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인간을 어떻게 조용하게 만들었는가?
세계는 그대로 있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안에 없다
인간은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어떤 장면에 몸 전체가 먼저 반응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한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그것을 듣기 전에
등 뒤로 바람이 스치듯 감각되는 느낌,
그것이 감각이다.
기술은 감각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더 밝은 빛, 더 빠른 소리, 더 또렷한 이미지.
그러나 기술은 점차
‘느끼는 능력’을 빼앗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감각 자극이 단순히 ‘감지’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감각(self-affection)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신경 회로가 통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1차 체성감각 피질(S1): 외부 자극을 최초로 감지
전측섬엽(anterior insula, aINS): 내신체감각을 통합
내측 전전두엽(medial prefrontal cortex, mPFC): 감각이 ‘나의 것’ 임을 자각하게 하는 통합 해석
이 세 회로를 통해 “감각이 감각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나의 경험’으로 전환되는 인지적 감응 구조”가 형성된다(Craig(2009)).
그러나 현대 기술, 특히 도시 설계와 소음 환경,
그리고 지속적인 디지털 자극은 이 회로를 반복적으로 피로하게 만들고, 결국 감각이 자극으로는 존재하되
의미로 전환되지 않는 상태를 유도한다.
이때 일어나는 것은 감각의 상실이 아니라
감각의 의미화 실패이다.
20세기 중반, DDT는 ‘기적의 살충제’라 불리며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살상을 수행했고,
느껴지지 않는 감각의 해체를 유도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말한
“어느 날 아침, 새들이 울지 않았다”는 서사는
단지 생태계 파괴가 아니라
감각-생명 회로의 연결 고리가 끊긴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DDT나 유사 유기염소계 화합물에 반복 노출된 아동의 경우 내신체감각, 관련 뇌 회로(mPFC–insula)의 활성 패턴이 느리게 반응하거나 왜곡되는 경향을 보였다(Stansfeld & Clark(2015)).
위에서 살펴본 것 같이
감각이 자기감각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감지–통합–의미화’라는 세 단계의 흐름이 필요한데, DDT는 그 흐름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감각 자아를 침묵시킨다.
→ DDT는 감각을 무디게 한 최초의 기술이자,
“감각이 없는데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된 인간”의 탄생을 알린 사건이다.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몸은 사물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세계에 열려 있는 하나의 지평이다.
이 말은 단지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는 감각을 자기 인식의 시작점으로 보았고,
‘살’(la chair)은 바로
세계와 내가 서로에게 반응하는 감응의 표면이다.
그러므로 감각의 침묵은
단지 청각 역치가 높아졌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는 여기에 있다”는
존재감의 자각이 꺼져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감각은 세계를 향해 열리는 통로이자,
내가 나라는 것을 느끼는 최초의 방식이다.
에코는 기호란 “무언가를 대신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기호는 꼭 존재하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표시, 즉,
여기 뭔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징표로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텅 빈 무대는 “배우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마이크에 울리는 정적은 “지금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다.
그러나 기술 시대의 침묵은
이런 “기대되는 부재”조차 없애버린다.
즉,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여기서 새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라는 의문조차 품지 않게 되었고,
“누군가 말했어야 하는데?”
라는 감각마저 상실한 것이다.
그래서 침묵은 더 이상 “말이 없다는 신호”도 아니다.
그저 ‘신호 자체가 무효화된 상태’,
기호가 무기호가 된 상태,
의미 자체가 무의미화된 구조다.
영국 런던의 도시 소음 환경에 노출된 어린이 2,844명을 장기적으로 관찰한 연구에서
지속적인 항공기 소음과 도로 소음 노출군의 경우,
소리 자극에 대한 반응 역치가 증가하고,
주의 전환 및 언어 인식 능력이
상대적으로 저하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보고하였다(Stansfeld & Clark(2015)).
