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에 오랫동안 관심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서점에 들러 예쁜 집과 살림에 관한 책을 탐독했던 어린이었다. 사춘기 시절을 지나면서는 아빠의 낡은 서류가방(?)을 달라고 해서 나의 작은 화장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나의 일생 모토는 '튀지 말자'면서도 동시에 개인적 존재로서의 나는 남들 다 하는 똑같은 것은 하기 싫은 그런 아이였다. 웨딩 스튜디오조차 남들이 다 하는 곳, 남들이 좋다는 곳은 가보지도 않았던, 무척 평범하지만 아주 특이한 사람이 나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내가 관리할 공간이 생기자 내가 원하는 공간을 구현해내는 즐거움이 생겼다. 나는 결혼을 일찍 하고 싶었는데, 그 이유 중 꽤 큰 부분이 공간에 대한 욕구였던 것 같다. 그래서 10년 남짓한 결혼 생활 내내 가구 옮기기, 정리하기 등 공간을 새롭게 하는 일들은 나의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다. 그 사이에 내가 원하는 공간의 스타일도 여러 번 바뀌었고, 뿌듯함과 아쉬움을 골고루 다루어가며 나는 나의 취향을 찾아갔다.
사실 초기에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어디서 많이 본 것이 내 취향이라고 착각하거나 보자마자 예쁘다고 느낀 것이 내 취향이라고 착각하며 지냈던 시간이 있었다. 어느 정도 취향의 철이 들어가는 요즈음, 내가 생각하는 공간의 본질은 일상이다. 내가 원하는 일상을 해나가는 바탕. 그러나 그 때는 몰랐다. 몰라서 이것 저것 예뻐보이는 것은 다 해보았다. 그 긴 혼돈기를 지나 비로소 요즈음 내 취향은 한 곳에 수렴되어 간다. 확 트인 공간보다는 소담한 작은 공간, 깔끔하고 모던한 공간보다는 조금 촌스러운 듯 삶의 흔적들이 묻어있는 공간, 너무 멋져서 그 속의 나도 멋져야만 할 것 같은 불편한 공간보다는 공간조차도 수더분해서 그저 나로 머물러도 될 것 같은 편안한 공간, 비록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면 오래된 주택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공간이 바로 내 취향이다.
거기에다 엄마가 된 후로는 아이들의 일상과 공간의 연결성을 생각하게 된다. 시간은 원래 그렇게 작용하듯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낸 시간들이 나를 자라게 해준 것이리라. 우리 아이들이 책과 친했으면 좋겠어서 집안 곳곳에 책이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우리 가족이 서로 소통하는 가족이었으면 좋겠어서 가족이 마주 앉을 자리를 일상의 중심에 배치한다. 이렇게 일상의 소소한 바람들이 나의 공간을 디자인한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기에, 애석하게도 나는 일 년에도 몇 번씩 가구를 옮기고 이렇게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시도들을 여태 해보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요즘 우리 집 구석구석에는 책들이 날로 쌓여가고, 거실의 큰 테이블 위도 늘 만석이다. 아이들이 쇼파에서, 식탁에서, 안락의자에서, 러그에서 책을 읽는다. 보일 때마다 조금씩 정리는 하지만 잘 시간이 될 때까지는 아주 넣지는 않는다. 깔끔함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니(이렇게까지 내려놓은지는 채 한 달도 안 된다) 이런 공간도 나름 매력있게 느껴진다. 오며가며 정리하느라 일이 좀 늘었지만 그래도 좋다. 내 디자인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 같으니, 싫어하던 이런 바지런함도 왜인지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