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넘어진 사람이 주는 위로
나는 책을 동시에 여러 권 읽는다. 다독가는 아닌데 책 욕심은 있어서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일단 사고 보는 편이다.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못 좇아가니 자연히 책이 쌓인다. 그러면 이 책장에 꽂아두고, 저 책장에 꽂아두고, 차에다가 꽂아두고, 식탁이나 쇼파 근처에도 올려두고 한다. 그러다 시간이 생기면 초콜릿 까먹듯 하나씩 꺼내보는데,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다른 책에도 궁금증이 생기니 여러 책을 펴게 되고 결국은 동시에 여러 권을 읽게 된다. 차에 두고 읽는 책, 거실에 두고 읽는 책, 책상에 두고 읽는 책이 따로 있는 식이다. 특별한 목적이나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었지만, 언젠가부터 그렇게 읽어왔고 그게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얼마 전부터 우울감이 생기고 특히 직업적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아이에게 먹일 음식을 고르는 마음으로 나를 위한 책을 골랐다. 제목에서부터 나를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흘러넘치는 책, 나 스스로에게 꿈과 메시지를 주는 책, 어쩌면 나처럼 교직에서 죄절감을 느꼈을 같은 저자의 심정이 느껴지는 책 이렇게 세 권을 집어 들었다. 이전에 이미 읽고 있던 책들도 몇 권은 그대로 쭉.
책을 펼치긴 했지만 좀처럼 잘 읽히지 않았다. 학기 말이라 바쁘기도 바빴지만 그보단 마음의 에너지가 이미 바닥나있었다. 그나마 겨우 읽히는 건 지금의 나처럼 넘어진 이의 이야기였다. 내 마음이 따라잡아야 할 간극이 너무 큰 탓이었을까. 이미 극복한 이의 이야기까진 아직 궁금하지 않았다.
입맛 없이 첫술을 뜬 것 마냥 밥풀 하나 넘기기도 쉽지 않더니만 어느 만큼 읽어내려가자 저자의 넘어진 이야기에 귀가 기울여졌다. 그의 넘어짐을 나의 넘어짐과 견주어보게 되었다. 내 생각과 비슷한 저자의 생각을 마주할 때마다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묘한 안도가 되었다. 그저 읽기만 했을 뿐인데, 소리내 말하지 않은 내 마음을 온 세상이 다 알아주는 것 같았다.
나만 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성큼성큼 잘만 걸어가는 것 같을 때,
같이 넘어진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