이는 감각 자극이
신경계에 ‘배경화(backgrounding)’됨으로써,
자극은 있지만 감각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
즉, 감각의 침묵 상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잠잘 때 뇌가 감각을 차단하는 것과 비슷하다.
감각은 멀쩡하다.
그러나 내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사라졌다.
표현은 넘치지만, 공명은 없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시대보다 감정을 자주 표현한다. 문자에 이모티콘을 붙이고,
사진에 하트와 반응 버튼을 누르며,
몇 초 안에 감정을 전달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공감은 줄어들었다.
누가 뭘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들 반응은 빠른데, 정작 마음은 안 와닿는다.”
감정은 ‘있다.’ 그런데 그 감정은 해석되지 않는다.
공감은 아래 회로들이 함께 작동할 때 발생한다:
거울 뉴런 시스템 (IFG, IPL) – 타인의 표정을 모방
전측 대상피질 (ACC) – 감정의 강도와 일치여부 판단
전측섬엽 (aINS) – 내 감정과 타인의 감정 간 격차 감지
내측 전전두엽 (mPFC) – 이 모든 감정을 ‘내가 느끼는 것’으로 통합
이 회로들이 작동할 때 타인의 감정에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자기 인식이 일어난다(Denny et al.(2012)).
하지만 디지털 감정 표현은 표정도 억양도 몸짓도 없이, 단 1초 만에 ‘좋아요’로 응답하는 구조를 만든다.
결과적으로 감정 자극은 있지만,
감정 회로 전체가 작동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감정은 표현되지만,
의미는 소진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감정이란
단지 개인적인 감각이 아니라 공공 공간에서
타자와 공유될 때만 ‘감정’이 된다고 말한다.
“느낀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타자와 함께 있어야만 감정이 된다.”
디지털 구조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늘렸지만,
타자와 함께 해석하는 공간은 줄였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이션』에서
기호가 반복될수록
그 기호는 원래의 실재를 잃는다고 했다.
예를 들어, ㅠㅠ는 분명 ‘슬픔’이라는 감정이다.
하지만 하루에 수백 번, 수천 명이 사용하는 순간
ㅠㅠ는 더 이상 슬픔 그 자체가 아니라
“나는 슬픔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신호”로 전락한다.
감정은 ‘있지만’, 그 감정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없다.
지인의 가족이 돌아가셨을 때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왠지 문자를 올리지 않으면
나는 슬픔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문자를 보냈을 때
나는 슬픔을 표현했다는 느낌...
그리고 계속 울리는 알람이 거슬려
알람 설정을 꺼 버리는 현실.
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다수 SNS 사용자 청소년 집단에서
정서 반응의 빈도는 증가했지만,
정서 해석의 일관성은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Keles et al. (2020)).
사용자들은 공감 버튼을 누르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무엇에 공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응답했다.
감정은 남았다.
하지만 "이 감정은 정말 나의 것인가?"라고
묻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요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한다’.
뉴스를 보고 판단하고,
댓글을 읽고 동의하거나 반박하며,
생성형 AI가 써준 글을 읽고, 편집하고, 제출한다.
그런데 그 생각이 정말 “내가 시작한 생각”일까?
이제 우리는 생각을 구성하기보다
제안된 문장 중에서 골라 쓰고,
그럴듯한 문장을 “이게 내 생각이었지”라고 믿는다.
사고는 살아있지만,
사고의 출발점이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고의 침묵”이다.
문장은 있지만, 사고는 없다
생각이 멈춘 것이 아니다.
문장은 이어지고, 말은 계속되며, 의견은 넘쳐난다.
그러나 그 문장이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가”라는 질문 없이 반복될 때, 사고는 더 이상 ‘내가 구성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판단은 하고 있지만,
그 판단을 구성해 낸 의식의 흐름, 질문의 출발,
선택의 이유를 점점 놓쳐간다.
사고의 구성은 기억, 비교, 상상, 판단, 자기반성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DMN(Default Mode Network)이다.
