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 계셨다. 그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오시고 나서는 우리는 회의로 모일 때도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고 머그컵에 음료를 담아 마신 후 돌아가며 몇 사람씩 남아 설거지를 했다. 어느 날엔가는 같이 케이크를 먹을 일이 있었는데 일회용 접시를 사용하지 않고 머그컵에 담아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 먹었다. 컵이 깊으니 먹기도 편했다. 누군가는 또 설거지를 해야 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설거지는 의무가 아니었다. 선의로, 자의로 돌아가며 했다.
그 선생님은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선생님이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밝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나와는 다른, 선생님의 당당한 태도와 높은 텐션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 시기 즈음엔 나름 가깝게 지냈다.
언젠가부터 선생님은 차를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혼을 계획하고 있었고 그러면 아이가 생길 것도 염두에 두어야 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차가 필요했더랬다. 그래도 환경에 해가 덜 가도록 전기차를 사려고 한다고 했다. 역시 선생님다운 기준이었다.
그 대화 끝에 속상한 일이 있었다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제가 전기차를 사려고 한다고 하면 그렇게 환경 생각한다고 하던 사람이 차는 왜 사냐고, 차를 사면 그동안 환경을 위한다고 했던 것들도 다 부질없는 게 아니냐고 한다고.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지만, 실천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절대 쉽지 않다. 더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실천을 제안하고 솔선하여 그 일을 해낸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냈으며 여전히 하고 있는 선생님한테 누군가 그렇게 비아냥거렸다니 내가 다 속이 상했다. 선생님 마음은 오죽했을까.
아이들이 어릴 때 육아 휴직을 하고 있던 시절,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좀 살만해지니 뭔가 하고 싶어졌던 적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료 환경교육이 있다길래 신청해서 참석했다. 일부 교육은 소그룹으로 진행되었는데, 같은 그룹에서 옆자리에 앉으신 할머님께서 목이 마르다고 하셨다. 교육장에 들어서면서 출입구에 커다란 스테인리스 물통과 종이컵이 있던 것을 보았기에 출입구 쪽에 물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깜빡하고 텀블러를 안 챙겨와서 마실 수가 없다고. 나는 순간적으로는 그 말 뜻을 얼른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앉아있는 자리가 어떤 곳인지 다시 생각하고 나서야 그 말이 이해되었다. 종이컵을 쓸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배달 음식을 종종 아니 꽤 자주 시켜먹는다. 체력은 약하고 손은 느린 워킹맘이 생존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그런데 배달 음식을 받고 나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찌나 많이 생기는지, 어느 날엔가는 동료 선생님한테 배달 음식을 시켜먹으면서 나오는 쓰레기를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환경 보호를 이야기하는 게 너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내 나름대로 지키는 것은, 배달 음식을 먹고 난 플라스틱 용기는 깨끗이 설거지해서 분리 배출하는 것이다. 오염물이 묻은 것은 재활용되지 않는다기에. 나로인해 이미 발생이 되었다면, 그 다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재활용이라는 생각에서다.
몇 년 전 어린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환경을 사랑하고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그래서 세계 정상들에게도 그 책임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아이가 참 대단해보였다. 그 아이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기사를 찾아보았다. 놀라웠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삶이.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기사마다 달린 날선 악플들이었다.
알고 있었다. 그보다 더 과거에 복직 준비를 하겠다고 도서관에 다닌 적이 있었다. 나의 불안이 나를 부추겼더랬다. 쉬는 동안 내 안의 지식도 새어나가버렸을 것만 같아서 지식창고를 채우겠다는 일념으로 공책 하나에 필통 하나를 들고 도서관에 갔었다. 그 때 꺼내어 봤던 책 중에 환경 보호에 관한 상식이 과연 맞는지 짚어주는 내용이 있었다. 그 책이 내게 알려줬다. 전기 자동차는 화석연료를 쓰지 않으니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흔히 알고 있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미 환경에 해를 끼치는 면이 있다고. 보통 해외 여행과 환경 오염 사이의 관련성을 생각하지 않지만, 비행기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환경 오염의 원인 중 꽤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나'의 무지를 깨닫게 해준 그 지식이 또 다른 곳에서는 '남'을 비난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현대 사회에서 지구에 완전 무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말 있을까. 그럼에도, 완전하지 않은 우리가 불완전하게나마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 아닐까.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에 가서 지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그레타의 행보가 그러하고, 자동차가 필요해 구입한다면 환경에 덜 해로운 전기자동차를 선택하겠다는 선생님의 기준이 그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의 삶은 나 같은 사람도 돌아보게 한다. 아직은 한참 부족하대도, 그렇지 않았다면 안 했을 다짐을 하게 한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 아이들에게 해왔던 이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