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은 딸을 둔
별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특별히 무얼 가져서가 아니라 타고나길 별 욕심이 없었던 것 같다. 단 하나,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친구들은 좀 부러웠다. 신기했다는 편이 더 맞나.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는 아니었다. 아빠랑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엄마랑 결혼할 무렵이 아마 아빠의 일생 중 가장 넉넉한 시기였던 것 같다. 보통은 일생 중 가장 가난할 청년 초기,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나는 자라는 내내 그것이 아빠에게 독이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어려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에 아빠는 가게를 했다고 했다. 엄마는 결혼 생활 중 그 짧은 동안 출근하는 아빠를 봤댔다. 나는 아니다. 내 기억을 인생 처음으로 되돌려보아도 최초의 기억에 가닿는 때까지 아빠는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 아니다. 아주 간헐적으로 일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빠의 노동은 좀 힘들면 놓을 만한 가볍고 손쉬운 것이었다. 티비에서와 책에서 다른 집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어깨에 가장의 무게를 이고지고 산다는데 우리 집은 아니었다.
대신 그 무게는 엄마의 어깨에, 내 어깨에 절반씩 얹어졌다. 동생들도 얼마간 지고 살았으려나. 어찌 됐든 우리 집에서 아빠의 어깨에 들린 것의 무게는 비교할 것도 없이 최경량이었다. 내 기억 최초의 시기부터 우리 집에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은 엄마였고, 그럼에도 돈을 아껴쓰는 건 엄마와 우리였다. 아빠는 늘 베푸는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 남들에게.
나는 그런 아빠가 싫었다. 생각해보면 아빠가 우리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다. 아빠는 가정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바깥 일이 더 중요한. 나는 아빠의 어린 딸이었으므로, 아빠가 좋지 않을 이유는 그걸로 충분했다.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척척 알려주고, 어린 내가 모르는 어려운 말을 쓰는 아빠가 대단해보이던 시기도 있었는데, 설상가상 어느 때부터는 지식으로도 내가 아빠를 앞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빠는 집에 잘 없었다. 돈 벌러 가는 것도 아닌데도 늘 밖에서 바빴다. 아빠는 돈 벌 자리에 엄마를, 돈을 덜 쓸 자리에 우리를 데려다놓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답이 없어 보여서 우리가 알아서 걸어간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입학할 때 교대 등록금은 110만원이 채 안 됐었다. 사립대학교 등록금의 3분의 1 정도 되었으려나. 아빠의 계획 위에서 엄마는 돈을 벌었고 우리는 돈을 덜 쓰며 공부했다. 우리는 바빴고 아빠는 여유로웠다.
어릴 적,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아빠 차를 타고 어딘가 놀러가던 중이었다. 집을 나서 차를 타고 한 1~2분쯤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양쪽으로 슈퍼가 있는 조금 큰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막 지날 때쯤 아빠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아빠는 잠시 통화를 하더니 어디 좀 가봐야겠다고 우리를 그 길가에 내려주곤 가버렸다. 살면서 자주 느꼈지만 그 날에 나는 완벽히 알아버렸던 것 같다. 아빠에겐 가족보다 타인이 중요하다는 걸.
사람들은 아빠를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이런 사람이 또 없다고. 타인의 입을 통해 들은 아빠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힘겹게 길을 걸어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어이 차에 태워 집까지 모셔다드리는 사람이었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해 자기 일처럼 두 손, 두 발 걷어붙이고 일해주는 사람이었으며, 지역사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금을 마련해주는 사람이었다. 없는 살림에도 자신도 보태고. 나도 안다. 그토록 열심이었다는 걸. 얼마 안되는 집에 있는 시간조차 아빠는 늘 그들을 위해 썼으니까.
아빠는 늘 신문을 봤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뉴스를 봤다. 그리고 그 자리엔 신문과 리모콘이 그대로 있었다. 아빠가 집에서 편하게 지내다 몸만 빠져나가면 엄마는 아빠가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벗어놓은 옷을 빨고 빨래를 널었다가 마르면 갰다. 아빠가 있는 동안엔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상을 차렸다가 설거지를 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 살림을 해보고 노동을 해보니 참 부러운 삶이더라. 꼭 해야 할 일이 없는 삶,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삶이라니.
어느 날 결혼을 앞둔 지인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하며 속상해하기에 내가 말했다. 나도 어릴 땐 아빠가 싫었었는데 이제는 고맙다고. 아빠 덕분에 세상의 모든 남자가 가정적이지는 않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비꼬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했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벌써 내 나이가 마흔이니, 이제는 지나가는 누구라도 아빠를 보면 할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아빠는 노인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된 아빠는 딸인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애정을 손녀인 내 딸들에게는 보여준다. 평생을 안하던 걸 하려니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력한다. 그 노력이 눈에 보인다. 그 사이 아빠에 대한 감정이 특별히 좋아진 건 아니지만, 상담 공부 덕인지 나이 덕인지 아빠의 삶도 짠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사랑받지 못했던 유년 시절 때문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조차 인정받으려 애썼던 것 같아서. 그들의 인정 하나 하나까지 그렇게 소중히 모아가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했던 것만 같아서.
그러느라 정작 곁에 남은 가족들과 나눌 이야기가 없다는 게 이제는 아빠도 좀 서글프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