PCC (후측 대상피질): 자전적 기억과 자기 인식
vmPFC (복내측 전전두엽): 판단의 가치 평가
AG (angular gyrus): 개념 사이의 연관 생성과 사고의 유연성
이 회로들이 자기 주도적 판단, 창의적 사고,
판단에 대한 신뢰 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Fleming & Dolan(2012)).
하지만 생성형 AI는
이 회로가 작동하기도 전에 문장을 먼저 제시한다.
사고는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되겠다”는 문장이 이미 주어진다.
AI의 자동화된 제안 구조에 반복 노출되면,
이 회로는 사고의 ‘발화’ 단계를 생략하게 될 수 있으며, 사고는 외부 구조로부터 유도되는
조건반사로 변형된다.
후설은 『논리 연구』에서 사고란
의식이 스스로의 방향을 선택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장을 만들어내는 그 방향성(지향성)이
사고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판단이
AI가 제안한 방식 중 하나를 골라서 쓰는 것이라면?
내가 쓰긴 했지만,
그 문장을 만들기 위한
전(前) 언어적 사고의 흐름이 없었다면?
그 사고는 나의 것이 아니다.
기호학자 로만 야콥슨은 기호가 작동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장 그 자체(표현)
무엇을 가리키는가(지시 대상)
누가 말했는가(발화자)
이 중 ‘누가 말했는가’가 사라졌을 때,
기호는 단지 공중에 떠 있는 조각이 된다.
→ 사고의 침묵이란
문장은 있지만, 발화자가 없을 때 생긴다.
기호는 있지만,
그 기호가 나의 생각이라는 자각이 사라진 상태다.
필자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활용한 사고 주권 회복 실험인 ThinkFirst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이 실험의 핵심은 단순하다:
AI가 문장을 제시하기 전에,
사용자에게 먼저 자신의 생각을 묻는다.
사용자가 질문을 입력하면,
시스템은 AI 응답을 바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먼저 “당신은 이 주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라는 질문 창을 띄우고,
사용자가 직접 사고의 출발점을 기록하도록 요구한다.
이후 AI가 응답을 제공하면,
사용자는 자신의 생각과 AI의 제안을
나란히 비교하고, 조합하거나 거절할 수 있게 된다.
ThinkFirst 실험에 참여한 사용자들은 자기 판단을 미리 구성한 경우 AI의 문장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수정하거나 반론을 구성하거나,
스스로 구성한 판단에 대한 소유감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실험은 단지 사용자 경험 개선이 목적이 아니다.
사고가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사고는 내가 먼저 시작했다는 근거를 남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고 주권
(cognitive sovereignty)이다.
기술은 인간을 침묵하게 만들지 않았다.
기술은 인간의
감각을 ‘의미화’ 하지 못하게 만들고,
감정을 ’해석‘할 수 없게 만들고,
사고의 ‘시작’을 가져감으로
‘내가 나로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조용히 해체했다.
Craig, A. D. (2009). How do you feel—now? The anterior insula and human awareness.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0(1), 59–70.
DOI: 10.1038/nrn2555
Stansfeld, S. A., & Clark, C. (2015). Health effects of noise exposure in children. Current Environmental Health Reports, 2(2), 171–178.
DOI: 10.1007/s40572-015-0044-1
Denny, B. T., et al. (2012). A meta-analysis of functional neuroimaging studies of self- and other judgments reveals a spatial gradient for mentalizing in medial prefrontal cortex. Journal of Cognitive Neuroscience, 24(8), 1742–1752.
Keles, B., et al. (2020). A systematic review: The influence of social media on depression, anxiety and psychological distress in adolescents. International Journal of Adolescence and Youth, 25(1), 79–93.
DOI: 10.1080/02673843.2019.1590851
Fleming, S. M., & Dolan, R. J. (2012). The neural basis of metacognitive ability.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 367(1594), 1338–1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