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아껴 너에게 줄게
시간에 담아 보내는 사과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교사로서 내 나름의 열심을 냈었고, 아이들의 마음을 더 알고 싶어서 공부까지 했으니. 심지어 공부를 시작한 그 후로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더 관찰하고 내 앎으로 도움을 줄 만한 부분이 없는지 기록하고 사색하기도 했으니. 오랜 관찰과 고민의 시간은 결국 나를 좋은 결정으로 데려다주기도 했었으니. 그래서, 나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반 아이들의 보호자님과 상담을 할 때면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다.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쌓아온 시간과 노력과 지식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러나 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나 보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달랐다. 아이 키우는 데 관찰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주변에 그렇게 말해왔으면서도, 내 아이는 곁에서 꾸준히 관찰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다고 단정지었던 것 같다. 오늘의 나는 분명 어제의 나와 다른데 오늘의 너는 마치 어제의 너와 똑같은 것처럼.
둘째의 입학에 맞춰 생각지 않았던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야, 그래서 아이들과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지금의 둘째 나이였을 때 첫째는 지금의 둘째와 비슷한 일상을 혼자서 오롯이 살아냈었더라는 것,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을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일상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 그렇게 가족에게만큼은 무척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것, 첫째의 그 기특함을 기특함으로 여기지 못하고 당연함으로 넘겨버렸다는 것, 몰랐고 그래서 가볍게 넘어갔었는데 첫째와 둘째 사이에 감정의 골이 꽤 깊다는 것, 나는 모두에게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직하게 마주해보니 내 말투가 가족에게만큼은 달랐다는 것, 우리 가족의 말투에 어딘가 뾰족함이 담겨있다는 것, 그 뾰족함이 어쩌면 나로부터 시작했을 수 있겠다는 것, 이렇게 굳이 시간을 내지 않았더라면 나라는 둔한 사람은 어쩌면 아주 오래도록 이 모든 일을 몰랐을 거라는 것.
알고 나니 바로잡아야 할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생각을 떠올리며 적다보니 마치 어느 날 내 안에서 마구 쏟아져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실은 별 생각 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조금, 또 어느 날 조금 깨닫게 되어 소소하게 모아온 생각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처음엔 큰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렇게 보통이 아닌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 나는 어떡하지.
감정이 동하기 쉬운 이런 상황에 놓일 때가 되면 나는 내 안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지식이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이성의 힘이 약한 나는 지식에 기대어서야 비로소 이성적인 사고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지 못하게 마주한 여러 문제들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는 대신에 내가 공부한 것들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하지 않았던 일들을 이제부터 하기 시작하면 변화가 생길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실험이 아니라 실천을 해보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내가 내 일을 한다고 내 아이들에게 쓰지 않았던 시간을 써보기로 했다. 엄마가 엄마의 시간을 너희에게 아껴서 미안해, 라는 사과의 마음으로.
나의 사과가 너희에게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