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뭇 사람들이 돌을 맞는다. 그들을 향한 비난을 지켜보며 나였다면 과연 더 잘 해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나라면 다른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솔직히 어떤 이들은, 욕 먹을만 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거기에 상황 설정을 더해본다. 저 사람이 늘 잘해오다가 딱 저 순간만 그랬다면? 찰나의 실수였고 지금은 진정으로 반성하고 후회하고 있다면?
또 생각한다. 나는 일평생 어느 순간도 빠짐 없이 품위와 지혜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사람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삶의 어느 순간에는 다 내던지고 싶을 만큼 약해져있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 때에라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생일대의 실수가 만천하에 공개된다면.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시 돌아와서. 그럼 나는 돌을 던질 것인가. 던질 자격이 있는가. 아니, 내 돌은 둘째 치고 잘못에 비해 너무 많은 돌들이 던져지는 상황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 건 괜찮은가. 나서서 막아야 하는 책임은 없나. 어쩌면 나일 수도 있었을 자리에 앉아 돌을 맞고 있는 someone을 저렇게 홀로 두는 게 맞는가. 자칫 한 패로 오해받을 수 있으므로 지혜롭게 처신해야 하는가.
미디어가 발달하고 온라인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무자비하게 돌을 맞는 사람을 보는 일이 흔해졌다. 이런 우리 사회는 과연 괜찮을까. 혹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여기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나는 저 돌들이 어느 날 방향을 바꿔 나를 향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무섭다. 돌을 맞고 있는 저들도 어제까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을테니.
어느 날 쉬는 시간에 A라는 아이가 씩씩거리며 나를 찾아왔다. 들어보니 A가 자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B 이름을 언급하게 됐는데, 지나가던 B가 자기 이름을 듣고는 자기 뒷담화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욕설을 하고 A의 가족을 들먹이며 패드립까지 했단다. A와 대화했던 친구들을 불러 사실을 확인했다. 세 아이의 진술이 동일했다. 그 내용을 B에게 전달하고 오해를 풀고 사과하게 했다. 그리고 B와는 따로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네가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 때 네 마음이 어땠을지는 충분히 알 것 같다. 하지만 네 행동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인정하니? 네. 친구가 널 뒷담화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았겠니? 사실을 확인해요. 하지 말라고 경고해요. 맞아. 그게 좋았겠다. 촛불이 넘어졌어. 여기 손톱만한 작은 불씨가 생겼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을 뿌려요. 그럼 만약 교실 전체가 불 타고 있다면? 119에 신고해요. 맞아. 하지 말라는 단호한 말로도 충분히 끌 수 있는 불을 엄마와 가족에 대한 욕설로 끄려고 하지 마. 그건 해결 방법이 아니야. 그냥 너의 화풀이일 뿐이지. 가족에 대한 욕을 들었으니 내 행동을 멈춰야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화만 더 돋울 뿐이지. 양쪽 모두에게 전혀 도움되지 않는 방법이야.
작은 일엔 그에 알맞은 대응이, 큰 일엔 또 그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 어린 아이가 거짓말을 했기로서니 경찰에 신고할 일은 아니듯. 물론 성인의 경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 자기가 일으킨 물의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고 반성하고 그 이후에는 법이 정한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법적 강제력으로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가 일으킨 일이 기준이다. 저지른 일에 대한 적정한 처벌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 이슈가 된다고 하여 법 대신 무수한 돌이 그를 벌하게 두는 건 위험하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중한 죄에는 응당 중한 벌이 필요하다.
이슈가 곧 돈이 되고, 수많은 정보 중 진실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은 세상이다. 관심의 중심에 선 사람은 이렇게까지 돌을 맞을 일인가 싶은 일에도 돌을 무더기로 맞는다. 오며 가며 쉽게 마주하는 소식이기에, 사람들은 유명 관광지 분수에 동전 던지듯 오며가며 그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지는 모양새다. 꽤 어릴 적 봤던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 있다. 자신이 긴 시간 법정 다툼을 해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고. 대중은 화려했던 시절 대서특필 되었던 첫 헤드라인만을 기억한다고. 나보다 한참 윗 연배의 배우였기에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관심의 시기에 대한 그의 언급은 인상 깊었다.
우리는 돌을 던지기 쉬운 만큼 돌을 맞기도 쉬운 사회를 살고 있다.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정보를 너무 많이 떠안고 사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전국 방방곡곡의 돌 맞은 사연들이, 세계 구석구석의 돌 맞은 사연들이 여러 미디어, SNS를 통해 순식간에 전달된다. 추모나 연대의 의도를 가진 전파는 그래도 다행이다. 많은 경우, 이토록 쉬우니 작은 돌이라도 들어 참여해보라고 독려하는 이벤트 홍보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최근 들어 극성 민원, 무분별한 아동 학대 신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이 많다. 매체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최근 얼마 간의 우울기와 침체기를 겪으며, 시시때때로 전해들었던 그 소식들이 어느 면에선 내 불안을 증폭시켜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이유로 청년층 무기력의 일부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모질고 엄격한 세상에서 무경력자가 어떻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사회 초년생이라면 이런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가 참 무서울 것 같으니.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한 이는 없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너그러움 덕분에 하루를 보낸다. 누군가의 크고 작은 용서 덕에 살아간다. 파스타를 사주겠다고 약속해놓고 바쁘단 핑계로 일주일째 미루고 있는 엄마를 너그럽게 기다려주는 딸 덕분에, 수업 중 말이 꼬여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너그럽게 넘어가주는 아이들 덕분에, 외출하다가는 핸드폰 두고 왔다고 다시 집에 뛰쳐들어가는 아내를 너그럽게 봐주는 남편 덕분에, 계산하려다 그 때서야 카드 놓고온 걸 깨닫고 계좌번호를 여쭤봐도 너그러이 계좌번호가 적인 메모를 건네주시는 카페 점원분 덕분에, 대화하다가 단어 하나가 생각이 안 나 한참을 고민해도 너그러이 기다려주는 친구 덕분에 나의 하루도 다행히 그럭저럭 흘러가는 중이다.
나는 내가, 그리고 당신이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너그러워져서 이 사회가 너그러워지길. 그래서 이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너그러움의 수혜자로서 마음 놓고 살아가게 되길. 실수할 날이 창창한 사회 초년생들도 마음 놓고 실수하며 미래의 전문가로 성장해나갈 수 있길.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함도 물론이다. 너그러운 사회에서라면 말의 힘이 분명 돌의 힘보다 셀 것이라고 믿는다. 법의 무게가 바위의 무게를 능가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