소모적인 나의 욕망에 매몰된다. 그런데 언젠가 우리는 과다한 이미지 소비에 피로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염증이 나는 날이 있지 않을까. 그 때는 우리는 글을 더 찾게될까. 내가 그러고 있는 것 처럼.
#일기여서_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