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공부를 하고 싶었다.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아이들도 아직 어린 데다가 현실적으로 등록금이 부담되었다. 맞벌이로 대출금을 갚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나는 대학원에 가겠소 선언해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흘러가는 말로 대학원 이야기를 몇 번 건넨 적이 있었더랬나. 어느 날 밤 남편이 대학원 원서를 건네주었다. 남편이 내게 원서를 건네준 행위는 대학원에 가도 좋다는 재정적, 시간적인 협조 의사였다.
감동이었다. 우리 남편 이런 사람이었나. 전형적인 F유형인 내 안을 감동이란 커다란 감정이 깊고 천천히 휩쓸고 지나간 후 정신을 차리니 슬며시 뒤따라 오는 생각. 아, 혹시 이거 순발력 테스트인가. 남편에게서 받은 원서를 찬찬히 살펴보니 원서 마감이 이틀 남았더랬다. 오늘 밤에 서류를 준비하고, 내일 퇴근하고 사진을 찍어서, 모레 퇴근하자마자 사진을 찾아 원서에 붙여서 제출. 칼퇴하지 않으면 그나마도 어려운 강도높은 스케줄이다. 어쩌면 접수도 못해보고 끝나는 헤프닝은 아닐까. 남편은 이런 나를 이미 꿰뚫어본 건 아닌지.
그러나, 꽤 오랜동안 고대했던 일이라서 그랬는지 나는 의외로 스케줄을 최소 단위로 쪼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갔다. 그러던 중에도 본디 별 욕심 없는 편이고 의외로 무던한 데다가 이미 내 체력과 성향 대비 과잉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기에 사진 예쁘게 찍겠다고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는 수고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았다. 퇴근 길에 보았던 작은 동네 사진관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드린후 내일 사진이 필요한데 내일 오후까지 현상이 가능한지 여쭤보았더니 가능하다고 하셨다. 들어와서 거울 보고 의자에 앉으라고. 가방을 내려놓으며 이 가디건을 벗는 게 나을까요 입는 게 나을까요 여쭤보았다. 사장님은 입고 찍자고 하셨다. 그 대화를 끝으로 나는 화장 한 번 고치지 않고 퇴근길 초췌함을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스란히 사진에 담았다. 다음 날 원서 마감을 한 시간 가량 앞두고 사진을 받았을 때, 이제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음을 알았기에 그 사진을 원서에 붙였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평소의 나답지 않게 그 때라도 사진 예쁘게 찍겠다고 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습게도, 할 수만 있다면 붙이고 싶지 않았던 사진.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결국 그 사진을 붙였다. 몇 년 전 남편이랑 가서 찍었던 대학로 사진관-아니 거긴 이름도 스튜디오였지-에서는 포토샵으로 예쁘게 수정도 해주시던데. 말은 못하고 괜히 속으로 서운했다.
그 길로 택시를 타고가서 어제자 퇴근길 초췌함이 박힌, 나의 시끄러운 속이 담긴 원서를 제출했다. 꼬박 이틀을 긴장했던 마음의 끈이 느슨해지니 그 흐물거림이 간지러웠는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는 꽤 먼 길이었지만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시작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