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으로 '내향인 웬디'를 선택했다가 며칠을 후회했다. 내향인이란 말에 나의 존재를 다 담아버린 것 같아서. 나를 설명하는 말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내향인으로 설명할 순 없을테니 말이다.
내 이름은 엄마아빠로부터 선물받았다. 나는 엄마아빠가 낳았고 내 이름은 엄마아빠의 생각이 낳았다 해야할까. 내 이름에는 엄마아빠의 바람이 들어있다. 딸이 이렇게 살기를 바라는.
어느 날 나는, 내가 나에게 이름을 하나 지어주기로 했다.
두 아이를 키우다보니 둘째에게 첫째를 칭할 때 '언니가'라고 이야기하게 되는 때가 많았다. 첫째는 언니로서 무엇을 한 게 아닌데 대화의 맥락에서 첫째는 자꾸 언니로서 언급되었다. 내가 첫째로 자랐기에 첫째 아이의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엄마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내가 첫째로 자란 경험 때문에 그 말이 언급되는 순간순간에 내 과거의 온 경험을 담게 되는 것 같았다.
해결책을 고민하다가 영어 이름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최근 기업에서도 경직된 위계 문화를 깨뜨리고 자유로운 소통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영어 이름을 도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다.
그 길로 영어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역시 글로벌 시대다! 수십 가지의 영어 이름들이 알파벳 순으로 어원과 뜻까지 정리되어 있었다. 심지어 인기있는 이름 순위까지 촤라락. 역시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뜻부터 보게 된다. 깊은 뜻, 좋은 뜻을 담아줘야지. 부를 때 부드럽고 낭랑했으면 하는 생각도 함께.
그러다가, 아니다, 엄마아빠가 지어주는 이름은 한글 이름으로 충분하다 싶어서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내가 서치해서 여러 날을 고민해왔던-흔치 않으면서도 예쁘기까지 한 수많은 이름들을 다 제치고, 첫째는 어느 유튜버의 이름을, 둘째는 애니메니션 캐릭터의 이름을 단숨에 골랐다. 내심 아쉬워서 다른 이름들을 들이밀어봤지만 결국 거절 당했다. 우리 아이들의 영어 이름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언니와 동생의 관계를 차치하고 두 아이를 언급하고 싶을 때 나는 종종 이 이름을 사용하곤 한다.
아이들의 영어 이름을 고를 때, 동시에 내 이름도 고민해봤다. 좋은 뜻을 가진 예쁜 이름이 많았다. 게다가 그 글을 게시한 사람들은 영어권 문화에 친숙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어떤 이름이 촌스럽고 촌스럽지 않은지 어떤 이름이 요즘 대세인지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 중 눈에 들어오는 몇몇 이름들을 두고 오래 고민했다. 아이들한테 나를 그 이름으로 불러달라고도 했었다. 그런데 결국 내 마음과 입가에 맴도는 이름은 목록에도 없던 '웬디'였다. 피터팬의 그 웬디! 아이들한테만 뭐랄 게 아니다.
나는 영미 문화에 문외한이라 그 느낌은 모르지만 피터팬이 세상에 나온 시기를 고려해볼 때 지금 시점에서는 굉장히 예스러운 이름일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영미 문화에서 살아가지는 않을 것 같고 그들과 만날 일도 거의 없을 것 같으니, 영어 이름이란 그저 내가 좋으면 됐다. 내 느낌에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사려깊고 강단있게 느껴졌던 '웬디'의 느낌을 나는 이름으로나마 얻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웬디가 되었다.
브런치 작가명을 정할 때 나는 내 본명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타인의 틀 안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이었는데, 이 공간에 글을 쓸 때만큼은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냥 적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브런치 밖에서도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하고 그럴 용기도 제법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본명 대신 내가 지은 이름인 '웬디'를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필요할 것만 같은 생각에 오래 고민했다.
내가 여기에 무엇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지 생각해보았을 때 상담과 심리에 관한 글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니 그 분야의 프로이신 분들이 이토록 많은 세상에 이제 막 대학원을 마친 내 글이 자격이 되나 싶었다. 나도 어설프게 좇아가려고 애쓰지 말고 읽는 이도 아예 별 기대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아마추어 웬디'는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또 내가 상담이나 심리에 관한 글만 쓸 것 같지는 않았다. 완벽한 글만 남기겠다는 생각을-완벽한 글도 없거니와-버리기로 한 이상 나는 여기에 그 때 그 때 떠오른, 혹은 내 속을 어지럽히는 잡다한 이야기들도 담을 예정이었다. 그러다 떠오른 생각이 '내향인 웬디'였다. 작가명을 정하던 그 즈음에 내가 진하게 느꼈던 나를 설명하는 말 중 한 종류. 성격이론을 공부하며 나는 나의 내향성이 참 짙구나 생각했었다.
그래서 여러 고민 끝에 나는 나의 브런치 작가명을 '내향인 웬디의 수다'(수다라는 말을 넣은 것은 내가 전문적으로 다룰 특정한 카테고리가 없음을 알리고 싶었던 생각에서였던 것 같다)로 정했지만 앞서 설명했던 이유 탓에 이것도 영 아닌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나를 설명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은 다 갖다 붙여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식어 하나를 갖다 붙이면 너무 많은 생각이 따라 붙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다 아닌 것 같았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랬나? 그래서 정했다. 아임 웬디. 언제 어떻게 내 생각이 바뀌고 흘러갈지 모를 일이지만 일단 지금의 나는 그냥 나로서 나를, 내 일상에서 경험하고 관찰하는 일들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지금은 희미해도 점차 선명해질 여정을 기대하며. 그 여정에서 나는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뭐라고 설명하고 싶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