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커리어를 모르는 사람이 한 명 쯤은

by 웬디

가르쳤던 아이 중 자기 분야에서 꽤 이름을 알린 아이가 있다. 졸업을 한지 십 오 년쯤 되었는데 고맙게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 안부를 물어준다. 초등학생 시절에도 개인 연습을 마치고 등교하면서도 지각 한 번 하지 않던 아이였다. 어른인 내가 존경했던 어린이. 졸업 후 한참 소식을 전하지 않다가 첫 연락이 왔을 때인가 아직 그 일을 하고 있다기에 검색을 해보았고, 평범하지 않았던 아이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오랜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었다는 소식을 알고 무척 기뻤다.


한 번 소식을 전하니 몇 년에 한 번쯤은 연락을 해온다. 연락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하다. 오랜 과거 속에 머물러 있는 누군가에게 딱히 용건도 없이 어느 날 문득 연락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아니까. 지난 번 연락에선, 친구와 함께 친구의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선생님이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무색무취의 사람을 기억해주는 게 얼마나 고맙던지.


아마 그 아인 내게 서운할 수도 있다. 아이의 커리어에 대해 언급 한 번 하지 않는 게. 마음으론 수 십 번 축하하고 떡잎 시절부터 이미 훌륭했음을 수 백 번 이야기했음에도 그 아이에게 직접 언급하지 않고 쭈욱 모른 체 한 것은 그 아이의 삶에 커리어와 상관 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천재도, 어떤 챔피언도 자기 자리를 내어줄 때가 오고야 말고 세상 누구라도 자기 인생의 그래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혹여 빛나는 순간을 축하했던 나의 존재가 그 아이의 삶의 굴곡에서는 꺼려질까 싶어서. 혹 삶의 빛나는 순간만을 보여주어야 하는 무거운 존재가 되어버리진 않을까 싶어서.


나는 그 아이가 자랑스럽다. 그러나 임용에서 고배를 마셨다는 또 다른 아이도 그만큼 자랑스럽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이제 막 사회인이 되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이들이 나는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저 그 존재 하나하나가 그렇다.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이 그가 무언가를 해냈기 때문이 아님을 말해주고 싶어서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말주변 없는 선생님이라서 좌절 앞에서도 채 할 말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도 혹여 어느 날 텅빈 마음으로 휴대전화 속 연락처를 들여다 보게 될 때, 아무 것도 모르는 누군가가 필요할 때, 그 때에 너의 오랜 선생님일 수 있기를.


너의 팬으로서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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