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건강은 편안함과 동의어가 아니다. 정신 건강에 관하여-
상담 대학원 첫 수업 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우리(상담자)를 찾아온 사람은 물론 생활의 불편함이 있어 찾아온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심각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했다. 자기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정말 심각한 사람은 자기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조차 쉬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정말 심각한 사람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감춰져있을 때가 많다고.
무척 공감이 되었다. 교사인 지인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닌 것 같다고 하는 학부모님들은 대체로 좋은 부모인 경우가 많았다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나는 좋은 교사가 아닌 것 같다고 하는 선생님들도 실상은 훌륭한 선생님들이셨고.
바랐던 배움을 시작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강의실에 앉아 강의를 들으며 순간순간의 깨달음이 너무 재미있었다. 여덟살, 다섯살 된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대학원 공부를 잘 해낼 수 있을까를 걱정했던 것은 까맣게 잊은 듯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강의에 금세 빠져들었다. 맨 앞에서 두 번 짼가의 자리에 앉아 교수님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 공감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제동이 걸렸다. 교수님은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일 년에 다섯 명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고의 예방약이라고. 아, 이를 어쩐담. 도무지 이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안에서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미 더 이상 인간 관계를 넓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첫 강의 이후 만난 친구에게 대학원에 다니게 된 소감과 더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데 나는 일 년에 다섯 명의 새로운 사람은 못 만나겠다고 했다. 내향인임을 핑계 삼아. 일 년에 다섯 명씩 새로운 사람을 만나다가는 오히려 정신이 안 건강해질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친구는 나의 너스레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잠시 생각하고서 내게 말했다. 그 다섯 명은 아마 평생 함께 할 아주 깊은 관계의 다섯 명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 같다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너는 이미 해마다 다섯 명이 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고 있다고. 아 그런 거였어? 하고 이번엔 내가 웃었다. 그 웃음을 끝으로 내 안에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던 그 말은 잊혀져가는 중이었다. 모든 기억이 그렇듯 잊혀지는 줄도 모른 채 그렇게, 흘러흘러.
그냥 두었다면 다시 떠올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 기억이 뜻밖의 장면에서 소환되었다. 2024년 이토록 추운 겨울. 소환과 동시에 그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 말의 의미가 번뜩 깨달아졌다. 건강은 편안함과 동의어가 아니었다. 교수님은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고 했다. 분명. 정신적 '편안함'이 아니라.
폐쇄적인 동질 집단은 건강하지 않다. 위험하다. 내 말이 네 말이고, 네 말이 내 말인, 입 속의 혀 같은 사람들이 자리를 모두 채운 집단은 편안할지언정 건강하지는 않은 거였다. 좁은 세상에 맞춰진 시각은 바깥 세상을 보는 시각을 왜곡하게 될테니. 그 세계 안에서는 오답도 정답이 될테니. 상담자를 찾아온 사람은 지금 상황이 어떠하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있다는, 정말 심각한 사람은 감추어져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은 다 맞았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언제나 가장 큰 문제다.
나를 돌아본다. 어떻게 살고 있나. 유난히 추운 올 겨울을 보내며 생각하니 편안함을 추구하다가 건강을 잃는 건 정말 큰일이다 싶다. 신체 건강과 달리 정신 건강은 타인에게도 영향을 끼치니 더 큰일이다. 더는 내향성에 숨지 말아야지. 내향인이지만, 집순이지만, 겁쟁이지만, 교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제는 만나러 가야지 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