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병원에 가는 이유
약 말고 몸이 궁금합니다
나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나았다 싶으면 또 걸렸다. 목을 쓰는 일을 하기 때문인지 다른 이들도 다 그런 건지 감기는 늘 목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집 둘째는 감기에 걸리면 중이염이 되곤 했다. 매번 그랬다. 중이염까지 가지 않게 하려 서둘러 병원을 찾아도 끝내 종착역은 중이염이었다. 이 조그만 아이의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갈 적마다 중이염이라는 사실을 마주했고 먹어야 할 약의 종류가 적힌 처방전을 받아올 뿐이었다. 왜 이 일이 일어나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고관절 쪽에 간헐적으로 독특한 통증이 있었다. 너무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아프다가도 뚝 소리가 나면서 뼈가 맞춰지는 느낌이 나면 아무렇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퇴근 길에 동네의 작은 정형외과를 찾았다. 내 증상을 말씀드리니 들으시더니 엑스레이상 이상이 없다며 그럴 리가 없다고 하셨다. 나는 분명 그런데 그럴 리가 없다는 얘기를 들으니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전문가의 말이니 더는 할 말이 없어서 알겠다고 병원을 나왔다.
괜찮겠지 하고 지냈더니 증상 발생 간격은 더 짧아지고 통증 지속 시간은 길어지기에 겁이 덜컥 나서 이번에는 큰 병원을 찾았다. 고관절 충돌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진단이라도 들으니 한결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대체 왜 이 통증이 생기게 된건지 궁금했다. 왜 생기는 것인지 여쭤보니, 인터넷에 나와있으니 찾아보라고 하셨다. 큰 병원이라 바쁘겠지, 조금 전까지의 나처럼 밖에서 한없이 대기 중일 사람들을 생각하며 서둘러 나왔다.
내 몸이지만 나는 내 몸에 관해 비전문가다. 내 몸에 이상이 느껴질 때 전문가의 소견을 듣고 싶어서 병원에 간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나는 정작 내 몸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어느 날, 중이염으로 고생하던 아이를 다시 소아과에 데리고 가야 하던 차에 나도 감기로 목이 쎄했다. 웬만큼 아파선 병원에 잘 안 가는 나지만, 병원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걸 보면 그 당시 내 컨디션도 꽤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 소아과 진료를 받고 이동해서 이비인후과 진료까지 보는 건 불가능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아이가 웬만큼 컸으니 이비인후과에 데리고 가서 함께 진료를 받기로 결정을 했다.
이 이비인후과로 말할 것 같으면, '대기 희망고문'을 하는 곳이다. 병원에 들어설 땐 대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금방 내 차례가 돌아올 것 같은 생각에 희망을 품게 되지만, 앞사람이 진료실에 들어가면 도통 나오질 않는 통에 결국엔 수십 명 대기하는 병원 만큼이나 오래 기다리게 되는 곳.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기다림이 길다는 단점은 내 차례가 되면 장점이 된다. 환자인 내게 자세히 묻고 또 설명해주신다. 인체 모형을 놓고 짚어가며 현재 이런 상태이고 앞으로 이렇게 진행이 되니 증상이 이렇게 바뀌면 더 오지 않아도 되고 저렇게 바뀌면 3일 뒤에 오시라, 하고. 약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다. 항생제는 아직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이니 이런 약을 써보겠다, 혹은 이런 항생제를 쓰려고 하는데 이러이러한 약이다, 지난 번에 이런 약을 썼는데 별 차도가 없으니 바꿔보자, 같은. 그래서 병원에 다녀오면 바로 낫지 않아도 안심이 된다. 내 몸을 쓱 한번 훑어본 것 같다. 아, 나는 지금 여기쯤 지나고 있구나 하고 회복의 정도를 내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이비인후과에 가기로 한 첫 날, 혹시 아이가 어리다고 돌려보내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더 어린 아이도 온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의 입 안과 코와 귀를 차례로 살피는 동안 나는 아이가 그동안 감기만 걸렸다 하면 중이염으로 진행되어 고생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의사선생님은 코와 귀에 넣었던 도구들을 내려놓고 상담(?) 의자에 앉으셨다. 나도 따라 그 앞의 의자에 마주 앉았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콧물이 흐르면 일반적으로 콧물을 마르게 하는 약을 쓰는데, 어린 아이들은 코와 귀가 거의 일직선 상에 있어서 코로 흘러나오지 못한 게 귀로 흘러가 중이염이 되기 쉽다고 했다. 콧물이 좀 나오더라도 말리는 약을 쓰지 않으면 중이염까지 가진 않을 거라고.
아! 나는 어쩌면 이런 설명을 기다려왔나보다. 이 말의 결과가 맞든 틀리든 별 상관 없었다. 그렇게 시도해봤는데 아닐 수도 있지, 뭐. 쪼그만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전전할 때 아이의 현재 상태에 대해 설명-아니, 추측이라도 해주는 게 처음이었다. 안 그래도 좋았던 병원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그 후로 목이 아플 때면 꾸준히 그 병원에 간다. 가면서 궁금해한다. 나는 지금 왜 아플까.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온다. 좋다. 약만 받는 게 아니라 몸에 대해 알게 된다.
물론, 나도 크게 아프진 않은데 생활이 불편해서 빠르게 낫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앉자마자 원스톱으로 약을 지어주는, 더 가깝고 편리한 병원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병원이 몸을 알려주는 곳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