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것의 유익
복직을 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여 세 가지 큰 갈래를 잡고, 하루하루 일상으로 풀어냈다. 고맙게도 아이들이 좋아하며 잘 참여해주었다. 보호자님들께서도 아이들의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해주셨다. 돌아보니 한 학기를 참 따뜻하게 지나왔다. 마지막 날 아이들의 편지와 보호자님들의 편지, 메시지를 받으며 얼마나 뭉클했는지. 특별할 것 없는-오히려 부족하고 어딘가 허술한 사람이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다니. 고맙고 감사하면서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불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난 걸까.
교사로서 나의 사명은 아이들이 잘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배움은 물론이고 그 밖의 것들도 포함하여. 따라서 나는 동시에 나의 사명이 지닌 한계를 분명히 안다. 한 아이의 일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교사의 영향은 지극히 적고 가족의 영향은 크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그 아이의 가족을 돕고 싶었다. 지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막연히 가족상담을 공부하고 싶었다. 대학원에서 가족상담 수업을 시작할 때 특히 설렜다. 알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긴 내용을 다루어서 놀라기도 했지만.
내게는 큰 모순이 있다.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내향인이라는. 나는 집순이에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주변인들로부터 조용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니. 누가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정말 그랬다.
일반적으로 소통이라 함은 대면을 전제로 한다. 적극적인 성격, 대화, 연락을 떠올리게 된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다. 다수와의 대면, 잦은 통화는 부담스럽다. 원래도 그럴진데, 이 일을 하며 더욱 그래졌다. 날마다 아직 경험해본 적 없는 최악의 상황을 안고 살아가는 불안한 일터. 그 안에서 더는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보호자님들과의 대면, 통화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언론에 오르내릴 만한 엄청난 사건을 겪진 않았어도 지난 몇 번의 상황들을 마주할 때 말문이 막히고 손이 떨렸다.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 순간에는 채 하지 못했던 말을 혼자 읊조리곤 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했을까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일. 교감선생님 말씀대로 내가 복이 많아서 몇 번 겪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몇 안 되는 그 순간이 교사로 살아가는 내 모든 일상에 백색 소음처럼, 배경처럼 깔려 있었다.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동시에 소통 뒤의 불안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그렇게 인지부조화를 겪으며 살아오던 중, 이번 복직을 앞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보다 적극적으로, 오히려 약간 진취적으로 글로 소통을 해보자!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설명하셨었다. '말보다 글이 편한 아이'라고. 나는 말 대신 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해보기도 했다. 글만으로도 충분한 소통.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복직하면서 보호자님들이 확인하시는 온라인 알림장을 업로드할 때 알림장 말미에 내가 읽은 책 중 육아나 교육에 관련된 좋은 구절을 함께 적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책 읽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그 말들은 힘이 될 것을 또한 알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학교 일과 시간에 아팠다거나 다쳤다거나 그 외 특별한 어려움이 있었던 경우 문자로 알려드렸다. 다른 아이와의 물리적인 다툼이 있는 경우, 다치거나 아픈 정도가 커서 긴급한 연락이 필요한 경우, 다른 아이와의 합의나 피해 보상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전화를 하기로 내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때마다 연락을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고민하는 수고를 덜었다.
또한 1,2학년군의 경우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가족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달마다 학습했던 내용을 묶어 자기 평가와 직접 색칠한 표지와 함께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가정에 보내드렸다. 가정에서 보호자님과 함께 읽고 이야기나누고 마지막 장에는 보호자님이 아이에게 격려와 사랑의 메시지를 써서 다시 제출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매달 그 편지를 먼저 받아서 읽은 후 나에게 제출했다. 보호자님들이 타의에 의해서라도 아이들에게 사랑의 표현을 해주었으면 했고, 혹 의무감에 쓴 글이라도 아이들이 사랑과 지지의 표현을 자주 받았으면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때로는 꾹꾹 눌러적은 사랑의 편지에 나까지 울컥할 때가 있었다.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고운 언어로 쓰인 동요를 통해 고운 심성을 기르고 우리 반이라는 공동체성과 소속감을 주기 위해 매달 '이달의 동요'를 선정하여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한 구절씩 맡아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가사를 써서 제출하면 그 그림들을 사진 찍어서 영상으로 제작했다. 아이들은 달마다 새로운 뮤직비디오가 완성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너무나 간절하고 적극적이어서 느린 성정의 나조차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초등 학령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습관 형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몆 년째 진행해오던 좋은 습관 프로젝트를 이 아이들과도 했다. 단, 나이가 어리니 한 달에 딱 5일만. 아이들은 나를 위해, 나의 성장을 위해 실천해보고 싶은 습관 한 가지를 정해 매일 실천하고 그 날짜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도장을 찍거나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그 종이를 습관보석함이라고 부르는데, 한 주가 지나면 아이들은 실천했던 습관보석함을 가져와서 초콜릿이나 젤리로 바꾸어갔다. 아직은 자기 의지만으로 해내기엔 어려운 나이니 약간의 보상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시작은 '나를 위해서'였고, 다행인 건 '나를 알아서'였다. 학급을 운영하는 교사인 내 특성을 고려하여 말 대신 글로, 전화 대신 문자와 종이로 소통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물론 전화나 대면 상담이 열려있어서 때로는 통화를 하기도, 대면을 하기도 했다.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해도 상담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내가 관찰하고 기록한 것을 준비하여 전달하는 것이기에 괜찮았다. 오히려 좋았다. 내가 꿈꾸던 일이어서인지, 의미있는 시간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어서인지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상담 공부를 시작하고 나를 알아가면서 내가 자주 회피를 선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번에도 나는 또 회피를 선택했다. 말로 하는 소통이 두려워 글을 택했으니. 그럼에도 나를 지지해주고 싶은 것은 그저 두려움에 숨어 침잠하지 않고 말을 대신할 글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내가 가진 자원 중 활용 가능한 것을 찾아내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니, 완벽한 사람이란 허상이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부족한 사람이기에 나를 아는 것의 유익을 알아간다. 부족함 속에서 최선의 것을 변별하기 위해 오늘도 애쓰며 살아가고자 한다.