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의 자격
개학 맞이 교실 청소를 하고 돌아오는 길 바닥에 지렁이 한 마리가 말라 죽어있다. 어릴 적 기억 속 어느 날엔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렁이는 비가 오면 비를 맞으러 나오는데 채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 전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해지면 돌아가다가 말라 죽는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이렇게 말라죽어있는 지렁이를 보면 징그럽기보다 안쓰러웠다.
오늘은 그보다도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애썼구나를 넘어 대단하다 싶었다. 그래도 넌 그 길을 떠나기라도 했구나.
사십이다. 인생이 좀 달리 보인다. 그냥 때되면 해야하는 거였던 불과 몇 년 전과 달리 이제는 건강검진 결과를 마주하기가 좀 두려운 나이가 됐다. 몸에 이상이라도 느껴지면 예전보단 다소 진지하게 걱정이 된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백세시대니 뭐니 하며 지금껏 걸어온 내 나이 만큼 아니 그 이상을 다시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소리들을 들을 적엔 아득해진다. 지금껏 그랬듯 인생이란 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있겠지마는 왠지 상으로 주어지는 건 아닐 것만 같아서.
지렁이에서 내 삶으로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운동이라고는 숨쉬는 것 말고는 거의 않는 사람이라 하루에 조금씩 걷는 것을 의무로 두고야 말겠다고, 나는 작년 9월부터 학교 근처 도서관에 주차를 하고 왕복 10분 정도를 걷고 있다. 오늘도 거기에 차를 두었기에 청소를 마치고 땀이 흥건한 이 상태가 너무 싫었지마는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걸어가는 길이었다. 그래, 이런 게 의무지. 찝찝함이 온몸을 휘감아도 다른 선택지가 없는 걸보니 아주 탁월한 설정이긴 했다. 그 길을 걸어가며 지렁이에서 내 나이로, 지렁이가 기어가기 시작한 지점에서 내 나이 서른 즈음으로 장면이 연결되어 갔다. 곧장 차를 탔더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걸은 덕에 했다.
언제 그칠지 모를 비 앞에서 지렁이라고 망설이지 않았겠나. 그래도 그 길을 나섰을 어느 지렁이의 삶이 사십이란 나이를 이제야 막 살기 시작한 나에게 어쩐지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게 이럴 일인가 싶으면서도.
나는 뭘 시도해보았던가. 태생이 순응적인 사람이다.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무얼 시도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우리 나라 제도상 그 시기에는 그 일이 응당 해야할 일이라서 했다. 교실에, 기숙사에 있으면서 딱히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교대에 가서는 다음 수순이 임용고사를 보는 거였으니 임용 준비를 했다. 일어나면 세수하고 밥먹듯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어서 그랬다. 기억 속 시간을 쭉 따라가니 대학원이 나왔다. 내 인생에서 나름 도전이라고 부를 만한 거의 유일한 행보다. 안 가도 되는 곳을 굳이 갔으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마음 한 켠에 꼭 한 번 공부해보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어른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편이 원서를 전해줬던 그 날이 떠올랐다. 그 날 남편이 원서를 내밀지 않았더라면 또 그냥 묻혀버렸을지도 모를 일. 남편이 문득 고마웠다. 남편에게 카톡을 남겼다. 남편 고마워. 여차저차해서. 지렁이에서 시작되었던 나의 감정을 최대한 간략하게 남겼다. 전형적인 T 남편을 위한 F 아내의 배려랄까. 대신 이 모든 생각과 감정이 지렁이에게서 시작되었단 사실은 비밀에 부쳤다.
사십 줄에 들어 생각해보니 나는 여덟살에 국민학교(입학할 적엔 국민학교였다가 중간에 명칭이 바뀌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긴 했다)에 입학한 후로 지금까지 눈 뜨면 학교에 가는 삶을 살고 있다. 삼십 여 년째. 학교 안 생리도 미처 다 모르지만 학교 밖은 아주 모른다. 세상에 태어났는데 이렇게 학교에서만 살다가도 괜찮은 건가 싶다. 언젠간 학교 밖으로 나가 뭐라도 해보고 싶은데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다.
아주 빼어나진 않더라도 웬만큼은 잘해야 밥 벌어 먹고살지 않겠나. 학교가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서 이 담장 너머에서는 도무지 살 재간이 없다.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뭐라도 해볼 걸. 교육학 공부할 때 다른 '-학'도 같이 끼고 볼 걸. 취미라도 꾸준히 계발해볼 걸. 요즘엔 취미를 파고 들어 전문가가 된 사람들도 많더구만. 암만 생각해봐도 내가 시도해도 괜찮을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떠오르는 것들은 다시 가르치는 일로 리턴.
모아놓은 돈은 없고, 애들 키우느라 시간은 늘 부족, 경험이랄 거야 학교 말고는 없고, 체력은 원래 없었지만 나이 드니 더 없고, 재능도 어느 하나 출중하진 않다. 정 사람이 없으면 데려다 자리 메울 만한 딱 그 정도.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대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서당 개 삼십 년 만에 내가 꿈틀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